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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보다 많은 24조…‘예타’ 고삐가 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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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결국 나라 곳간 ‘빗장’이 풀렸다. 경제성이 떨어져 지지부진하던 지방 대규모 토건사업에 대해 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하기로 하면서다.

전국 시·도 23개 사업 예타 면제 #김경수 내륙철도 4.7조 최대 규모

정부는 경기도 평택~충북 오송을 잇는 고속철도 복복선화, 경북 김천~경남 거제를 잇는 남부내륙철도, 전북 새만금국제공항 등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사업에 대해 예타를 면제하기로 했다고 29일 발표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국가재정법에 따라 예타 면제 사업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예타 면제 사업은 23개, 24조1000억원 규모다. 앞서 17개 시·도가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예타 면제를 신청한 32개 사업(68조7000억원) 중 3분의 2가량을 선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광역별 1건 정도를 선정해야 할 것”이라고 ‘가이드라인’을 준 것보다 많다. 이명박 정부가 22조2000억원을 투입하며 대부분의 예타를 면제했던 4대 강 사업을 뛰어넘는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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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균형발전 프로젝트’란 이름을 붙인 데서 알 수 있듯 내세운 명분은 지역 균형발전이다. 이를 위해 광역 교통·물류망을 구축하고(10조9000억원) 도로·철도 인프라를 확충하며(5조7000억원) 지역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4조원) 데 빗장을 풀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연구개발(R&D) 투자 등 산업 육성(3조6000억원)에도 신경을 썼다. 가장 규모가 큰 사업은 문 대통령 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가 추진하는 남부내륙철도(4조7000억원)다.

예타 면제 사업, 수도권은 지역 균형발전 차원 제외시켜 

균형발전 취지에 따라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사업은 제외했다. 그러나 운정신도시~삼성을 잇는 GTX-A, 인천 송도~남양주 마석을 잇는 GTX-B, 안산~여의도를 잇는 신안산선 등 광역교통 개선 대책은 차질 없이 추진하기로 했다.

홍 부총리는 “국가 균형발전, 지역경제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 사업 계획이 구체화돼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는 사업 중 지자체 우선순위가 높은 사업을 최대한 반영해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현 정부 들어 지난해까지 예타 면제 사업 규모는 29조6000억원이다. 이미 박근혜 정부(23조6000억원)를 웃돈다. 이번 예타 면제까지 감안하면 단순 계산으로 53조7000억원에 달한다. 집권 3년 차인데 대표적 토건 정부로 거론되는 이명박 정부의 예타 면제 규모(60조3100억원)와 맞먹는다.

야당 시절 SOC에 비판적이던 현 정부의 전형적인 ‘내로남불’식 행정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성달 경실련 국책사업감시팀장은 “토건사업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지자체별 나눠먹기’식 예타 면제”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혈세 낭비를 막고 사업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1999년 도입한 예타 제도가 껍데기만 남았다는 비판이 크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타는 경제성뿐 아니라 지역 균형발전, 정책적 분석 등을 모두 종합한 조사인데 이를 건너뛰는 것은 세금을 낭비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기존 예타를 무력화해 더 이상 예타가 의미 없는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국비를 투입하는 만큼 재정도 부담이다. 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무적 목적이나 경기 부양을 위해 면제권을 남발할 경우 재정 건전성 훼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이에 대해 “면제 사업은 최대 2029년까지 연차적으로 추진된다”며 “향후 10년간 국비 기준 연평균 1조9000억원이 소요돼 중장기 재정 운용에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23개 예타 면제 사업 진행에 따른 경제 효과를 묻는 말에는 “오류 발생 가능성이 있어 계산해 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세종=김기환·김도년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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