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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비권 행사한 임종헌과 달리 입 연 양승태, 혐의는 계속 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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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후 굳은 표정으로 검찰 차량으로 걸어가고 있다. 검찰은 25일 전날 구속된 양 전 대법원장을 비공개로 소환해 조사를 시작했다.최승식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후 굳은 표정으로 검찰 차량으로 걸어가고 있다. 검찰은 25일 전날 구속된 양 전 대법원장을 비공개로 소환해 조사를 시작했다.최승식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71번째 생일을 검찰 조사실과 6㎡독방에서 맞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25일 오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소환 조사를 시작했다.

檢, 양승태 구속 후 첫 소환조사 #'돌부처' 임종헌과 달리 입 열어 #구속 전 조사처럼 혐의 부인 #수의 아닌 양복입고 조사받아

24일 새벽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 첫 소환으로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수의 대신 양복을 입고 조사를 받았다. 일반 수감자들과는 다른 통로로 검찰에 들어가 취재진의 카메라도 피할 수 있었다.

지난해 10월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차장이 수의를 입고 포박된 채 검찰에 출석하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자 "인격 살인"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던 점을 검찰이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줄곧 묵비권을 행사했던 임 전 차장과 달리 대답을 하고 있다고 한다. 구속 전과 마찬가지로 혐의는 대부분 부인하는 상황이다.

검찰은 임 전 차장 수사에선 그가 '돌부처'처럼 입을 다물어 어려움을 겪었다.

임 전 차장이 양승태 대법원에서 '대법원장→법원행정처장→법원행정차장→법원행정처 일선 판사'로 이어지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중간다리 역할을 했다고 검찰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후 임 전 차장을 건너 뛰고 양 전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 일선 판사들에게 직접 지시를 내렸던 문건 등을 확보해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형사소송법상 검찰에게는 양 전 대법원장 기소 전 최장 20일간의 구속 수사 기한이 주어진다. 그 전에 기소해야 1심까지 6개월간 양 전 대법원장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 담을 혐의만 40여개에 달해 검찰은 주말을 포함해 남은 19일간 양 전 대법원장을 연속해 소환할 것으로 보인다.

1월 26일로 71번째 생일을 맞는 전직 사법수장이 검찰과 구치소를 옮겨 다니며 조사를 받게 된다는 뜻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여상원 변호사는 "무너진 사법부의 신뢰가 다시 회복되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구치소는 양 전 대법원장에게 6.56㎡(1.9평)의 독방을 제공했다. 과거 구속수감 됐던 재벌 총수들의 방과 같은 크기다. 이곳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형을 살고 있다. 지난 정부의 행정·사법 수장이 모두 구속된 것은 헌정사상 최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독방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방(10.6㎡·3.2평)보다는 조금 작다. 2017년 건립된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 독방(13.07㎡·3.95평)의 절반 수준이다.

서울구치소의 일반 수감자들은 양 전 대법원장의 방보다 조금 더 넓은 방(8.48㎡)에서 6명이 함께 지낸다. 전 대법원장에 대한 일종의 예우인 셈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구속 직후인 24일 오전부터 최정숙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등 변호인과 함께 검찰 조사에 대비한 준비를 시작했다.

법조계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 측의 구속 전 변호 전략에 낙제점을 주고 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영장심사에서 검찰이 제시한 증거와 진술 조작 가능성을 제기한 전략이 오히려 증거 인멸 가능성을 높여 구속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실무자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해 10월 28일 검찰 구속 후 첫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실무자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해 10월 28일 검찰 구속 후 첫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상원 변호사는 "임 전 차장처럼 묵비권을 행사하기 보다는 검찰이 제시한 혐의에 대해 각각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의 방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 변호사는 "일반 재판에서 피의자가 묵비권을 행사하면 판사가 '억울한 것으로 보지 않고 사법권에 저항한다'는 인상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주요 혐의 그래픽 이미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주요 혐의 그래픽 이미지.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사소한 사실 관계를 다투는 일반 형사사건이 아니라 재판 개입과 직권남용이라는 법리 다툼의 싸움"이라며 "구속 전 조사처럼 36시간 동안 조서를 열람하고 수정하는 방식은 지양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검찰 수사는 양 전 대법원장에게 익숙한 재판과는 많이 다르다"며 "검찰이 제시한 사실 관계의 일부는 인정하고 큰 틀에서 검찰의 '재판거래 논리'를 반박하는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특수수사 경험이 있는 부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도 "전직 사법수장이 임 전 차장처럼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며 "직권남용의 법리 적용을 두고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단이 검찰과 논리 싸움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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