“군 전문가들 협의 결과 미 정부는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도록 해선 안 된다는 조언을 받았다.”
지난 2017년 7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글입니다. 사실상 ‘트랜스젠더(transgender·성전환자)의 군 복무 금지’를 선언한 건데요.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트랜스젠더의 입대 금지를 명시한 공식 지침에 서명했습니다.
이에 당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였던 낸시 펠로시는 “트럼프의 결정은 우리나라를 지키려는 용감한 개인들에 대한 비열한 공격”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미 대법원 역시 이 지침이 헌법에 명시된 평등권에 어긋난다고 판결했죠.
그런데 지난 22일(현지시간) 이를 뒤집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대법관 9명중 5명은 트랜스젠더의 입대 금지에 찬성, 4명은 반대를 해 결국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가 어려워졌습니다. 이번 [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알쓸신세]에선 ‘트랜스젠더’와 ‘제3의 성’을 둘러싼 여러 시각을 살펴보겠습니다.
“트랜스젠더 입대, 엄청난 비용과 혼란 초래”
‘트랜스젠더 군인’은 우리에겐 낯설지만,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는 미국에서 오랜 논쟁거리입니다. 미 국방부는 공식적으로 트랜스젠더 군인의 수를 집계하고 있지 않지만, 국립트랜스젠더평등센터(NCTE)는 130만 미군장병 중 1만5000명 이상이 트랜스젠더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6년 10월 오바마 행정부 당시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은 트랜스젠더 군 복무를 전격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평등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고려한 결정이었죠. 나아가 트랜스젠더 군인의 성전환 비용도 국가에서 부담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금전적 부담과 군대 내 혼란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트랜스젠더들의 군 복무를 막아야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우리 군은 결정적이고 압도적인 승리에 집중해야 한다”며 “군대 내 트랜스젠더가 야기할 엄청난 의학적 비용과 혼란의 짐을 떠안을 수 없다”고 트위터에서 밝히기도 했는데요. 미 국방부에 따르면 오바마 정권의 약속대로 군인들에 대한 성전환 수술비용을 지원할 경우 연 240만~840만 달러(26억 7000만~93억4900만 원)가 추가로 든다고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이 처음 올라왔을 땐 현재 복무 중인 트랜스젠더 군인을 색출해 강제로 커밍아웃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서명한 지침은 복무 중인 트랜스젠더 군인들은 그대로 둔 채 트랜스젠더의 신규 입대만 금지했습니다.
이번 판결을 두고 워싱턴포스트(WP)는 “대법원의 보수 성향이 반영된 결과”라고 평했고, 일각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오바마 지우기’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시민자유연합의 한 변호사는 “정책을 가장한 트랜스젠더 혐오”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정부는 트랜스젠더의 입대가 군에 해를 끼친다는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습니다. 트랜스젠더인 패트리샤 킹 병장은 “이번 결정이 국가에 봉사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막진 못할 것”이라고 CNN과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스스로 여성이라고 생각하면 여대입학도 가능
이번 판결로 군 입대가 어려워진 미국 트랜스젠더들. 하지만 여대 입학은 열려 있습니다. 미 민간단체 캠퍼스 프라이드에 따르면 버나드 칼리지와 스미스 칼리지를 포함해 총 13개 미국 내 여대에서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조건이 붙습니다.
뉴욕 버나드 칼리지의 입학 규정을 살펴볼까요. 이 대학은 ‘여성으로 살고 있거나 자신을 여성이라고 인지하는 학생’의 입학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즉, 신체는 여성이지만 자신이 스스로 남성이라고 인지하고 있으면 입학이 불가능하고, 생물학적 남성이더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여성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면 입학이 가능합니다. 성전환수술을 받지 않았더라도 이 같은 성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기만 하면 됩니다.
스미스 칼리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환 수술 여부와 관계없이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학생들의 입학을 모두 허용하고 있는데요. 이 학교는 트랜스젠더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약 200개 이상 성중립 화장실도 설치했습니다.
특이하게도 입학과 졸업 사이의 성 정체성 변화도 고려됩니다. 스미스 칼리지는 일단 입학을 했으면 그 후 성정체성이 남성으로 바뀌더라도 해당 학생에게 학위를 수여합니다. 반면 또 다른 여대인 베넷 칼리지는 입학 후 자신을 남성이라고 인지한 경우엔 졸업장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정했습니다. 마운트 홀리오크 칼리지의 경우엔 학교 상징물에 여성을 상징하는 비너스를 넣으려고 했지만 트랜스젠더 학생을 배려하기 위해 이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아시아에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일본의 오차노미즈(お茶の水) 여대가 지난해 7월 트랜스젠더 학생의 입학을 허용한 겁니다. 일본에선 최초인데요. 오차노미즈 여대에 뒤이어 국립대인 나라(奈良) 여대 역시 트랜스젠더의 입학 허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외 인도에선 지난 2016년 사회적 편견과 박해 등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는 트랜스젠더들을 위한 교육기관인 사하즈 학교가 문을 열었고, 칠레에서도 트랜스젠더를 위한 아마란타 고메즈 학교가 개교했습니다.
여성, 남성 아닌 ‘제3의 성’
트랜스젠더가 여성에서 남성으로 혹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바꾼 것이라면 이런 이분법을 탈피하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이른바 ‘제3의 성’을 인정하는 것인데요.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모두 타고난 간성(intersex)인 사람들도 있고, 특정 성 정체성으로 자신을 규정할 수 없는 논바이너리(non-binary)도 있기 때문이죠.
남성, 여성도 아닌 성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미 캘리포니아주는 2017년에 운전면허증과 출생증명서 등에 남성과 여성 이외에 제3의 성을 ‘X’로 규정할 수 있도록 법안을 마련했고, 독일은 간성임을 증명하는 의학진단서를 받은 사람에 한해서만 ‘제3의 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이 반영된 건지 뉴욕 메트로폴리탄 교통공사(MTA)는 지난 2017년 기관사들에게 관용적으로 쓰던 ‘신사숙녀 여러분’(ladies and gentlemen)이란 표현 대신 ‘승객’(passengers)이나 ‘탑승객’(riders)을 사용하도록 권장했습니다. 네덜란드 철도청(NS)도 같은 해 안내방송에서 ‘신사숙녀 여러분’이란 표현을 ‘승객’으로 바꿨습니다.
이처럼 세계 각국에선 성 소수자인 트랜스젠더와 제3의 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물론 기존의 사회적 관습에서 벗어난 성을 인정하기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겠죠. 우리 사회의 논의는 지금 어디쯤 왔을까요.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