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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DB형 예금자보호 안 되는 것, 알고 계신가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일의 퇴직연금 이야기(23)

지난해 퇴직연금 사업자 재선정에 대해 조언해 준 적이 있다. 그런데 사업자가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저축은행 상품을 제시하는 것을 보고 다소 놀랐다. [사진 pixabay]

지난해 퇴직연금 사업자 재선정에 대해 조언해 준 적이 있다. 그런데 사업자가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저축은행 상품을 제시하는 것을 보고 다소 놀랐다. [사진 pixabay]

지난해 연말 나는 모 공기업에 퇴직연금 사업자 재선정에 대해 조언을 해준 적이 있다. 은행·보험·증권 세 개 업권에서 각각 2곳 정도를 추린 다음 그중 가장 적합한 사업자를 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들 6곳의 사업자가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저축은행 상품을 제시하는 것을 보고 다소 놀랐다.

지난해 말부터 저축은행 예·적금 상품이 퇴직연금 상품으로 편입할 수 있게 되면서 기존 사업자들의 원리금 보장형 상품과 선의의 경쟁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긴 했다. 그러나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저축은행 예금을 제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금리, 시중은행보다 0.8%p 높아

현재 저축은행의 퇴직연금 12개월 약정 금리는 DC형(확정기여형)과 IRP(개인형 퇴직연금)의 경우는 2.70~2.20%, DB형(확정급여형)은 2.80~2.30% 선이고, 평균 금리는 연 2.58%다. 5개 시중은행의 평균 예금금리 1.75%보다 0.8%포인트 이상 높다. 금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퇴직연금 가입자에게는 솔깃할 수밖에 없는 수익성임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가입자 개인별 예금자 보호도 5000만원까지 되기 때문에 더욱더 매력 있는 제안이다.

그런데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저축은행일수록 신용등급이 낮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가장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K 저축은행은 BBB(+)의 신용등급을 가지고 있고, 가장 낮은 금리를 제공하는 S 저축은행의 경우는 A등급이다. 그런데 이들 저축은행 간의 금리 차이가 너무 크다. 무려 0.5%포인트 정도다. 이는 요즘과 같은 저금리 시대에 상당히 큰 금리 차이다.

금리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신용등급이 낮은 것이니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거의 모든 퇴직연금 사업자는 저축은행 상품을 선호하는 듯하다. 가입자 입장에서도 원리금 보장만 된다면 나쁠 것이 없어 보인다.

금리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신용등급이 낮은 것이니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거의 모든 퇴직연급 사업자는 저축은행 상품을 선호하는 듯하다. [중앙포토]

금리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신용등급이 낮은 것이니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거의 모든 퇴직연급 사업자는 저축은행 상품을 선호하는 듯하다. [중앙포토]

퇴직연금 운용의 기본이 투자이고, 투자 대상을 가입자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저축은행 상품이 편입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발생 가능한 문제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퇴직연금에 상품을 제공할 수 있는 저축은행은 신용등급이 BBB-이상으로 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안심해선 곤란하다. 저축은행 중 가장 신용등급이 높은 곳이라도 A를 넘지 못한다. 여기서 신용등급이라는 것을 무조건 믿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신용등급은 신용등급일 뿐이다. 그러므로 가입자는 저축은행 상품을 선택할 때 금리에 너무 치우는 것은 예기치 못할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DB형은 예금자 보호를 못 받는다는 것도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 물론 이 점을 환기해주지 않는 사업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에 따라 DB형을 높은 금리로 운용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저축은행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데, 예금자 보호가 안 된다는 사실이 간과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저축은행 상품의 금리에 대해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지금은 처음 제도 도입 단계라 어느 정도 불확실성은 불가피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저축은행이 제공하는 금리 공시체계를 신속히 공식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금리가 제공자 임의로 정해지고, 그것이 수시로 변경된다면 불확실성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피해가 생길 수 있다. 대표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사업자에게 제공되는 금리가 차별적일 가능성이다.

퇴직연금시장은 원리금 보장상품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향후 바뀔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인다. 가입자들은 약간의 금리 차이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만약 저축은행의 금리 결정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면 부조리가 싹틀 수 있다. 즉 높은 금리를 받기 위해 저축은행 앞에 줄을 서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저축은행들은 퇴직연금의 거대한 원리금 보장상품 시장을 받아낼 역량이 부족하다. 따라서 저축은행 상품의 금리에 목을 매는 사업자가 많아질수록 시장은 혼탁해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초기에는 사업자도 안정성이라든가 신용도 등을 고려해 접근하겠지만 가입자가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에 매달릴 가능성이 있다.

안정적 고객층 확보와 고금리 감당이란 양날의 칼

저축은행의 상품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고객을 확보한다는 측면이 있지만 우리나라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고금리를 감당해 낼 수 있겠느냔 양날의 칼을 쥐는 것이다. [사진 pixabay]

저축은행의 상품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고객을 확보한다는 측면이 있지만 우리나라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고금리를 감당해 낼 수 있겠느냔 양날의 칼을 쥐는 것이다. [사진 pixabay]

저축은행들도 예·적금을 퇴직연금 상품에 편입시키는 문제에 대해 나름 고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장점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고객을 확보한다는 측면이 있지만 우리나라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고금리를 감당해 낼 수 있겠느냔 양날의 칼을 쥐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품제공방법의 투명성을 스스로 만들어 갈 때 장기적으로 저축은행들이 퇴직연금시장에서 연착륙할 수 있을 것이다.

퇴직연금 시장은 원리금 보장상품 위주로 움직인다. 그런데 퇴직연금 사업자가 원리금 보장상품의 금리를 올리는 데엔 분명한 한계가 있어 감독 당국은 저축은행 상품을 편입시켜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은 십분 이해가 된다. 그러나 단지 상품의 편입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즉 퇴직연금 상품을 제공하는 저축은행에 대한 감독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굴러가야 하지만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것 또한 감독 당국의 몫이기 때문이다.

사실 퇴직연금시장의 가장 큰 장애는 낮은 수익률과 지나친 원리금 보장상품 편중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축은행의 상품을 활용해 수익률을 조금이라도 높여 보려는 노력은 의미 있는 접근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본시장 투자를 통해서가 아닌 저축 상품으로 수익률을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아직은 저축은행 상품을 활용하는 초입이다. 이럴 때 예상 가능한 문제들을 짚어 보고 대비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수익의 반대편 얼굴은 위험이기 때문이다.

김성일 (주)KG제로인 연금연구소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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