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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과 결혼한 나, 재일교포일까 아닐까 고민했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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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14)

2019년 성인식을 맞이한 6명의 모습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에 자꾸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사진 양은심]

2019년 성인식을 맞이한 6명의 모습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에 자꾸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사진 양은심]

2019년 1월 26일. 재일본 관동(関東) 제주도민협회가 주최하는 ‘2019년 가족동반 신년회 및 성인식’이 있었다. 관동(関東)은 토치기, 군마, 사이타마, 이바라키, 지바, 도쿄, 가나가와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참석하게 된 계기는 나처럼 제주도에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일본으로 이주한 송영민 제주도민협회 부회장의 권유였다.

교포사회와 교류가 없는 나는 ‘낙동강 오리 알’이 될 각오를 하고, 운이 좋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생긴다면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90년대에 결혼해 일본으로 이주한 나는 ‘교포’라는 의식이 없어서인지 왠지 재일교포사회가 멀게 느껴진다. 그분들이 고생하며 토대를 다져놓은 일본에서 편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감히 “저도 교포예요”라고 하기도 송구스럽다.

‘재일교포’ 아닌 ‘재일 한국인’

행사장으로 가는 동안 ‘나는 재일교포인가’라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한국에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나는 재일교포일까.’ 답을 찾기도 전에 행사장에 도착해 버렸다. 내빈들의 인사말을 듣다 보니 ‘재일교포’라는 말보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말을 쓰고 있었다. 나만 모르고 고민까지 했나 보다.

신년회 행사장에는 지금까지 역사를 담은 전시물이 진열돼 있었다. 1961년 2월 25일 제주도 출신 도쿄 거주자로 구성된 ‘제주도 개발 협회’가 결성되었다. 1959년 9월 20일에 있었던 발기인 모임에는 12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결성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도쿄 재일제주도민협회 창립 기사. 1961년 재일 제주도민협회가 결성되었다는 소식이 실려있다. 제주도 출신 교포들이 어떤 마음으로 제주도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한자가 많은 기사에서 세월의 흐름 또한 느껴진다. [사진 양은심]

도쿄 재일제주도민협회 창립 기사. 1961년 재일 제주도민협회가 결성되었다는 소식이 실려있다. 제주도 출신 교포들이 어떤 마음으로 제주도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한자가 많은 기사에서 세월의 흐름 또한 느껴진다. [사진 양은심]

“본토에서 떨어져 있다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뒤떨어지는 경향이 있는 제주도의 산업을 개발하고 문화생활의 향상과 촉진을 위하여…. (중략)…. 도쿄에 거주하는 제주도 출신 교포 유지 50명이 모여 결성식을 올렸다.”

이어지는 기사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협회 이사가 제주도를 방문해 개발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제주대학교 농과대학생을 다수 초청해 일본의 농업기술을 실습시킬 것이다. 제주대학교의 재건과 개발용 기계의 제공 등을 계획하고 있다. 제주도 출신들은 고향의 개발에 기여하자고 왕성한 의욕을 보인다.”

제주도 하면 귤이다. 1960년대 ‘제주경제개발 5개년 계획’ 중에 ‘감귤 육성’ 정책이 있었다. 재일교포들이 묘목을 많이 보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대학 나무’라고 불렸다.

1962년 제주 도지사가 도쿄도청을 방문한 모습.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제주도와 도쿄의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이때에도 제주도민협회의 힘이 컸을 것이다. [사진 양은심]

1962년 제주 도지사가 도쿄도청을 방문한 모습.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제주도와 도쿄의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이때에도 제주도민협회의 힘이 컸을 것이다. [사진 양은심]

한국에서도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비롯한 내빈들이 참석했다. 그 인원수가 많음에 놀랐다. 그러나 인사말을 듣는 동안 감사의 표현임을 알게 되었다. 제주도는 각 분야에서 재일 제주도민협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원 지사는 재일교포가 고향의 재건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열거하며 감사를 표했다. 제주대학교 총장 또한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교포 자녀가 제주대학 입학을 원한다면 민단의 추천서만 있으면 입학할 수 있으며, 학비 면제 혜택과 기숙사를 제공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 3명이 재학 중이라고 한다. 제주대학교에는 재일교포의 삶을 소개하는 ‘재일 제주인센터’가 있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이 힘찬 박수로 성인이 된 6명을 축하했다. [사진 양은심]

행사장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이 힘찬 박수로 성인이 된 6명을 축하했다. [사진 양은심]

신년회 인사가 끝나고 성인식이 이어졌다. 올해는 6명이 성인식에 참석했다. 성인식을 치러주는 것은 일본다운 행사가 아닌가 싶었다. 일본에서는 1월 둘째 월요일이 ‘성인의 날’로 축일이다. 한복과 양복 차림의 6명이 단상으로 올라갔고, 제주도에서 참석한 내빈과 재일 제주도민협회로부터 선물이 증정됐다.

최근에 ‘선물은 정성’이라는 글을 읽어서인지 제주도에서 준비해 왔다는 정성이 느껴졌다. 6명의 대표로 인사를 한 고수경 씨는 “재일 한국인으로서 제주인으로서,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었다.

힘차고 당당한 고난의 시대 사람들

그 어느 때보다도 한일관계가 껄끄러운 시기이다. 민단 회장의 인사말이 인상 깊었다.
“정치는 정치가에게 맡기고, 우리 민단은 앞으로도 한일 친선 도모를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고국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고난의 시대를 견뎌내고, 한류 붐이 왔다가 지나간 후, 또다시 출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한일관계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싶었다. 의외로 담담하게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난의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은 힘차고 당당하다. 지금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한류 붐이 일던 때 이주한 한국인이 아닐까 싶다.

재일 관동 제주도민협회와 제주도에서 온 내빈들이 선물을 교환하며 정을 나눈다. 선물 증정이라는 것이 이때처럼 정을 나누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비록 내가 건네지도 받지도 않았지만 마음이 따스해졌다. [사진 양은심]

재일 관동 제주도민협회와 제주도에서 온 내빈들이 선물을 교환하며 정을 나눈다. 선물 증정이라는 것이 이때처럼 정을 나누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비록 내가 건네지도 받지도 않았지만 마음이 따스해졌다. [사진 양은심]

한편, 처음으로 참가한 나는 어땠을까. ‘낙동강 오리 알’이었을까. 다행히도 마지막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 같은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한 젊은 가족 덕분이었다. 부군이 제주도인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산소가 있어 해마다 벌초하러 간다고 했다.

제주도를 좋아한다는 말과 함께. 신년회가 끝날 즈음 연락처를 교환하고 내년에 또 만나자는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2월 5일은 설날이다. 평화로운 날이 되기를 멀리 타국에서 기도해 본다.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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