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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원, 백지신탁 문제에 "지겨워···나중에 얘기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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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23일 전남 목포 역사문화거리 박물관 건립 예정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23일 전남 목포 역사문화거리 박물관 건립 예정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무소속 손혜원 의원이 23일 국회 문화체육위원회 소속으로 목포 근대문화역사거리 내 10여채 이상의 건물을 산 것과 관련 “이해충돌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백지신탁한 크로스포인트가 목포 땅 사도록 한 것은 위법 소지 #손 의원 "목포서 건물 산 것은 이해충돌 아니다" 강조 #"국회의원으로서 모르는 이익 얻었다면 그것은 사과"

손 의원은 이날 박물관을 세우겠다고 밝힌 부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평생을 살면서 제 이익을 위해 행동하거나 움직인 적 없다”며 “제가 이 땅을 사서 수리하고, 지금까지 모은 나전칠기 유물을 목포시나 전남도에 다 드릴 것이다. 다 합하면 100억원도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제가 이익을 생각했다고 말씀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만 “제가 혹시라도 국회의원으로서 제가 모르는 이익을 얻은 게 있다면 그건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손 의원은 공직자윤리법 위반 논란이 된 백지신탁 문제에 대해서는 답변을 피했다. 그는 “이해 충돌 관련해서는 지겨워서 더 못 말하겠다”며 “백지신탁 문제는 나중에 얘기하겠다”고 한 후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손 의원이 주식을 백지신탁하고 남편에게 대표직을 넘긴 회사가 목포에 땅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상황이다.

2016년 6월 손 의원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당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배정됐다. 그해 8월 인사혁신처 내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는 손 의원이 보유한 전시행사 업체 ‘크로스포인트 인터내셔널’과 상임위 업무에 직무 연관성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당시 심사를 담당한 위원회 관계자는 “‘크로스포인트 인터내셔널’이 광고 관련 회사여서 문체위와 연관됐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손 의원과 남편은 그해 9월 30일 농협은행에 회사 주식 1만 주(100%)를 백지신탁했다. 이 주식은 어디에 어떻게 팔리는지 손 의원이 전혀 간섭할 수 없다. 또 공직선거법 제14조11항에 따라 신탁주식이 처분될 때까지 회사의 경영 또는 재산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재나 지시 등도 할 수 없다. 손 의원이 신탁한 주식은 아직 팔리지 않았다. 그가 목포 부동산 매입을 추천한 것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크로스포인트문화재단'과 백지신탁한 회사 '크로스포인트 인터내셔널' 명의로 산 목포 지역. [프리랜서 장정필]

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크로스포인트문화재단'과 백지신탁한 회사 '크로스포인트 인터내셔널' 명의로 산 목포 지역. [프리랜서 장정필]

백지신탁제도가 국내에 처음 도입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이다. 기업가 출신으로 주식이 많은 국회의원의 경우 관련 상임위에 가지 않는 방식으로 직무 관련성을 피해갔다.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인 정몽준 전 의원이나 안랩의 대주주인 안철수 전 의원이 이런 경우다.

하지만 장관 등 임명직 공무원은 적지 않은 논란이 됐다. 2003년 진대제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가 삼성전자 주식 9000여 주와 7만 주 스톡옵션을 보유한 게 실마리가 됐다. 2004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제가 가진 모든 유가증권 및 부동산을 금융기관에 백지신탁해 임기 내 재산증식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의정활동에만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2005년 권영세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박 대표가 공동발의자로 서명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황철주 당시 중소기업청장 후보자가 백지신탁제도를 이유로 자진 사퇴하자 정부는 이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당시 행정안전부는 주식을 팔지 않고 보관신탁만 해도 가능하도록 공직자윤리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아 무산됐다. 그러자 2015년 2월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국회에서 “공직자윤리법 중 주식 백지신탁법은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말했다. 이에 박완주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고위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된 주식을 보유하자는 것에 신중하자는 게 어떻게 악법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가 되며 서로의 입장은 바뀌었다. 지난해 11월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장관 자리에 역량 있는 분을 모셔야 하고 다른 나라는 기업인들도 내각에 들어오는데 우리나라는 백지신탁제도가 있어 기업인이 장관이 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법, 제도 탓하지 말고 대한민국에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많냐”고 맞받았다.

시민단체는 백지신탁제도 완화는 비합리적인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이은미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팀장은 “백지신탁제도는 고위공직자의 경우 사익과 명예직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신호다. 두 개를 병행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명쾌하게 보면 기업인으로 돈을 벌겠다는 욕구가 있다면 그것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한 직무수행을 위해 마련된 장치를 완화한다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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