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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기각러' 비난받은 허경호···박병대 영장판사 누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명재권·허경호만 남을 리가요. 다섯 명의 영장전담판사 모두 오늘 집에 못 갈 겁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영장전담판사에 여론 관심 집중 #고법 판사 "사실상 다섯 명이 같이 숙고해서 결정할 것"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 5인. 왼쪽부터 박범석(사법연수원 26기), 이언학(27기), 허경호(27기), 명재권(27기), 임민성(28기) 부장판사.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 5인. 왼쪽부터 박범석(사법연수원 26기), 이언학(27기), 허경호(27기), 명재권(27기), 임민성(28기) 부장판사. [연합뉴스]

23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누가 맡더라도 공정성 논란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던 양 전 대법원장의 영장심사는 사실상 다섯 명의 영장전담판사가 함께 맡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영장전담판사를 역임했던 한 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의 영장 여부는 사실상 80% 이상 영장전담 판사들끼리 의견 일치를 보고 나서야 결정될 것”이라며 “그래도 결정은 명 부장판사가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르면 이날 저녁 늦게, 혹은 내일 새벽 양 전 대법원장의 영장 여부가 결정될 예정인 가운데 ‘결정권’을 갖고 있는 영장전담판사들에 대한 관심도 다시 높아지고 있다. 특히 명 부장판사와 박병대 전 대법관을 심리할 허경호(45·27기) 부장판사의 ‘과거 이력’이 재조명받는 중이다.

명재권 부장, 양승태 구속영장 청구한 검찰 차장과 동기 

‘검찰 출신’ 명 부장판사는 충남 서천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1995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한동훈 3차장검사와 사법시험·연수원 동기다.

한동훈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3차장검사. [뉴스1]

한동훈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3차장검사. [뉴스1]

검사로 재직하던 명 부장판사는 지난 2009년 수원지법 ‘판사’로 전직했다. 당시에도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형사 재판부를 주로 담당했던 명 부장판사는 지난 2017년 7월 ‘여성혐오’ 논쟁을 일으킨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 김모(35) 씨에게 ‘피해자 여성 부모에게 5억원을 손해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영장전담 재판부에 합류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진행 과정에서 잇따른 법원의 영장 기각이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였다. 명 부장판사는 합류 한 달 만인 지난해 10월 3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차한성 전 대법관을 상대로 청구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중 발부된 첫 압수수색 영장이었다. 이에 따라 검찰은 고 전 대법관의 주거지와 박·차 전 대법관의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단 당시 임 부장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기각했다.

이후 명 부장판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 일선 경찰에 댓글 공작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하기도 했다. 그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검사 출신 부장판사가 양 전 대법원장의 영장실질을 담당하게 된 이유를 놓고 “영장 결과를 두고 불만을 표출하는 검찰에 대한 법원의 최선책”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검찰 출신 판사의 영장실질심사 결과에 대해서 법원에서만 근무했던 판사보다는 좀 더 신뢰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다.

'프로 기각러' 여론 뭇매 맞은 허경호 부장 

박병대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심사를 심리할 허경호(45·27기) 부장판사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프로기각러’라는 별명이 붙었다. 여론의 관심이 주목되는 주요 사건을 심리한 경우가 많은데, 구속영장을 기각할 때마다 비난 여론이 허 부장판사에게 쏟아졌기 때문이다.

허 부장판사는 지난해 7월 ‘강원랜드 지인 채용 청탁’ 혐의를 받는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당시 허 부장판사는 “범죄 성립 여부에 관해 법리상 의문점이 있고 현재까지의 수사 진행 경과와 권 의원의 주거 등을 고려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 비난 여론이 일며 허 부장판사에게도 비난이 쏟아졌다.

허경호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을 촉구하는 국민청원 게시글. [청와대 국민청원]

허경호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을 촉구하는 국민청원 게시글. [청와대 국민청원]

앞서 허 부장판사는 지난해 3월 ‘군 댓글 수사’ 축소 지시 의혹을 받는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했으며, 그 이후 ‘미투 운동’을 촉발한 ‘후배 성추행 의혹’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했다.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를 받는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해 논란이 일었다. 이 때문에 허 부장판사는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수차례 이름이 올랐다.

"다른 영장전담들도 같이 고민할 것"  

이 외의 다른 영장전담 판사들에게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임민성(49·28기) 부장판사는 투입 20일만인 지난해 10월 27일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구속시켰다. 당시 그는 “임 전 차장의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이 소명된다”고 구속 이유를 밝혔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임 부장판사가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심사를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기도 했다.

박범석(46·26기)·이언학(52·27기) 부장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과의 비교적 가까운 인연이 있다. 박 부장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인 2013년~2015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했다. 그는 지난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전ㆍ현직 판사들의 압수수색 영장을 무더기로 기각해 논란이 일었다.
이 부장판사도 지난해 10월 8일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는 박 전 대법관의 배석 판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 부장판사는 2월 정기인사를 앞두고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

한편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과 더불어 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도 한꺼번에 청구했기 때문에 영장전담재판부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법의 한 판사는 “영장을 법원이 한꺼번에 발부해준다면 법원 내부 갈등이 심화될 것이고 반면 법리적 판단에 따라 기각을 한다면 여론의 비난을 얻어맞게 될 것”이라면서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해도 기각해도 문제”라고 밝혔다.

이후연·박사라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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