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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요람에서 무덤까지

5분 만에 1억 송금한 임 교수 유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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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21일 오후 1시께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 본관 3층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진료실 앞에 유니폼을 입은 보안요원이 지키고 있다. 진료실을 오가는 사람을 면밀히 관찰한다. 이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가 환자의 흉기에 찔려 숨지면서 달라진 풍경이다. 1층 로비 ‘추모의 벽’에는 환자와 보호자의 그리움을 담은 스티커가 가득하다. 한 여성 환자는 ‘교수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라는 스티커를 정성스레 붙인다.

임 교수의 유족은 조의금 1억원을 끝내 기부했다. 이달 초 상중에 조의금 절반씩 병원과 정신건강학회에 기부한다고 발표했고, 주위에서 “애들(고 2, 초 5)이 어린데”라며 말렸는데도 듣지 않았다. 유족은 “앞으로 애들 데리고 살려면 생계도 생각해야 하지만, 남편 추모사업이 잘되었으면 한다. 그러면 저나 아이들이 살면서 힘을 얻을 것 같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강북삼성병원이 기부금 수령을 거부하자 유족은 학회에 전액 내놨다. 학회 측이 18일 오후 계좌번호를 알려주자 5분도 채 안 걸려 송금했다고 한다.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임 교수의 절친인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형편이 결코 여유 있지 않은데…”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학회는 기부금에다 1억원을 더 보태 ‘임세원상’을 만들 예정이다. 의료진 안전과 정신질환 편견 해소에 기여한 사람을 기리는 상이다.

유족은 임세원상 관련 위원회에 참여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알아서 해달라. 종종 소식을 들었으면 한다”고만 했다. 12일 모교인 고려대 의대 교정에서 열린 추모식에도 보이지 않았다. 간략한 ‘유족 인사’ 편지로 대신했다. 임 교수의 부인은 “아직도 이 상황이 꿈이길 바라지만 남편을 계속 기다리는 강아지, 에몽이가 마음을 더 아프게 합니다. (중략) 아직은 가해자를 용서하겠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남편이 항상 자랑스러워하고, 열심히 하였던 정신질환 환자들이 치료를 더 잘 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라고 환자를 걱정했다. 장례 때 보여준 절제된 모습이 변함이 없다.

유족은 ‘임세원법’을 고대한다. 이런 이름의 법안이 27개 국회에 발의돼 있다. 법만으로 부족하다. 지역사회에서 환자를 챙기는 조직과 인력이 대폭 늘어야 한다. 사망 당일 밤새 울고, 장례식 때 내내 울었다는 우울증 환자는 임 교수의 죽음을 ‘어미새를 잃은 슬픔’으로 표현했다. 정신건강을 암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혁신 없이는 어미새가 결코 다시 날지 못할 것이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