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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 122만 마리 중 돌아온 건 4마리…그러나 희망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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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이현상 논설위원이 간다] 국산 명태 복원의 현장

지난해 5월 한해성수산자원센터에서 키운 어린 명태를 강원도 고성군 앞바다에 방류하고 있다. 방류하는 명태의 크기는 봄에는 3~8㎝, 가을에는 10㎝ 이상이다. [연합뉴스]

지난해 5월 한해성수산자원센터에서 키운 어린 명태를 강원도 고성군 앞바다에 방류하고 있다. 방류하는 명태의 크기는 봄에는 3~8㎝, 가을에는 10㎝ 이상이다. [연합뉴스]

자취를 감췄던 명태가 동해에서 다시 잡히자 해양수산부가 진행하는 명태 복원 사업에 관심이 높아졌다. 유전자 검사 결과, 방류 명태가 아니라 자연산 명태란 게 밝혀지자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러나 복원 사업의 성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의 한 축을 담당하는 강원도 한해성수산자원센터를 찾았다. 명태 인공 부화 및 생육, 방류를 담당하는 곳이다. 이번 겨울 명태가 돌아왔던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공현진항 바로 근처다. 여기서 자라고 있는 생후 23개월 명태의 눈으로 국산 명태 복원의 현주소와 가능성을 짚어봤다.

모두 ‘할머니 명태’ 한 마리의 자손 #인공 1·2세대 합쳐 122만 마리 방류 #2세대, 아직 어획 가능 크기 안돼 #“복원 가능성 확인만으로도 성과” #부화 후 첫 해 생존률 1%도 안돼 #생태·습성·이동경로 더 연구해야

사실 저는 짐작했습니다. 이번에 잡힌 명태들이 저와 핏줄을 나눈 형제들이 아니란 걸. 사라졌던 명태들이 갑자기 나타나자 사람들은 흥분했습니다. “국민 생선 명태가 돌아왔다!” 해양수산부가 2014년 시작한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가 결실을 거둔 것 아니냐는 성급한 기대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자연산 명태란 게 밝혀지자 실망한 사람들은 이제 이런 질문을 하네요. “아니, 그동안 122만 마리 넘는 명태를 방류했다는데, 다 어디 간 거야?”

인사가 늦었군요. 저는 강원도 한해성수산자원센터 명태동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생후 23개월 명태 ‘G2’입니다. 사실 제 이름이 따로 있는 건 아닙니다. 그저 소개를 위해 스스로 붙여 봤습니다. 프로젝트 2세대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2017년 2월 이 센터에서 부화했습니다. 그 해 부화해 같이 자랐던 형제(혹은 사촌) 30만 마리는 거의 다 방류되고, 저를 포함한 1500여 마리만 연구용으로 따로 남아 있습니다.

수조에서 자라고 있는 명태들.

수조에서 자라고 있는 명태들.

국산 명태 복원의 기대가 걸려있는 저는 여기서 ‘귀하신 몸’입니다. 우리 명태들은 크기·연령에 따라 지름 6m 수조 6개에 나뉘어 있습니다. 심층해양수까지 섞은 섭씨 7도 내외의 바닷물에서 크릴새우·양미리 같은 사료를 먹으면서 크고 있습니다. 명태동 한쪽 사무실에서는 수온과 산소포화도 등이 실시간으로 모니터 되고 있죠. 수조 옆에는 수정란을 채집하는 촘촘한 망(網)이 있습니다. 수정란은 물을 채운 비커에 담아 분류 작업을 합니다. 건강한 알은 물에 뜨고, 죽은 건 가라앉습니다. 우리 명태는 1월에서 4월 사이에 네댓 차례, 많게는 10회까지 알을 낳습니다. 이 시기 여기 직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집니다.

이곳에 사는 명태들은 모두 제 형제이거나 사촌들입니다. 할머니 한 분의 손자·손녀들이란 이야기죠. 할머니 이야기부터 해야겠네요. 할머니 몸값은 50만원이었습니다. 해수부가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살아있는 명태에 내건 현상금이었습니다. 할머니는 2015년 1월 어느 날 새벽, 40m 수심에 설치해놓은 정치망(定置網)에서 건강한 몸으로 잡혔습니다. 그것도 알이 잔뜩 밴 상태로! 지금 저를 키우고 있는 한해성수산자원센터의 서주영 연구사(이학박사·42)에게는 다시 없을 행운이었습니다. 우리 명태는 성미가 급해 그물을 올리는 과정에서 대개 죽어 버립니다. 서 박사는 그 전해, 죽은 성체에서 간신히 확보한 알로 치어 9만4000마리를 부화시킨 적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유도 모른 채 두 달 만에 모조리 죽어버려 이만저만 낙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70㎝ 크기의 건강한 암컷 성체를 확보했으니 이런 행운이 없었던 거죠.

국산 명태 복원의 디딤돌을 놓은 할머니는 그해 10월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셔도 유전자 마크 개발을 위해 연구팀에 시신을 바쳤습니다. 할머니의 자식, 즉 ‘인공 1세대’는 3만 마리였습니다. 이 중 반이 2015년 말 동해에 방류됐습니다. 이듬해 가을, 센터에 남았던 1세대가 산란에 성공, 2세대가 부화했습니다. 어류 양식에서는 인공 부화시킨 1세대가 다시 산란과 부화에 성공하면 양식 기술의 완성으로 친다는군요. 명태의 ‘완전 양식’ 성공은 세계 최초라지요? 이렇게 태어난 2세대 중 재작년 30만 마리, 작년 91만 마리가 동해에 방류됐습니다.

한해성수산자원센터 서주영 연구사(이학박사)가 명태 수조의 온도를 점검하고 있다. [이현상 기자]

한해성수산자원센터 서주영 연구사(이학박사)가 명태 수조의 온도를 점검하고 있다. [이현상 기자]

해수부는 ‘완전 양식 성공’이라고 흥분했지만, 사실 진짜 성공인지는 좀 더 기다려봐야 합니다. 치어 생존율을 높이는 것이 제일 난제입니다. 민간 양식장에 분양한 치어들은 대부분 죽어버렸습니다. 실험실 조건에서도 수정란에서 종묘가 부화할 확률은 5%인데, 이마저도 여름을 지나면서 80~90%는 죽어버린답니다. 결국 가을까지 가면 생존율은 1% 밑으로 떨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부화 열흘쯤 되면 배(체강)에 가스가 차면서 죽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른답니다. 먹이, 수온, 용존산소량, 심지어 해수의 금속성 양이온 농도 등 온갖 조건을 바꿔가면서 자료를 축적하는 단계입니다. 하기야 생존이 그렇게 쉽다면 동해는 온통 제 친척으로 덮여 버렸게요.

프로젝트 시작 이후 지금까지 연근해에서 잡힌 명태 중 방류 명태로 판명된 개체는 네 마리였습니다. 세 마리는 유전자 검사로 밝혀졌고, 한 마리는 몸에 부착된 표지를 보고 알았지요. 숫자가 적다고 실패라고 보기는 성급합니다. 이 네 마리는 2015년 말 방류했던 1세대 1만5000 마리에 포함된 개체라고 봐야 합니다. 재작년과 작년에 2세대 121만 마리가 방류됐지만, 이들이 조업 금지 기준 27cm 이상으로 자라기는 아직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 넓은 동해에서 1만5000 마리 중 네 마리가 어디냐. 오히려 희망이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서주영 연구사의 말입니다.

제가 서두에서 이번에 잡힌 명태들이 제 형제들은 아닐 거라고 했지요? 그 이유도 몸집 때문입니다. 이번에 잡힌 명태 크기가 30㎝ 정도였다는군요. 그런데 제 크기가 딱 그 정도입니다. 사육장에서 금이야 옥이야 대접받으며 좋은 사료 배불리 먹고 자란 제가 겨우 30㎝인데, 그 척박한 바다에서 컸을 형제들이 같은 몸집일 리 있겠어요? 방류 명태가 돌아오는 것을 확인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제 짐작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모르지요, 바다가 우리 명태 자라기에 더 좋을지도.

명태를 국민 생선이라며 떠받치지만, 사실 인간이 우리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답니다. 회유성 어종이란 건 알지만, 정확한 이동 경로나 생태·습성 등은 아직도 연구 중이랍니다. 찬 조류를 따라 저 멀리 오호츠크로 갔다 돌아온다는 설, 동해 연안 심해에서 지내다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나온다는 설 등이 엇갈립니다. 흔하디흔하던 명태가 2000년대 들어 사라진 원인에 대해서도 추측이 분분합니다. 지구온난화로 북쪽으로 이동해버렸다는 설, 지금 제 크기도 안 되는 어린 놈들(노가리)을 마구 잡는 바람에 씨가 말랐다는 설 등등. 사라진 우리 동료들을 다시 불러들이려면 전문가들이 좀 더 노력해야겠지요. 오늘(21일)부터 크기에 상관없이 우리 명태를 못 잡게 한다니 좀 더 기대를 걸어봐야지요.

지금은 제 동료들과 좁은 수조 안을 돌고 있지만, 제 꿈 역시 짙푸른 동해입니다. 저 넓은 심해에서 마음껏 뛰어놀다 힘차게 꼬리를 퍼덕이며 돌아오는 것. 그러다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려 가난한 시인의 술안주가 된다면…. 영광이겠죠?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