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내식당, 외국인 요리사는 불법···어이없는 '주방규제'

중앙일보

입력 2019.01.23 08:00

업데이트 2019.01.23 10:02

서울 동국대 앞 한식당에서 조리장으로 일하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미로프씨가 음식을 요리하고 있다.

서울 동국대 앞 한식당에서 조리장으로 일하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미로프씨가 음식을 요리하고 있다.

서울 동국대 앞 한식당에서 조리장으로 일하고 있는 미로프(56)씨의 꿈은 기업에서 운영하는 단체급식장에 취업하는 것이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한식 조리사 경력을 쌓고 싶기 때문이다. 미로프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호텔 조리장으로 일했고, 한국으로 이주해 한식 조리사 자격증도 땄다. 순댓국에서 전골까지 한식 요리는 자신 있다. 하지만 미로프씨는 “단체급식장에서 일해보고 싶었는데 외국인에게 취업 문턱이 높아 갈 수 없었다”며”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데 취업이 안 되니 늘 골목식당만 전전하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광주광역시에서 거주하는 민다에이치버하이(47ㆍ필리핀)씨는 남편과 함께 국밥집 창업을 했지만, 불경기 여파로 식당을 접어야 했다. 고정적인 수입원을 원하던 그는 학력 무관에 4대 보험까지 보장해준다는 모 기업 구내식당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그러나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단체급식장에서 일할 수 없다는 채용 담당자의 설명을 들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규제 때문에 그렇다고 들었다. 식당에서 일하는 것 말고는 외국인이 한국에서 살아가기엔 너무 어렵더라”고 말했다.

국내 단체급식 업계가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단체급식의 경우 철저한 위생 관리와 안전 예방이 중요하지만, 내국인이 기피하는 일터로 취급받으면서 채용은 요원하다. 하루 3000여 명이 이용하는 일부 대형병원의 경우 조리실 보조 인력 1명이 80여 명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다. 충원되는 인력이 없으니 기존 근로자의 업무 강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지고, 구인은 점점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업계에선 가장 현실적인 돌파구로 ‘외국인 근로자’ 채용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단체급식장의 외국인 채용은 불법이다. 정부 규제 때문이다.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선 외국인 인력 고용허용 업종으로 ▶한식 음식점업 ▶외국인 음식점업 ▶기타 간이 음식점업만 명시하고 있다. 고객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같은 서비스 업종임에도 불구하고 규제에 가로막혀 단체 급식장의 인력난은 가중되는 상황이다.

대기업 구내식당에서 근무하는 김옥희씨가 식자재를 다듬고 있다.

대기업 구내식당에서 근무하는 김옥희씨가 식자재를 다듬고 있다.

하루 수천 명이 이용하는 대기업 구내식당에서 근무 중인 김옥희(52) 씨는 “구내식당 주방 보조 일이 힘들다는 인식 때문에 인력 충원이 안 된다”며 “조리실 보조 인력 1명이 적게는 50명에서 많게는 70명의 하루 식사를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조리실 보조 인력 1명당 최대 40~50명 정도의 식사를 보조하는 것이 적정한 수준이라고 본다. 주방 서비스 업무를 담당하는 김씨의 일과는 이렇다. 새벽에 출근해 하루 식단표에 맞게 식재료를 다듬고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아침 배식이 끝나면 급식장 정리와 설거지를 한다. 이후 점심 준비를 하고, 점심이 끝나면 다시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한정된 근무자가 연장 근로와 잦은 교대 근무에 시달리면서 기존 인력은 피로 누적을 호소한다.

김씨는 “단체 급식은 철저한 위생 관리와 안전 예방이 중요한데 정작 일할 사람이 없어 서비스의 질적 개선이 더딘 상황”이라며 “자칫 식중독 같은 문제가 생길까 늘 조마조마하다”고 덧붙였다.

구내식당 위탁 운영 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루 일당 15만원의 파출 인력을 쓰고 있다. 그나마도 고비용의 파출 인력이 장기간 근무한다면 서비스가 유지되지만, 대부분의 인력이 6개월 미만의 단기 근무를 원하고 있다. 급식업계 관계자는 “새롭게 오는 파출 인력마다 업무 교육이 필요하고 숙달되는 시간까지 기다려 줄 수가 없다”며 “잦은 인력 교체가 기존 근무자의 과로와 식당 내 안전사고 위험을 더 부추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식품안전정책위원회에선 단체급식의 안전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내 단체급식 비중이 2010년 27.8%에서 2016년엔 33%로 늘어났다”며 “2017년 식중독의 45.7%가 집단 급식에서 일어났다. 급식의 모든 과정을 주의 깊게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조일호 식품산업협회 전무이사는 “관련 법률상 고용노동부가 매년 발표하는 ‘외국인력 고용 허용 업종’에 ‘단체급식업(구내식당업)’을 추가하면 국내 단체급식장에서도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게 된다”며 “제도 개선이 이뤄진다면 단체급식장에서 지금과 같은 인력난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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