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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영의 글로벌 인사이트] 日, 한해 45만명 줄어도 경제 살아난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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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일손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기업이 개발한 로봇들. 지난해 11월 오리랩이 개발한 로봇 ‘오리하임 D’가 도쿄의 한 카페에서 서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손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기업이 개발한 로봇들. 지난해 11월 오리랩이 개발한 로봇 ‘오리하임 D’가 도쿄의 한 카페에서 서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일본에서 태어난 아기는 92만명으로 추산된다. 신생아 출생을 기록하기 시작한 1899년 이후 가장 적었다. 3년 연속 신생아 수가 100만 명을 밑돌았다. 지난해 사망한 일본인은 137만 명. 전후 가장 많았다. 인구 45만명이 순감했는데, 이 역시 역대 최대였다. 일본 총인구는 2010년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주요국 가운데 첫 사례다.

일하는 여성·고령자 늘어나고 #외국인 근로자 수용 혁명적 조치 #생산인구 감소에도 노동력 늘어 #“인구 줄면 경기 하강 통념 깨는 중”

인구가 줄면 성장이 둔화한다는 게 통념이다. 소비와 투자가 줄면서 경제가 활력 잃고 생산이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구 감소가 경기 침체를 부른다는 통념은 최근 일본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일본 기업들은 경쟁력을 되찾아 글로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청년들은 좋은 일자리를 골라서 취업한다. 일자리가 구직자보다 1.6배가량 많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가 긴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와 안정적 성장 기반을 다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성장률은 1% 안팎에 머물고 있지만, 74개월째 경기 확장이 이어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긴 확장기다. 지난 21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면서 일본 전망치는 종전 0.9%에서 1.1%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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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구 고령화와 생산인구 감소가 성장의 발목을 잡는 것은 분명하다. 아베 신조 총리의 친(親)성장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지난해 G7(주요 7개국) 가운데 성장 속도가 이탈리아 다음으로 느렸다.

하지만 인구 감소가 시작된 걸 감안하면 일본 경제는 여전히 탄탄하다. 생산가능 인구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년째 독일 다음으로 2위다. 노동력 감소 추세를 고려하면 일본 경제는 강한 편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분석했다.

인구 역학은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맞닥뜨리게 되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썬 일본은 그 운명을 거부한 셈이다.
인구 감소라는 난제를 일본은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 걸까. 생산인구 감소가 먼저 시작된 일본의 대응법은 곧 비슷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시사점을 준다.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은 한국 경제에도 최대 리스크이기 때문이다.

부족한 노동력은 역시 사람으로 메우는 게 가장 기본이다. 일본도 그런 방법을 택했다. 그동안 노동 시장에서 배제된 고령자와 여성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문을 활짝 열었다. 사람을 대신하거나 보조할 수 있는 로봇과 정보기술(IT) 개발에도 막대한 투자를 했다.

지난해 2월 도쿄의 한 카페에서 바리스타 로봇 ‘소여’가 커피를 만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2월 도쿄의 한 카페에서 바리스타 로봇 ‘소여’가 커피를 만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노력은 어느 정도 결실로 나타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는 2012년부터 최근까지 470만 명 줄었지만, 같은 기간 일하는 사람은 440만 명 증가했다”고 전했다. 고령자와 여성이 적극적으로 일터로 나왔기 때문이다.

신문은 “인구 고령화와 최저 수준 출산율 때문에 일본의 경기 침체는 오래전부터 예정된 것으로 여겨졌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성장에 제약이 있겠지만, 학계와 정부가 추정한 것보다는 경기 침체가 멀리 있을 수 있다”고 풀이했다.

생산인구 감소에도 노동력 공급이 증가하는 배경은 이렇다. 일손이 귀해지면서 일본 실업률은 2.5%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2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구인난이 심해지면 고용주는 사람을 가릴 처지가 못 된다. 소외됐던 고령자와 여성, 그리고 외국인 근로자에까지 기회가 온다.

다양해지는 노동력

다양해지는 노동력

이를 기회로 아베 정부는 일하는 문화와 관련 제도 개혁을 추진했다. 고령자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퇴직 연령을 늘렸다. 퇴직 연령을 없애거나 상향 조정할 것을 기업에 요구했다. 퇴직자를 재고용하는 제도를 갖추도록 했다.

2013년 고령자고용안정법을 통해 희망자가 있을 경우 기업이 65세까지 고용하도록 의무화했다. 고령 근로자가 늘면서 퇴직연금 가입 상한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여성 노동력은 최근 일본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중요한 요소다. 워킹맘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정책이 도입됐다. 가령 자녀를 양육하는 여성은 하루 6시간 근무를 신청할 수 있다.

덕분에 2017년 25~39세 중 일하는 여성 비율은 75.7%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기업이 다양한 근무 형태를 인정하면서 육아에만 전념하던 여성들이 일터로 돌아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녀 양육기인 30~40대 여성 취업률이 확 떨어지는 ‘M자형 곡선’도 상당히 완만해졌다. 2012년보다 일하는 여성 숫자는 200만 명가량 늘었다. 2012년 여성 경제참여율은 63%였는데, 2017년에 69%까지 올라갔다. 미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여성의 경제 참여 증가는 일하는 방식을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이시쿠라 요코 히토츠바시대 교수는 “일본 기업은 성과보다 장기근속 등으로 직원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이 때문에 장시간 근로와 야근이 잦고 생산성이 낮았다”고 말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여성이 늘고 근무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성과 평가와 보상에 대한 기준을 재검토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올 4월부터 일하는 방식 개혁 관련법이 본격 시행된다. 초과 근무 시간에 제한을 두는 게 개혁의 골자다. 아베 정부는 육아휴직 수당을 늘리고, 남성 육아휴직 기간을 연장했으며, 이사회 여성 비율을 높이라고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도쿄사무소의 이즈미 드발리에 애널리스트는 “지난 10년간 일본의 고용 문화가 많이 바뀌었는데, 특히 지난 5년간 변화가 급격했다”고 말했다.

인구변동

인구변동

인구 감소 일본에 활력을 불어넣은 세 번째 주체는 외국인 근로자다. 지난해 일본 정부는 금기를 깨고 단순 외국인 근로자 수용을 확대하는 ‘혁명적’ 조치를 발표했다. 4월부터 건설·간병·농업·조선·숙박 등 5개 분야에서 최장 5년 동안 취업할 수 있는 새로운 체류 자격을 부여한다.

외국인 기술 실습생은 3~5년간 일본에서 일한 뒤 최고급 기술자로 인정받으면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 5년간 블루칼라 외국인 노동자 34만 명을 유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민정책을 반기지 않던 일본이 스스로 장벽을 내린 셈이다.

드발리에 애널리스트는 “아베 정부가 하루아침에 이민정책을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조용히 진전됐다”고 말했다. 지진으로 인한 현장 복구와 2020년 도쿄올림픽 준비를 이유로 2015년 외국인 건설 노동자를 받아들였다. 일부 지역에 한해 외국인 가사도우미도 허용했다. 2017년에는 간병인에 문호를 열었다. 외국인 근로자 수는 2012년 70만 명에서 2017년 130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사람 손을 빌리는 데서 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처법은 기술 개발이다. 일본 기업들은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로봇 개발에 주력해왔다. 파나소닉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활용해 고령자가 걷는 데 도움을 주는 ‘스마트 워커’를 개발했다.

보안경비업체 ALSOK는 치매 환자를 추적할 수 있는 손톱 크기의 전자 기기를 만들었다. 스타트업 트리플W는 몸에 기기를 부착하면 방광의 미세한 떨림을 감지해 소변볼 때를 간병인에게 알려주는 웨어러블 기기를 개발했다. 적은 인력으로 환자를 돌볼 수 있게 도와주는 기기들이다.

도쿄의 신토미 요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들은 이미 소프트뱅크의 로봇 페퍼, 소니의 아이보, 인텔리전트시스템의 파로 등 로봇 20여개 모델과 함께 환자를 돌보고 있다. WSJ에 따르면 일본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 92개 중 25개가 헬스케어 분야다.

잠자는 노동력을 대거 끌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고령자·여성·외국인으로 일손 부족분을 대체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 존재한다. 로버트 펠드먼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는 “어린 자녀를 둔 여성의 경제 참여율이 거의 정점에 있다”며 “M 곡선도 거의 평평해졌다”고 말했다. 지금 같은 인구 감소 추세로는 더 많은 고령자와 여성이 노동 시장에 나오더라도 부족하다. 대부분 저임금 일자리인 데다 생산성이 낮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하지만 출산을 독려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일본 정치계는 잘 알고 있다. 지난해 집권 자민당 니카이 도시히로(80) 간사장이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은 이기적"이라고 말해 비난을 받자 아베 총리가 "우리 부부도 자녀가 없다"는 개인사까지 언급하며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아베 총리는 '출산 문제는 남이 간섭할 일이 아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일본 출산율은 몇 년째 1.4 안팎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이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인구 고령화가 진행돼도 일본 경제 성장이 멈추거나 살기 어려워진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국은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일본보다 훨씬 빠른 데다 국가와 개인 모두 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에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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