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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주도형으론 산업 고도화 한계…핵심 기술·플랫폼 등 '무형자산' 늘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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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화인중공업이 개발한 로봇 플라스마 커팅 머신. 이 로봇은 사물인터넷(IoT)으로 철 자재 제작 설계도 전송 받아 스스로 작업한다. [김도년 기자]

화인중공업이 개발한 로봇 플라스마 커팅 머신. 이 로봇은 사물인터넷(IoT)으로 철 자재 제작 설계도 전송 받아 스스로 작업한다. [김도년 기자]

#정부는 대표적인 산업 정책으로 중소기업 현장 스마트화를 꼽았다. '뿌리 산업'에다 2022년까지 스마트공장 3만개를 도입하면 생산성은 30% 오르고, 고용도 기업 1곳당 2.2명씩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당 보조금 한도를 기존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높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스마트공장에 필요한 소프트웨어·센서 기술 등은 수입해야 하는 것도 많다"며 "자칫 정부가 해외 기업에만 좋은 일을 하는 꼴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제조업 역성장, 정부 대책은?

#지난해 11월 제조업 평균가동률 전망치는 72.7%를 기록했다. 2015년 74.4%에서 꾸준히 내렸다. 이는 국내 10대 주력 산업 부가가치·노동생산성 증가율 등이 최근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자본·노동을 투입해도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줄다 보니 생산 설비를 가동할 유인이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고용 악화 원인으로 '주력 산업'을 지목했다. 기업인에게는 "고용·투자에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한 관계자는 "생산성이 떨어져 고용·투자 의지가 줄어든 상황에서 이를 늘리라고 하면, 기업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정부의 주력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2019 경제정책방향]

정부의 주력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2019 경제정책방향]

"주력 산업 고도화. 국가 주도형으론 한계"

잇따라 발표된 대책과 대통령 현장 소통에도 정부 산업 정책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저성장 국면에서 산업 구조 고도화를 이룰 새로운 접근법을 요구한다. 하지만 정부는 4차 산업혁명 대응에도 '산업화 시대' 때처럼 국가 주도형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지적이다.

'2019년 경제 정책 방향'에 나온 주력 산업 정책도 '정부가 이끌고 민간이 따라오는' 형태다. 정부가 대통령 임기 말(2022년)까지 스마트공장을 3만개로 늘리고, 인공지능 전문기업도 100곳을 육성하는 식이다. 지능형 반도체, 지능형 로봇, 바이오헬스, 자율주행 차, 드론, 스마트시티 등 미래 혁신 기술도 정부가 정했다. 민간 수요 조사를 거친 분야도 있지만, 정부가 민간에 과제를 할당하고 보조금, 연구개발(R&D) 예산 등을 지원하는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역대 정부 산업 정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세대성장동력(노무현), 신성장동력(이명박), 미래성장동력(박근혜) 등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간판'은 달라졌다. 그러나 정부가 특정 산업을 지정해 육성하는 형식은 그대로였다. 정부가 육성 산업을 정하면 증권가에선 관련 테마주 찾기 열풍이 뒤따른다. 자본시장 투자가 특정 분야에 쏠리다 보니, 민간에서도 정부 육성 사업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조선사들이 잇따라 투자했다가 대규모 부실로 돌아온 '해양플랜트' 분야가 대표적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정부는 산업 고도화에 따른 실업·갈등 해결에 집중해야"  

전문가들은 정부는 직접 '선수'로 뛰기보다 산업 고도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이다. 독일 정부는 스마트공장 확산으로 실업 우려가 커지자 정부가 일자리 영향 평가를 시행하고 노동자 재교육, 실업 대책 마련(노동 4.0)에 나섰다.

반면 한국은 정부 정책의 짜임새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문 대통령은 최근 고용 악화 원인으로 '무인화에 대한 미흡한 대응'을 꼽았지만, 대기업의 스마트공장 확산에 따른 일자리 영향 분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숙박·차량 공유 등 공유경제 활성화 대책을 내놓기 전에도 경제 효과 분석은 없었다. 이해당사자가 정책 효과를 짐작할만한 근거가 없다 보니 카풀과 택시 업자 간 갈등처럼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엔 규제를 혁신해 신기술 도입을 장려한 뒤에는 실업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부의 후속 대책이 따라줘야 하지만,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공장 늘리기보다 특허 등 '무형자산' 투자 늘려야" 

산업계 투자 우선순위도 공장·기계 등 '유형자산'보다 지식재산권·플랫폼 등 '무형자산'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내 기업들은 단순 조립·가공업에만 집중한 나머지 핵심 소프트웨어와 IT 플랫폼 개발엔 뒤처졌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 기술 특허와 표준 선점을 위한 지식재산 투자 증가율 지표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의 지식재산 투자는 매년 9.2%씩 늘었지만, 2012년 이후 최근 5년 동안에는 3.6% 증가에 그쳤다. 건설(6.2%)·설비 투자(4.5%) 증가율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전현배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진국은 '자본 없는 자본주의'로 진화하고 있지만, 한국은 유형자산 중심의 경제 구조에 머물러 있다"며 "한국의 무형자산 투자 규모는 경제 위기를 겪는 스페인·그리스 등과 비슷해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R&D 세제 혜택 늘리고 실패 후 재기 돕는 복지 늘려야"  

전문가들은 정부는 우선 기업의 연구개발(R&D) 세제 혜택부터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일본 등 주요국은 R&D 세제 혜택을 늘리고 있지만, 한국은 반대로 대기업 R&D 세액 공제율(당기분 방식)을 0~2%까지 내렸다는 것이다. 또 인재들이 신사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도록 복지 제도를 늘리고, 해외 스타트업·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이민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개별 기업·연구소가 보유한 기술을 사업화할 수 있는 생태계 마련도 강조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자동차·조선·IT 등에서 내로라할 기업들이 있지만, 각자도생하다 보니 주력 산업 전반이 위기에 빠졌다"며 "정부는 기술 융합을 이룰 생태계를 어떻게 조성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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