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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교육회의 기대보단 우려가... 교육계선 "관심도 없어"

중앙일보

입력

2017년 5월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대통령 선거 마지막 유세에서 딸 문다혜 씨의 영상편지를 보고 있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선거 과정에서 교육공약 중 하나로 교육부를 대신 할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을 제시했다.

2017년 5월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대통령 선거 마지막 유세에서 딸 문다혜 씨의 영상편지를 보고 있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선거 과정에서 교육공약 중 하나로 교육부를 대신 할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을 제시했다.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가 주요 교육단체들과 협업해 미래를 향한 교육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양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총과 전교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와 공동성명을 통해서다. 그러나 지난 1년간 대입개편 공론화 등 지엽적인 이슈에 매몰돼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평가받는 교육회의가 올해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교육회의는 24일 오후 위 세 단체와의 신년간담회를 갖고 공동합의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은 급속한 변화에 직면해 있지만 획일적 서열화와 과잉 경쟁을 축으로 한 산업사회 교육체제에 갇혀 있다”며 “낡은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전환해 새로운 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미래 교육의 비전과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제는 진영 논리를 넘어선 독립된 교육기구 설립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계할 조건이 무르익었다”며 이를 위해 교육회의와 세 단체가 긴밀히 협업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2030년을 기준으로 전후 10년을 규정하는 미래교육체제 수립을 위해 다 같이 협력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대입제도 공론화를 이끌었던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 강정현 기자

지난해 대입제도 공론화를 이끌었던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 강정현 기자

 지난해 대입개편 공론화와 같은 단기 과제에 매몰되지 않고 선거공약이었던 국가교육위원회를 설립하고 장기 비전을 수립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를 위해 지난 달 청와대는 1기 교육회의에서 기획단장을 맡아 대입개편 공론화를 주도했던 김진경 신임 의장을 임명했다. 김 의장은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을 지냈다.

 그러나 교육회의를 바라보는 교육계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대통령 직속기구라는 위상과 다르게 지난 1년간 “성과가 별로 없다”는 평가가 많다. 출범 당시 “새로운 교육비전과 미래 정책 방향을 제시하겠다”(2017년 12월27일 첫 회의, 신인령 의장)고 선언했지만, 오히려 대입개편안을 놓고 1년간 허비했다는 비판만 받았다.

 특히 교육회의→특위→공론화위→시민참여단으로 이어지는 ‘하청에 재하청’ 방식은 여론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공론화위원장으로 국민의 선망이 두터운 김영란 전 대법관까지 영입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당시 교육시민단체인 공정사회국민모임은 “1년 간 아무 성과도 없이 수십억원의 세금과 인력만 낭비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가교육회의 위원 위촉식을 마친 후 오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상곤 교육부총리, 신인령 국가교육회의 의장, 문대통령, 이재정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의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가교육회의 위원 위촉식을 마친 후 오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상곤 교육부총리, 신인령 국가교육회의 의장, 문대통령, 이재정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의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처럼 교육회의에 대한 신뢰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미래 비전을 제시하겠다고 하니 교육현장에선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안광복 중동고 입학홍보부장(철학교사)는 “교육회의는 의사결정기구가 아닌 자문기구라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며 “여러 이해집단의 목소리를 표출하는데 그칠 뿐 리더십을 발휘해 다양한 의견을 하나로 수렴하는 역할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주요 사안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온 교총과 전교조가 합의점을 찾을 수 있도록 교육회의가 어떤 역할을 할지 의문이다. 두 단체는 지난해 대입개편 공론화 당시 교육회의를 여러 차례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교육회의가 모든 과정을 공론화위에 떠맡기고 책임지지 않으면서 ‘하청에 재하청’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교총)거나 “교육부 위탁업체로 전락하도록 놔둔 교육회의는 이번 대입 하청을 끝으로 즉각 해체해야 한다”(전교조)고 했다.

 아울러 얼마 전 부교육감 1명 증원 등 독자적 목소리를 내며 교육 자치를 강조해온 시도교육감협의회가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교육회의에 얼마나 협력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이해관계가 다른 단체들이 의견을 모으긴 어려워 보인다, 당장 자사고 폐지 문제만 해도 이견이 많다”며 “특히 교육감들이 중앙정부가 하는 일에 잘 따를지 의문이어서 이도저도 안 되고 유야무야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김승환 전국시도교육감 협의회 회장이 협의회 총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7일 김승환 전국시도교육감 협의회 회장이 협의회 총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교육회의의 위원 구성도 논란이 된다. 지난 1기 때는 민간위원 중 노무현정부, 전교조, 진보 시민단체 출신 등이 포진해 있이 편향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의장과 함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초대 기획단장 자리에 곽노현 전 교육감 시절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을 맡았던 조신 위원이 기용됐으나 지방선거 출마 등 이유로 대통령 임명장을 받은 지 두 달여 만에 그만둬 논란이 됐다.

 2기에서는 2명의 현장 전문가로 합류한 서길원 경기도교육청 교육2국장(전 경기 보평초 교장)은 혁신학교의 상징적 인물이고, 손지희 증산중 교사는 전교조 국장을 지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특정 단체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대표하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전문가 위주로 위원을 구성해야 한다”며 “미국 레이건 정부 당시 국가교육회의는 전문가들이 2년 동안 전국을 돌면서 의견을 청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낸 결론은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었다”며 “진짜 교육개혁을 하려면 이런 용기도 필요한데, 지금 국가교육회의는 사실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야당의 협조 여부도 불투명하다. 교육회의가 목표로 삼고 있는 국가교육위원회는 입법이 필요한데 지금처럼 여야가 대치하는 정국에선 입법 가능성이 적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정치권이 합의해야 실행력을 가질 텐데, 지금처럼 교육회의 혼자 떠들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교육계 역시 교육회의에 큰 관심도 없고, 이미 동력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윤석만·전민희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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