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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新대권무림

제주의 일곱 구슬을 쥐는 자, 천하를 쥐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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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지역 맹주편 ① 제주의 아들, 희룡공자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사마천은 『사기』에서 탐라의 전설을 이렇게 적고 있다.

녹지는 “부자만 사람이냐”에 울고 #공항은 “내 땅엔 안돼”에 막혔다 #강정은 비로소 고요에 잠겼지만 #바오젠의 적막은 불감당이라 #블록체인 특구는 기약없고 #자치경찰은 갈 길 바쁜데 #신재생은 허무에 이름을 묻었다 #언제 일곱 구슬을 다 얻어 #등룡의 꿈을 이룰 것인가

“시황 28년 제나라 사람 서불(徐巿) 등이 글을 올려 말했다. ‘바닷속에 삼신산(三神山)이 있는 바,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洲=한라산)산이라 합니다. 거기에 신선들이 살고 있으니 청컨대 재계하고 어린 남녀와 함께 신선을 찾으소서.’ 이에 시황이 서불에게 명해 어린 남녀 수천 명과 함께 바다를 건너 신선을 찾게 했다.”

진(秦)의 시황은 삼신산에 장생불로의 영약이 있다고 믿었다. “내 그것을 얻어 불로불사 하리라” 호언했다. 『사기』는 이후 일은 기록하지 않았다. 전설의 뒷부분은 야사로 전한다. “서불은 동남동녀 3000을 이끌고 삼신산의 마지막 영산, 한라산에 왔으나 신선도, 불로초도 찾지 못했다. 그리하여 서불과지(徐市過之=서불이 이곳을 지나다)란 글을 암벽에 남기고 일본으로 건너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서불이 돌아간 포구, 서귀포란 이름은 그렇게 전하였다.”

2200년 전 중원에서 시작된 탐라의 전설은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신선과 불로초는 없지만, 다 얻으면 천하를 호령한다는 7개의 무공이 당금의 제주 무림에 등장했다. 달리 7개의 용구슬(드래곤볼)로 불리는 이 무공들은 워낙 익히기 까다로워, 제주기(炁=제주의 기운)를 타고나지 않은 자 연성을 꿈꾸지 말라는 잠언이 전한다. 섣불리 익히다 주화입마, 화를 입어 반신불수가 되거나 패가망신한 자가 부지기수라. 그 일곱은 쌓고(功)·모으고(炁)·때리고(擊)·베고(斬)·힘쓰며(力)·잡고(擒)·재주부리는(術) 무공이니, 첫째가 녹지영리병원(공)이요, 둘은 강정마을 해군기지(기), 셋은 제2공항(격), 넷은 블록체인(참), 다섯은 신재생에너지(력), 여섯은 중국 관광객(금), 일곱은 자치경찰(술)이라.

강호의 현자들은 말한다. “중원이 이 무공들을 감당 못 해 탐라에 보냈다. 시쳇말로 테스트 베드, 시험 무공이라 불린다. 하나를 익히면 능히 지역의 패자가 될 것이요. 셋이면 일국의 제왕이, 일곱을 다 익히면 천하를 쥐리라.”

하나, 녹지영리병원功. 4년 전 그네공주가 창안한 무공으로 알려졌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뿌리는 대중검자에 맞닿는다. 대중검자는 무림지존좌에 오른 무력 1998년, 제주 무림을 국제자유무공도시로 탈바꿈하겠다고 선언했다. 무력 2001년엔 골격을 짜고, 2002년 무림특별법을 공포했다. 강호 무림의 금기로 알려졌던 영리병원공이 바야흐로 제주에 싹틀 씨앗을 뿌린 것이다. 하지만 10년이 흐르도록 누구도 이 무공을 익히려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만했다. 강호 백성들이 “익히면 맹장 개복(開腹)에만 수천만금이 든다” “부호들만 명의의 치료를 받고, 민초의 목숨값이 자갈돌만 못해질 것”이라며 마공(魔功) 취급을 했기 때문이다.

첫 수련자는 중국의 무림고수, 녹지(綠地)였다. 녹지는 무력 2015년 입문해 3년이 흐른 2018년 무공을 완성했지만, 강호의 민심(59%)은 녹지의 무공 폐지를 원했다. 이때 제주 도백 희룡공자가 분연히 일어나 “무사의 일언은 중천금, 신뢰는 지켜져야 한다”며 녹지의 무공 사용을 허락했다. 단 해외 무림인에게 한하되, 이를 어길 경우 무공을 박탈하기로 했다. 녹지는 크게 반발, 제주 무림과의 한판 승부를 벼르고 있다. 하지만 희룡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영리병원공에도 웬만큼 정통해 있다. 녹지가 감당하기 어렵다. 아니나다를까. 본 기자가 녹지의 본거지 서귀포 토평을 찾은 지난 12일, 병원의 문호는 굳게 잠겨 있었고 식솔 한 사람의 인기척도 없었다.

사실 녹지병원공은 진짜 영리병원공도 아니다. 피와 살을 뚫지 못하는 피부과, 성형과, 내과, 가정의학과 4개의 초식밖에 없다. 병상 수도 고작 47곳뿐이다. 말이 영리병원이지 실상은 관광·숙박·헬스케어 같은 잡술에 가깝다. 그럼에도 녹지영리공은 제주는 물론 강호를 흔들고 있다. 제대로 익혀 민초들의 걱정을 잠재우고 천하 무림에 펼칠 수 있는 자, 누가 될 것인가. 과연 나오기는 할 것인가.

둘, 강정마을炁. 강정마을 희봉 촌장(53)은 “해군 기지는 이젠 기성품이 됐다. 10년 갈등도 멈춰야 한다. 상생·화합만이 살길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무림 언론들이 되레 갈등을 더 부추겼다는 따끔한 지적도 했다. 강정마을기는 16대 무림지존 무현처사가 창안한 국가수호무공이다. 무현처사는 “평화의 땅에도 비무장은 없다”며 “(해군기지는) 제주 무림만이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극렬 반대”를 외치는 외지인과 낭인들이 몰려들면서 강정마을은 쑥대밭이 됐다. 2016년 해군기지 준공으로 큰 고비는 넘었지만, 십성(十成)의 경지에 이르려면 갈 길이 멀다. 희봉 촌장의 말마따나 “강정 민초들의 공동체 회복과 정부의 적절한 지원”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강정마을기의 완성이야말로 ‘국가사업과 보상’이란 큰 과제에 새 전범이 되어줄 터였다.

셋, 제2공항擊. 강호에 선보인 지 30년이 넘었지만 완성한 이는 명박대공이다. 명박은 무력 2007년 17대 무림지존 비무 때 제주신공항을 약속했다. 이후 10년 넘도록 누가 익힐지를 놓고 갑론을박하다 지난해 비로소 성산촌으로 결정됐다. 겉으론 반대의 목소리가 커 보이지만, 제주 바닥 민심은 찬성 쪽이다. 개발 이익을 누구와 얼마나 어떻게 나누느냐, 본토와 제주 간 알력과 갈등은 어떻게 봉합하느냐가 여전히 과제다. 희룡공자는 “용역 재검증 과정에서 본토의 국토부가 제주 무림을 배제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넷, 블록체인斬. 제주는 특별하다. 본토에서 금지된 무공도 얼마든지 익힐 수 있다. 제주특별법이 자유무공을 허락하고 있어서다. 블록체인참이 대표적이다. 시작은 청년이었다. 제주엔 1차 산업과 관광밖에 없다. 청년이 익힐 첨단 무공이 없다. 그러니 제주 청년이 본토로 간다. 블록체인참은 거꾸로다. 본토의 청년과 기업이 제주로 온다. 본토에선 암호화폐를 금지했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의 도구다. 제주 도청의 노희섭(43) 국장은 “암호화폐 없이 블록체인을 익힐 수 없다. 아직은 기관투자가만 가능하지만, 제주 무림에선 암호화폐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개인들이 함부로 익히다간 패가망신하기에 십상이다. 효과는 대박. 기업과 청년은 물론 다른 지방 무림관리들마저 제주를 찾아 배우고 있다. 블록체인참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과 개방, 자율의 힘을 극대화한 무공이다.

다섯, 신재생에너지力. 제대로 익히면 탄소 없는 섬, 미세먼지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2011년 ‘똑똑한 전기 나눔(스마트 그리드)’으로 시작했다. 가파도에서 7일간 탄소 없는 전력 공급에 성공했다. 성공 소식은 저 멀리 중동 땅까지 알려졌다. 지난 21일 두바이는 제주형 전기 나눔 초식을 수입해 준공식을 가졌다. 바다에서 선풍기를 돌려 전력을 만들어 낸 것도 제주가 처음이다. 전기차는 또 어떤가. 지난해 1만6000대를 돌파했다. 강호의 전기차 10대 중 4대가 제주에서 굴러간다. 희룡공자는 1호 전기차를 타고 다닐 정도로 열심이었다. 이 모든 것을 엮어 ‘무탄소 섬’ 초식을 고안한 것도 그다. 제대로만 익히면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최강의 무력이 될 수 있다. 이미 제주의 신재생에너지 수준(13.61%)은 본토(8%)의 두배쯤 된다. 이 무공은 그러나 단점도 있다. 돈이다. 무탄소 초식을 완성하려면 줄잡아 15조원, 제주 1년 예산의 3배가 든다. 관심 많은 해외 무림고수의 주머니를 빌려올 필요가 있다.

여섯, 중국 관광객擒, 바오젠 거리는 예전 같지 않다. 유커가 북적대는 모습은 사라졌다. 싼커(散客)들만 간간이 눈에 띈다. 중국인이 사들이는 땅도, 버리고 가는 쓰레기도 줄었다. 3년 전 300만명을 넘었던 유커는 지난해 66만명으로 급감했다. 고태호 제주연구원 위원은 “많이 오면 싫고 안 오면 아쉽다”며 “요즘이 아쉬운 때”라고 했다. 3년 전 1585만명을 찍은 제주 관광객 수는 2년 연속 쪼그라들어 지난해 1430만명에 그쳤다. 중문 단지 면세점 매출도 30% 넘게 줄었다. ‘중국 관광객 사로잡기’ 초식의 핵심은 ‘아쉽지도, 넘치지도 않게 유지하기’가 비결이지만 묘법을 찾지 못해 여전히 미완성이다.

일곱, 자치경찰術, 역시 무현처사가 창안자다. 2006년 7월 제주에만 시범 허용됐다. 본토에선 사용을 거부했다. 국가 경찰과 구분해 제주 포졸로 불리기도 한다. 숫자도 적고 수사권과 긴급체포권이 크게 미흡하다. 이웃 같은 친절함이 큰 강점이지만 범죄자들이 포졸을 깔보기 일쑤라는 게 치명적 약점이다. 이런 약점 때문에 무공을 익힌 지 10년이 넘었으나 채 삼성(三成)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당금 무림지존이 총애하는 무술이요, 전국 확대를 약속한지라 올들어 수련자가 크게 늘어날 예정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무공이지만 제주의 13년 연공 덕에 강호 무술 총람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제주인의 열망은 하나다. 제주 무림 출신이 지존좌에 앉는 것. 하지만 현실은 불감당이다. 제주 무림인은 고작 69만이다. 5000만 본토인을 어찌 당하랴. 탐라의 일곱 용구슬을 다 얻는다 한들 무림지존좌가 저절로 굴러들 리 없다. 제주인이 똘똘 뭉치면 불가능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끼리끼리 어울리고 패거리를 짓는 궨당(=친척) 기질의 제주 무림이 통으로 뭉칠 리 없다.

희룡은 일찍이 탐라의 무공에 천착했다. 그에게 물었다. 다 이루었는가. “아직이다.” 왜 아직인가. 6년 적공으로도 부족한가. “부족하다. 한 인간이 다 익힐 수 없다. 하늘의 뜻이 함께해야 한다.” 강호 무림은 암중모색, 어둠 속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다. 한국방은 지존 후보자 비무를 시작했다. 희룡은 “중원으로의 한 걸음을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처럼 참고 기다릴 터다. 기다림은 그러나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말한다. “모란이 피고 지는 날, 강호는 보게 될 것이다. 탐라의 전설이 일곱 구슬을 물고 비상하는 용틀임을.”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 다음은 경기의 바람, 이재명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