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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쥔 건 월 25만원뿐…복지 사각지대 모녀 또 극단 선택

중앙일보

입력

복지 사각지대 이미지. [연합뉴스]

복지 사각지대 이미지. [연합뉴스]

지난해 송파 세 모녀 4주기 추모제. [연합뉴스]

지난해 송파 세 모녀 4주기 추모제. [연합뉴스]

치매를 앓던 80대 노모와 50대 딸이 동시에 숨진 채 발견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0여년간 단둘이 살아온 모녀는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이 복지 안전망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2014년 2월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일명 ‘서울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떠오른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이달 3일 서울 중랑구 망우동의 한 반지하 주택에 살던 김모(82)씨와 딸 최모(56)씨가 숨져 있는 것을 집주인 배모(73)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들은 발견 당시 각자 다른 방에서 숨져 있는 상태였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10여년간 돌보던 딸이 어머니를 먼저 죽게 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 딸도 대학 시절부터 대인기피증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타살 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1차 소견에서 김씨 모녀의 사인을 질식사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 것으로도 파악됐다.

이날 중랑구청 등에 따르면 특별한 직업이 없는 모녀는 어머니 김씨가 매달 받는 노인 기초연금 25만원으로 생계를 겨우 이어갔다. 최근에는 월세도 내지 못해 보증금에서 월세를 차감할 정도 형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왜 사회 안전망은 이들 모녀를 비껴갔을까.

일단 이들이 공과금 체납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체납 가구 등의 명단을 기반으로 위기 가정을 파악하고 있다. 모녀는 공과금과 건강보험료를 꼬박꼬박 냈다고 한다. 딸 최씨는 월세 보증금에서 차감하는 방식으로 배씨에게 돈을 빌려 생활비를 충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또 생계가 곤란한 저소득층에게 정부가 생계급여를 지급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도 선정되지 않았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급권자나 친족 등이 지방자치단체에 금융·신용·보험정보 제공 동의서 등을 제출해야 하는데, 이들은 제출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 모녀는 서울시 공무원이 직접 복지서비스가 필요한 대상을 발굴하는 ‘찾동’ 사업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찾동 사업이 망우3동에 도입된 지난해 65세·70세를 맞은 노인 또는 혼자 사는 노인만이 전수 방문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기초연금 25만원 외엔 이들이 받은 정부 지원금은 없었던 셈이다. 다만 이들 모녀가 생활고에 시달렸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과 중랑구청은 수사를 진행 중이다.

중랑구청 관계자는 “두 모녀가 이웃과 왕래가 워낙 적어 구청이나 주민센터에서도 위기가정으로 파악하지 못했다”며 “향후 전수 방문 대상을 확대하는 등 사각지대를 줄여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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