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푸른 초원 위에~' 귀농 권유하는 노래 였을까?

중앙일보

입력 2019.01.31 09:00

[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39)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노래는 시대를 반영한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다가 문득 퀸이 활동하던 시대에 우리는 뭘 들었을까 하는생각이 들었다. [중앙포토]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노래는 시대를 반영한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다가 문득 퀸이 활동하던 시대에 우리는 뭘 들었을까 하는생각이 들었다. [중앙포토]

2018년에 개봉한 영화 중 가장 신기했던 것은 ‘보헤미안 랩소디’다. 그룹 퀸과 프레디 머큐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영화가 히트할 줄 몰랐다. 재미있게 영화를 보다가 문득 퀸이 활동하던 시대에 우리는 무슨 음약을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는 시대를 반영하지 않는가.

보헤미안 랩소디는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금지곡이었다. 생각해 보면 70년대 산업화 시대에는 고향에 관한 노래가 유행했다. 그리고 귀향과 귀촌, 또 귀농과 관련한 노래도 많이 나왔다.

대표적인 귀농 노래  ‘흙에 살리라’ 

귀농·귀촌 분야의 대표적인 노래라고 하면 역시 ‘흙에 살리라’다. 홍세민이라는 가수가 부른 그 노래의 가사를 보면 고향으로 돌아가 집을 짓고 다시 가족을 이루고 산다는 내용이다.

초가삼간 집을 짓는 내 고향 정든 땅

아기염소 벗을 삼아 논밭 길을 가노라면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인 것을

왜 남들은 고향을 버릴까 고향을 버릴까

나는야 흙에 살리라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흙에 살리라

이 노래는 시골에서 돈 벌러 도시로 간 사람이라면 다 불렀다. 어떤 이는 며느리가 싫어하는 노래 중 으뜸이라고 농을 치는데,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흙에 살리라’라는 가사 때문이란다. 그래도 이 노래는 한태웅이라는 중학생 농부가 지난 연말 청와대에서 열린 농민간담회에서 불러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중학생이 그 노래를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다.

해바라기 마을로 알려진 밀양 봉대마을은 환경과 경관이 좋아 귀촌 인구가 늘고 있는 시골 마을이다. 1970년대 산업화 시대에는 고향에 대한 노래가 유행했다. 양보라 기자

해바라기 마을로 알려진 밀양 봉대마을은 환경과 경관이 좋아 귀촌 인구가 늘고 있는 시골 마을이다. 1970년대 산업화 시대에는 고향에 대한 노래가 유행했다. 양보라 기자

또 하나 귀농·귀촌 히트곡은 남진이 부른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님과 함께’다. 이건 서울 가서 돈 벌어 성공한 다음에 귀농해서 멋진 집을 짓고 살겠다는 소망을 그렸다. 많은 이가 이 노래를 부르며 시골에 가 덜컥 집부터 짓는 바람에 낭패를 봤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

가을이면 풍년 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

멋쟁이 높은 빌딩 으스대지만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지만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함께면 나는좋아 나는좋아 님과 함께면

님과함께 같이 산다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귀농·귀촌에 대한 노래나 고향을 떠난 가족을 그리는 노래는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 볼 수 있다. 유명한 동요인 ‘고향의 봄’이나 ‘오빠 생각’이 대표적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그곳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라는 가사는 고향에 대한 향수다.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라는 가사는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흩어진 가족에 대한 애잔한 감정을 그린 내용이다.

그리고 겨우 해방이 되어 다들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6.25 전쟁이 나면서 또다시 가족과 이별을 한 실향민이 많이 생긴다. 그래서 50~60년대에는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처럼 지금은 이별해 고생하지만 언젠가는 고향에서 다시 만나자는 노래가 유행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산업화 시대를 맞아 농촌을 떠나 도시를 가는 사람이 많이 생기게 되면서 성공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노래가 많이 나왔다. [사진 pixabay]

1970년대에 들어서 산업화 시대를 맞아 농촌을 떠나 도시를 가는 사람이 많이 생기게 되면서 성공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노래가 많이 나왔다. [사진 pixabay]

1970년대 들어 산업화 시대를 맞아 농촌을 떠나 도시를 가는 사람이 많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언젠가는 성공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노래가 많이 나온다. 위에서 소개한 ‘흙에 살리라’가 대표적이다. 여기서 살짝 특이한 노래가 히트하는데 김추자가 부른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라는 노래다.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제대해 고향으로 돌아온 군인의 이야기다. 그때 월남전 참전은 겉으로는 이념과 반공을 내세웠지만 속으로는 돈 벌러 전쟁터에 간 씁쓸한 속사정도 있었다고 한다. 베트남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한국이 얼마 전 열린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베트남과 일본 경기가 열리자 베트남을 응원하였으니 격세지감이다. 어찌 되었든 그 노래는 타지로 갔던 이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반갑다는 내용이다.

가요 중에는 강을 주제로 한 노래가 참 많다. ‘소양강 처녀’ ‘처녀 뱃사공(낙동강)’, ‘꿈꾸는 백마강’이 있는데 강 시리즈라고 해 열심히 메들리로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중 춘천을 배경으로 하는 처녀 뱃사공은 귀농·귀촌과 관련된 노래다.

이 노래는 60년대 서울로 와서 일하던 윤기순이라는 실존 인물이 주인공이란다. 윤기순은 춘천에서 서울로 와 일도 하고 가수 생활도 좀 했는데, 고향으로 무척 가고 싶어했단다. 그 사연을 반야월이 듣고는 노래를 만들게 되었단다. 나중에 윤기순은 마침내 고향 춘천으로 돌아가서 잘 살고 있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수록된 앨범. 이 노래는 재일교포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내용이다. [중앙포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수록된 앨범. 이 노래는 재일교포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내용이다. [중앙포토]

80년대로 넘어오면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노래를 가왕 조용필이 부른다.이것은 재일교포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내용이다. 80년대 이후엔 고향으로 돌아가는 노래가 점점 사라진다. 어쩌면 고향으로 돌아갈 일이 없어졌기 때문일지 모른다. 돌아갈 고향이 없어지기도 했을 거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늘어나고 상대적으로 농촌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 때다.

그러다 보니 노래는 개인적인 감성이 주된 주제가 된다. 마왕 신해철은 ‘도시인’이라는 노래에서 당시의 시대를 ‘한 손엔 휴대전화 허리엔 삐삐차고 집이란 잠자는 곳 직장이란 전쟁터’라며 시대를 표현했다. 90년대 대중가요의 큰 전환점을 이룬 ‘서태지와 아이들’의 히트곡 ‘컴백홈’의 홈은 고향이 아니다. 그냥 진짜 자기 집을 의미한다.

80년대 이후 사라진 고향 노래  

그 후로 더는 고향이니 향수는 노래의 주제가 되지 못한다. 지금은 아이돌 세상으로 K팝이 전성기이지만 가사는 들리지 않는다. 세상이 변하며 나도 늙었나 보다.

음악으로 인해 귀농·귀촌을 하게 된 사람도 많다. 전라북도 순창에 가면 자그마한 카페를 운영하는 귀촌인이 있다. 재즈를 좋아해 아예 재즈 페스티벌을 지역에서 열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적한 산골이나 시골에서 음악 을 하려고 귀촌한 사람들이 제주도와 지리산에 많다.

제주도의 대표 귀농·귀촌인으로는 장필순과 이효리가 있다. 귀농·귀촌도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 중 하나다. 그렇다면 얼마나 재미있게, 잘 사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중앙포토]

제주도의 대표 귀농·귀촌인으로는 장필순과 이효리가 있다. 귀농·귀촌도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 중 하나다. 그렇다면 얼마나 재미있게, 잘 사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중앙포토]

제주도의 대표 귀농·귀촌인으로는 장필순과 이효리가 있다. KBS의 여행 프로그램인 ‘걸어서 세계 속으로’의 시그널 뮤직은 지리산 산골 총각인 한태주가 작곡한 오카리나 연주곡인 ‘물놀이’다. 그는 어릴 적 음악하던 아버지를 따라 귀농했다.

귀농·귀촌도 여러 살아가는 모습 중 하나다. 그렇다면 얼마나 재미있게, 잘 사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음악은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좋은 콘텐츠이다. 음악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예술이다. 일하다가 흥얼거리면 힘든 것도 모르게 된다. 우리의 농악이 그러하지 않았는가.

음악은 시대를 반영한다는데, 보헤미안 랩소디를 부른 프레디 머큐리는 좋은 여건에서 산 것 같다. 반면에 우리는 지난 100년을 매우 치열하게 살아왔고 그 와중에 보헤미안 랩소디를 금지곡으로 막아 놓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쉽다. 태평성대를 노래한 적이 언제였던가. 비행기 사고로 아쉽게 사망했던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를 들어 보라. 얼마나 낭만적인가.

미국은 아예 시골 음악인 컨트리 뮤직이라는 장르가 있잖은가. 부럽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도 이제는 힘들다 힘들다 하지 말고 노래 좀 부르면서 시골 생활 좀 즐겨 보는 게 어떨까. 어느새 설날이다. 반가운 명절에 다들 바쁘겠지만 부모님 찾아뵈러 가는 길에 고향 노래 하나 흥얼거려 보자.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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