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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에 소득세 200억 걷고 근로장려금 2000억 내줄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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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종교인 과세의 현실을 들여다보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대표(오른쪽 둘째) 등이 지난해 3월 종교인들이 과세에서 특혜를 얻고 있다며 소득세법을 대상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집회를 열었다. 가운데 도정 스님이 서 있다. [연합뉴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대표(오른쪽 둘째) 등이 지난해 3월 종교인들이 과세에서 특혜를 얻고 있다며 소득세법을 대상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집회를 열었다. 가운데 도정 스님이 서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부터 종교인도 소득세를 내게 됐다. 2018년 소득과 그중에서 공제될 부분을 따져 올해 정산하게 된다. 따라서 이제 종교인도 근로소득자나 사업소득자처럼 근로소득과 연동된 국고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그중 하나가 근로장려금이다.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으로 근로장려금 대상자 범위와 액수가 커졌다. 예산 규모로 3.2배가 됐다. 이에 따라 올해 종교인에게 지급될 근로장려금 총액이 종교인 소득세 총액의 열 배가 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국가의 세수 측면에서 보면 ‘되로 받고 말로 주는’ 셈이다. 종교 활동을 정부가 지원하는 결과가 빚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를 살펴봤다.

종교인 80% 면세 대상으로 예측 #근로장려금 1년 새 3.2배로 증액 #종교인 수입은 적고, 공제는 많아 #‘되로 받고 말로 주는’ 현실 눈 앞 #국고로 종교 활동 지원하는 결과 #기재부는 “향후 개선하면 될 일”

종교인 과세 시행 전에 국회 예산정책처가 재정 수입과 지출을 예상해 봤다. 전체 종교인 수는 23만3000명으로 추산했다. 그중 80%는 수입이 적어 소득세 면세 범위에 들 것으로 봤다. 실제로 소득세를 내게 되는 종교인은 5만 명에도 이르지 않을 것으로 예측됐다. 종교인 소득세 총액 추정액은 181억원이었다. 그런데 종교인이 과세 대상에 포함됨에 따라 정부가 지급하게 될 근로장려금은 737억원으로 계산됐다. 556억원(737억원-181억원)의 세수 감소 효과가 발생한다는 시나리오가 나왔다. 기획재정부도 종교인 과세가 세수 측면에서 손해가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2017년 9월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근로장려금 등으로 종교인에게 나가는 돈이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근로장려금 지급 총액 규모를 3조8000억원(지난해에는 1조2000억원)으로 늘렸다. 맞벌이 가구는 연 소득 3600만원까지, 홑벌이 가구는 연 소득 3000만원까지 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가구당 최대 지원액도 25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늘어났다. 기재부는 근로장려금 수혜 대상이 지난해 166만 가구에서 올해 334만 가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근로장려금 총액이 약 3.2배로 불어났으니 종교인들에게 돌아갈 몫도 꽤 커진다. 산술적으로 737억원의 3.2배는 2358억원이다. 전체 종교인이 내는 소득세 총액이 많이 늘어날 가능성은 작다. 일반 국민의 평균적 소득 증가율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으로 종교인 소득이 늘어났을 이유가 없고, 세율도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종교인 소득세 총액은 200억원을 넘기가 어렵다. 기재부는 100억원대로 예상한다. 세금 수입은 많아야 200억원인데, 근로장려금으로 지급할 돈은 2000억원 이상일 수 있다.

물론 정교한 계산은 아니다. 3월에 종교단체와 교회 등이 국세청에 ‘지급 명세서’를 내야 종교인 과세의 구체적 윤곽이 드러나고, 5월에 종합소득세 신고 절차가 끝나야 조금 더 명확한 수치가 나온다. 하지만 재정 수입이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바뀔 가능성은 없다. 종교계에서는 소득세 면세 비율이 80%가 아니라 90% 안팎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처럼 ‘되로 받고 말로 주는’ 현상이 빚어진 데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종교인에게 받을 세금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종교인들의 수입이 적고, 세금을 매기는 방식도 일반 근로소득자나 사업소득자보다 납세자 측에 유리하기 때문에 그렇다. ‘되로 받게’ 된 이유다. 한국고용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목사 연 소득의 중윗값(전체를 서열화했을 때 중간에 있는 수치)이 3054만원이다. 그 수치가 가톨릭 신부는 1651만원, 수녀는 1261만원이다. 승려는 자료가 없다. 대다수가 용돈 수준 이상의 수입이 없다.

종교인들은 일반 근로소득자와 달리 ‘기타소득’으로 국세청에 수입을 신고할 수 있다. 종교계 일각에서 성직자의 일을 ‘근로’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생긴 일이다. 기타소득으로 신고하면 평균적으로 소득공제액이 많아진다. 계산해 보니<그래픽 참조> 월수입이 230만원인 경우 연간 소득세는 8000원(부양가족 3인 기준)이다. 연 소득 3000만원 가까이가 사실상 면세 범위에 든다. 교단 등에서 종교 활동비 명목으로 받은 돈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활동비 내용과 규모는 교회나 단체가 정하면 된다. 이에 대한 정부 규정이 없다. 대형 교회 목사 등 고소득 성직자는 이를 ‘절세’에 이용할 수 있다. 정부가 종교인 과세에 대한 일부 종교계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만든 타협안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교회재정투명성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오경태 회계사는 “현재의 종교인 과세는 반쪽짜리다. 교회 수입과 성직자 수입이 명확히 구분돼 있지 않다. 일반 법인·근로자와 마찬가지로 투명하게 세금 계산이 이뤄져야 한다. 공평 과세는 모든 국민에게 적용돼야 할 원칙이다”고 말했다.

‘말로 주게’ 된 것은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 때문이다. 정부는 소득 재분배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 범위와 지급액을 늘렸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한 부분이다. EITC는 저소득 근로자가 ‘수입이 이 정도밖에 안 될 바에야 차라리 일을 그만두고 실업수당을 받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캐나다 등에서 도입한 제도다. 노동에 따른 수입을 늘려 근로 의욕을 북돋고 실업자를 줄이는 게 본래 목적이다. 성직자에게 ‘근로를 포기하지 않도록 정부 보조금을 준다’는 것에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종교인에게 EITC를 적용하는 것은 제도의 취지에서 벗어난다. 상당수 종교인이 궁핍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근로장려금이라는 형식으로 지원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대표는 “EITC를 종교인에게 적용하는 것 자체도 옳지 않지만, 종교인 수입이 투명하게 파악되지 않는 상태에서 신고된 수입을 기준으로 장려금을 주는 것은 더욱 납득할 수 없다. 결국 ‘유리알 지갑’인 근로소득자에게서 세금을 걷어 실제로는 수입이 꽤 있는 종교인까지 도와주는 셈이 된다”고 말했다. 종교인 과세 방식이 특혜라고 주장하는 한국납세자연맹은 지난해 현행 소득세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종교인 과세에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일단 종교인들도 소득세를 내게 됐다. 그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다. 불합리한 부분은 차차 개선해 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근로장려금으로 세금 수입보다 훨씬 큰돈이 종교인에게 지급될 수 있다는 데 대해서는 “종교인도 국민이다. 형편이 어려운 국민을 국가가 돕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저소득층 생활 보장을 위한 일반적 복지 차원을 넘어서는 종교인 지원에는 국민의 합의가 필요하다. 정부가 종교 활동을 예산으로 지원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정교분리 국가다. 또 모든 국고 보조금 투입에는 분명한 실태 파악이 전제돼야 한다. 종교인 소득의 상당 부분은 아직 블랙박스 속에 있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