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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세] 새벽, 여성의 '배변 원정'···21세기 인도 황당 스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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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세 

“화장실이 없다고 그렇게 화가 난 거야?”(남편)  

“화장실도 없는 집인 줄 알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예요!!”(아내)

이 부부, 위기입니다. 새로운 생활을 꿈꾸며 시골 마을 청년과 결혼한 여자, 이럴 수가, 신혼 집에 화장실이 없단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거죠. 이 집안 여자들은 동이 트기 전인 새벽 4시 반, 단체로 인근 벌판에 볼일을 보러 갑니다. 참다 못한 여자는 “화장실을 지어주지 않으면 가출하겠다” 선언하고 집안은 발칵 뒤집히죠. 2017년 인도에서 제작돼 30억 루피(약 473억 원)의 수익을 올리며 히트한 영화 ‘토일렛: 러브 스토리(Toilet : Love story)’입니다.

인도 영화 '토일렛: 러브 스토리'의 포스터

인도 영화 '토일렛: 러브 스토리'의 포스터

21세기에 이 무슨 황당 스토리인가 싶지만,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몇 년 전 인도에서 화장실 때문에 이혼한 부부의 사연이죠. 이 부부만의 갈등은 아닙니다. 4년 전만 해도 인도 13억 인구 중 절반 가량인 약 6억 명(이 중 시골 거주자 약 5억 5000명)이 화장실 없는 집에 살고 있었다고 하니까요. 급한 일은 동네 들판이나 후미진 골목, 강가나 해변에서 해결하는 게 상식이었죠.

"인생이 배변과의 투쟁"···그들의 화장실 1억개 혁명

이랬던 인도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2014년 10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인도 전역에 화장실 1억 110만 개를 짓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작한 ‘클린 인디아(Clean India)’ 캠페인 덕분인데요. 최근 닛케이아시안리뷰(이하 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캠페인이 시작된 지 4년 반 만에 인도 전역에 무려 9000만 개의 화장실이 새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인도를 ‘노상 배변 없는 나라(Open Defecation Free)’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진행 중인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화장실 혁명’은 인도 사회를 어떻게 바꿔 놓고 있을까요. [고 보면 모 있는 기한계뉴스-알쓸신세]에서 인도인들의 ‘뒷간’ 사정을 들여다볼까 합니다.

“독립보다 화장실이 중요하다”

아이들을 데리고 볼일을 보러 가는 인도여성. [EPA=연합뉴스]

아이들을 데리고 볼일을 보러 가는 인도여성. [EPA=연합뉴스]

인도 북서부 시골마을 가도에 살고 있는 주부 샤밀라(40)는 최근에야 평생의 꿈을 이뤘습니다. 드디어 집에 화장실이 생긴 거죠. 1년 전까지만 해도 매일 새벽 두 딸을 데리고 마을 외곽 들판으로 ‘배변 원정’을 떠나야 했죠. 샤밀라의 스무살 딸 마니샤는 닛케이와의 인터뷰에서 “삶이 (배변과의) 힘겨운 투쟁이었다”고 말합니다. “아무도 우리를 볼 수 없는 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헤맸어요. 지금은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죠.”

2014년 시작된 클린 인디아 캠페인은 마하트마 간디 탄생 150주년이 되는 올해 10월 2일까지 계속됩니다. “독립보다 화장실이 중요하다”고 했던 간디의 정신을 기리는 의미가 있죠. 이 프로젝트에는 총 1조 루피(약 15조 8000억 원)의 예산이 쓰이고, 이를 인도 중앙 정부와 주 정부가 6대 4의 비율로 부담합니다. 세계은행으로부터 15억 달러(약 1조 6800억 원)를 차관 형식으로 지원 받기도 했죠.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엄청난 비용을 들인 만큼, 효과도 컸습니다. 노상 배변은 그동안 인도의 음식물과 수질을 오염시켜 각종 질병을 창궐케 한 주범이었으니까요. 2013년, 비위생적인 화장실로 인해 발생한 설사 환자가 1억 9900만 명에 달했던 인도였죠. 세계보건기구(WTO)는 클린 인디아 캠페인으로 인해 2014년부터 현재까지 설사로 인해 목숨을 잃을 뻔한 인도인 30만 명이 생명을 건졌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소의 똥은 귀하나 사람 똥은 더럽다

그런데 말입니다. 놀라운 경제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인도인들이 화장실 없는 생활을 고수해 온 이유는 뭘까요. 가장 큰 것은 힌두교의 가르침 때문이라고 합니다. 힌두교 교리에선 ‘깨끗한(淨)한 것’과 ‘부정(不淨)한 것’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는데요. 인도인들이 신성시하는 소의 똥은 귀하게 여겨지는 반면, 사람의 배설물은 가까이해서는 안되는 부정한 것으로 분류됩니다.

특히 기도실과 부엌이 있는 집 안에 화장실을 들이는 것에 대한 문화적 반감이 강했습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변을 치우는 일은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인 최하층 ‘달리트(Dalits)’가 전담해 왔죠. 인도인들에게 변을 관리하는 일이란, 카스트 체제 안에도 속하지 못하는 천민들이 하는 일이었던 겁니다.

인도 뉴델리의 야뮤나 강변에 임시 화장실이 지어져 있다. [AP=연합뉴스]

인도 뉴델리의 야뮤나 강변에 임시 화장실이 지어져 있다. [AP=연합뉴스]

소변 참다 방광 파열, 성폭행도 빈번  

이런 문화 속에서 여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들판에서 용변을 보다 뱀에게 물리고 벌레에게 쏘이는 일은 일상다반사죠. 소변을 참느라 방광염을 달고 살고, 심한 경우엔 방광 파열에 이르기도 합니다. 학교에도 화장실이 없어 생리 중인 여학생들은 학교를 쉬어야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밤에 야외에서 용변을 보다 성폭력에 노출되거나, 불법 촬영을 당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단 겁니다. 캠페인이 시작되기 직전인 2014년 5월, 인도 북부 시골 마을에서 들판에 용변을 보러 나갔던 14세, 17세 소녀 2명이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돼 발견되기도 했죠. 2013년 한 해 인도에서 신고된 성폭행 사건은 2만 4923건이었는데, 이 중 상당수가 야외 배변 중 당한 피해였습니다.

2018년 8월 인도 비하르 지역의 사리사브 파히에서 한 여성이 집에 화장실을 지은 것을 축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2018년 8월 인도 비하르 지역의 사리사브 파히에서 한 여성이 집에 화장실을 지은 것을 축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화장실이 없으면, 신부(新婦)도 없다’

볼일을 보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던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인도 북부 하리아나주에서 시작된 ‘노 토일렛, 노 브라이드(No Toilet, No Bride·화장실이 없으면 신부도 없다)’ 캠페인이 대표적인데요. 여성들이 화장실을 마련하지 않은 남자와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결혼파업’을 선언한 겁니다.

지난 해엔 남부 타밀 지역의 일곱 살 소녀가 집 안에 화장실을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어긴 아빠를 경찰에 사기죄로 고발했죠. 밖에서 용변을 보는 게 수치스럽다는 딸에게 “반에서 1등을 하면 화장실을 지어주겠다”고 했던 아빠가 여러 차례 약속을 어기자 법에 심판을 호소한 겁니다.

2018년 11월 19일 세계 화장실의 날을 맞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기념 행사에서 초등학생 소녀들이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2018년 11월 19일 세계 화장실의 날을 맞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기념 행사에서 초등학생 소녀들이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인도 최대의 행동 개조 실험

그러나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닙니다. 인도 정부는 빈곤 가정에 화장실 공사 비용의 4분의 3 정도인 1만 2000루피(약 19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는데요. 보조금이 화장실 완공 후 지급되는 구조라 애초 가진 돈이 없는 사람들은 공사를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모디 정부는 “시골 지역 화장실 보급률이 4년 전 39%에서 98%로 상승했다”고 발표했지만, 과장된 통계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활동가들은 “시골의 경우 아직 30% 이상의 가정이 화장실을 갖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상하수도 시설이 정비되지 않아, 화장실을 지어 놓고도 오물이 쌓일까 사용하지 못하는 가정도 많은 상황이구요.

문화적인 장벽도 아직 높습니다. 집 안에서 변을 보는 게 영 불길하게 느껴져, 고집스럽게 야외 배변을 지속하는 중·장년층도 허다합니다. 클린 인디아 캠페인을 총괄하는 파라미스와란 이예르는 “이번 사업은 인도 최대의 행동 개조 실험”이라며 이런 말을 남겼네요. “우리에게 가장 큰 도전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닌, 사람들이 오래된 습관으로 돌아 가지 않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문과 칸막이 없어 민망하던 중국 화장실...많이 달라졌네

인도보다는 조금 나은 상황이지만 역시 화장실 문제로 골치를 앓던 나라가 중국입니다. 중국의 공중화장실은 문과 칸막이가 없는 개방형에 최악의 위생 상태로 유명했죠.

이런 중국의 공중화장실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주석 지시로 2015년 4월 ‘공중화장실 개선 3개년 계획’을 수립해 지난 해 여름까지 총 7만 개의 공중화장실을 짓거나 리모델링했습니다. 앞으로 2년 내 6만 4000개의 화장실을 추가로 개선할 계획이라고 하죠.

중국 도자기를 모티브로 만든 중국 공공화장실. [사진 CCTV 화면 캡처]

중국 도자기를 모티브로 만든 중국 공공화장실. [사진 CCTV 화면 캡처]

이 과정에서 ‘5성급 화장실’로 불리는 초호화 화장실이 등장하기도했습니다. 쓰촨(四川)성의 한 관광지 화장실은 소파에 냉장고, 정수기, 전자레인지 등을 구비했구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한 공중화장실은 최고급 대리석에 금으로 세면대를 둘러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시 주석의 뜻을 받드는 관료들의 충성 경쟁이 빚은 부작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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