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아닌 정치가 주도 "광주형 일자리, 차 팔 곳 있나"

중앙일보

입력 2019.01.31 16:08

업데이트 2019.01.31 17:57

문재인(오른쪽 두번째) 대통령이 31일 광주광역시청에서 열린 광주형 일자리 투자협약식에서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본부장, 이용섭 광주광역시장, 이원희 현대자동차 대표이사(왼쪽부터)와 손잡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오른쪽 두번째) 대통령이 31일 광주광역시청에서 열린 광주형 일자리 투자협약식에서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본부장, 이용섭 광주광역시장, 이원희 현대자동차 대표이사(왼쪽부터)와 손잡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진통 끝에 광주형 일자리가 결실을 맺었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고비는 첩첩산중이다.
고비용 저효율로 비판받는 우리나라 제조업에서 노사정 합의로 ‘저임금 완성차 공장’의 이정표를 세운 의미는 크다. 하지만 정부 주도로 이뤄진 이번 합의가 시장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냔 의문부호도 남는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올해 기아차 인도 공장을 완공하면 글로벌 970만대 생산체제를 갖추게 된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세계시장에서 판매한 완성차는 740만대. 올해 판매목표를 760만대로 높여 잡았지만 이를 달성한다 해도 생산 능력치의 80%에 미치지 못한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에 따라 글로벌 판매 목표를 하향 조정하고 생산량도 유연하게 조정하는 중이다. 현대차그룹 역시 기존 생산기지의 유연화와 재배치가 시급한 것 아니냔 지적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기아차 인도공장이 완공되면 글로벌 970만대 생산 체제를 갖춘다. 올해 판매 목표는 760만대로 공장 가동률이 80%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의선(왼쪽)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2월 '한-인도비즈니스서밋'에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환담하는 모습 [사진 주한 인도대사관 트위터]

현대차그룹은 올해 기아차 인도공장이 완공되면 글로벌 970만대 생산 체제를 갖춘다. 올해 판매 목표는 760만대로 공장 가동률이 80%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의선(왼쪽)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2월 '한-인도비즈니스서밋'에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환담하는 모습 [사진 주한 인도대사관 트위터]

아직 현대차는 광주형 일자리에서 어떤 차를 얼마나 생산할지 사업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 합리적인 임금 수준으로 시장에서 팔릴만한 자동차를 생산해야 하는 것은 가장 시급한 과제다. 지금까지는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연간 10만대 생산한다는 계획이 유력하다. 하지만 완성차 개발부터 양산까지 최소 2~3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까지 ‘백지상태’나 다름없다는 게 자동차 업계의 평가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제조업은 공장 가동률이 핵심인데 판매처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산능력만 올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내수용 경차를 생산하더라도 결국 기아차나 한국GM과 카니발라이제이션(기존 시장 잠식)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도 장밋빛 미래만 예상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광주형 일자리 공장에서 생산하는 경형 SUV가 기존 내수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사진은 기아차가 동희오토에 위탁 생산 중인 경차 모닝. [사진 기아자동차]

전문가들은 광주형 일자리 공장에서 생산하는 경형 SUV가 기존 내수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사진은 기아차가 동희오토에 위탁 생산 중인 경차 모닝. [사진 기아자동차]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투자 유치도 쉽지 않다. 합작법인의 자기자본금 규모는 약 2800억원으로 추산되는데, 이 가운데 지방자치단체인 광주광역시가 590억원(21%), 현대차가 530억원(19%)를 분담한다는 계획이다. 광주시는 나머지 자본금(1680억원)을 충당할 재무적 투자자(FI)로 산업은행의 참여를 요청한 상태다. 별도로 공장 설립에 필요한 추가 자금도 대출받아야 한다. 자동차 업계에선 추가 대출 역시 상당 부분을 산업은행이 떠안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되면 합작법인 설립에 필요한 자금의 대부분을 지자체·국책은행의 공적 투자로 채우는 셈이어서 사실상 ‘준 공기업’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광주형 일자리 공장이 수익을 내지 못할 경우, 국민 혈세로 손실을 메워야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31일 오후 광주광역시청 밖에서 경찰통제선을 뚫고 청사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광주=뉴스1]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31일 오후 광주광역시청 밖에서 경찰통제선을 뚫고 청사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광주=뉴스1]

현대차 노조의 반대도 걸림돌이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인 현대차 노조는 광주형 일자리 공장 설립에 반대하고 있다. 투자협약식이 열린 31일 민주노총은 “노동 기본권을 파괴하고 재벌에 특혜를 주는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현대차 노조도 확대간부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노조측은 광주형 일자리가 단체협약 40조(도급·용역전환), 41조(신기술 도입·공장이전·기업 양수도 등)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신차 개발·양산 후 생산과 판매에 있어 노조와 협의하도록 단협에 규정돼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현대차 측은 해당 단협이 기존 울산·아산·전주공장에 국한된 것이란 입장이지만, 노조측은 신규 공장에 대해서도 단협이 효력을 발휘한다고 맞선다.

현대차가 경영권 없는 비지배 투자자이긴 하나 현대차가 투자한 완성차 공장이 다른 완성차 일감을 맡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나머지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추가 생산라인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어서 광주형 일자리 공장이 현대차 물량 없이 지속가능한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98년 르노삼성차 부산공장 이후 첫 완성차 공장이라는 점에서 5~10년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의미가 있겠지만 기업체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논리로 만들어진 점에서 앞으로 책임 경영이 가능할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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