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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조 공적자금 투입한 대우조선, 현대중 품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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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지분을 현대중공업에 현물출자하는 방식으로 민영화를 추진한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경영 개선한 지금이 적기“라고 말했다. [뉴시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지분을 현대중공업에 현물출자하는 방식으로 민영화를 추진한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경영 개선한 지금이 적기“라고 말했다. [뉴시스]

1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조선해양이 결국 현대중공업의 품으로 넘어가게 됐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이 한 지붕 아래에서 합쳐지면 세계 조선업계에서 압도적 1위의 조선사가 탄생한다.

산은·현대중 합병 조건부 MOU #중간 지주사 형태 통합법인 설립 #산은 보유지분 전량 넘기는 방식 #10조대 공적자금 회수는 불투명 #“제대로 된 민영화로 보기 어려워”

하지만 막대한 공적자금을 언제쯤, 얼마나 회수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런 거래를 산업은행이 공개 입찰 등의 방식이 아닌 현대중공업과 은밀하게 논의해 결정했다는 점에서 ‘밀실 협상’이란 비판도 나온다.

산은은 31일 대우조선 지분(55.7%) 전량을 현대중공업에 넘기는 방식으로 대우조선의 민영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 조건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우조선은 구조조정을 통해 5000%가 넘던 부채비율을 200%대로 낮췄고 영업이익도 2017년 흑자로 반전하는 성과를 냈다”며 “민영화에 나설 적기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산은과 현대중공업은 중간 지주회사 형태의 새로운 조선통합법인을 공동으로 설립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은 신설 회사의 최대 주주(지분율 26%), 산은은 2대 주주(18%)가 된다.

산은은 신설 회사에 대우조선 지분 전량을 현물로 출자하는 동시에 신설 회사가 발행하는 주식을 인수한다. 신설 회사 아래에는 대우조선과 기존의 현대중공업·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 등 네 개의 자회사가 들어간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번 거래는 엄밀히 말해 산은이 보유한 대우조선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당장은 한 푼의 공적자금도 회수하지 못한다. 산은은 언젠가 조선통합법인과 대우조선의 지분을 팔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제시하지 못했다.

대우조선에는 최대 2조5000억원의 추가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의 주체는 조선통합법인이다. 대우조선 유상증자를 통해 1차로 1조5000억원을 집어넣고 부족할 경우 1조원을 추가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지분 매각 방식은 매수자(현대중공업)가 과도한 자금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성사여부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우조선의 재무구조 개선이 수반되지 않는 현금 매각 거래로 진행하면 매수자의 동반 부실화가 우려됐다”고 덧붙였다. 매수자인 현대중공업의 자금 사정을 봐주기 위해선 지금과 같은 거래 방식이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번 거래는 현대중공업 측에 유리한 협상”이라며 “대우조선의 지분 매각이 아니라 경영권을 넘기는 방식이어서 제대로 된 민영화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산은은 국내 3위의 조선업체인 삼성중공업에도 대우조선을 인수할 기회를 주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산은과 현대중공업이 이미 짜놓은 계획에 ‘들러리’를 세우는 격이란 지적이 업계에서 나온다. 오히려 삼성이 이번 기회에 경쟁력이 약한 조선업에서 철수를 검토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국내 조선업계 1위와 2위를 합친 초대형 조선사의 출범으로 해외 경쟁업체들이 시장 독과점 우려 등을 제기하며 반발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오일뱅크의 지분을 팔아 조선통합법인의 지분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8일에는 사우디 국영기업인 아람코와 현대오일뱅크의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아람코가 현대오일뱅크 지분을 19.9%까지 인수하는 조건이다. 현대오일뱅크의 주가를 3만6000원으로 계산하면 1조7550억원 수준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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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갖고 있던 현금성 자산(1조2500억원)을 합치면 약 3조원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이번 합의서 체결은 어느 한 기업이 다른 한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통합의 시너지(상승)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경쟁의 효과도 함께 살려 나가는 방식으로 한국 조선 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업계에선 이번 거래로 조선업계 전반적으로 인력과 사업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사업 영역이 크게 겹치는 만큼 인력 구조조정 등의 얘기가 나올 것”이라며 “이런 문제를 노조와 잘 풀어가는 게 향후 인수합병 진행에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 노조는 회사 매각에 대해 강력 반대 입장을 밝혔다. 노조는 31일 의견문을 내고 “일방적인 매각 절차 진행을 중단하고 노조의 참여 속에 재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방적 매각 강행에 대해 총파업 투쟁을 불사하며 강력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31일로 예정했던 임금·단체협약의 2차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잠정 연기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대우조선을 인수할 경우 조합원들의 고용불안 문제가 발생하는 등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영이 어렵다며 구조조정을 했던 회사가 이제 와서 막대한 돈을 들여 대기업 인수에 나선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20년간 대우조선해양을 보유하며 13조원의 자금을 투입했던 산은은 경영 책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978년 대우조선공업으로 설립된 대우조선은 1999년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듬해 워크아웃을 졸업하면서 산업은행이 출자전환을 통해 최대주주가 됐다. 2008년 이후 공개 매각 절차를 통해 한화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결국 매각은 무산됐다.

증시 투자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31일 증시에서 현대중공업 주가는 4% 넘게 떨어졌고, 대우조선은 장중 한때 20% 가까이 급등했다. 결국 대우조선은 전날보다 900원(2.49%) 오른 3만7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인수 주체로 떠오른 현대중공업(-4.15%)과 현대중공업지주(-4.39%) 주가는 하락했다.

염지현·조현숙·강기헌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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