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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거인’… 전기차 제국 꿈꾸는 폴크스바겐

중앙일보

입력

‘완성차 거인’ 폴크스바겐이 세계 1위 전기차 회사를 꿈꾼다.

헤르베르트 디스 폴크스바겐 그룹 회장은 지난 14일 ‘2019 북미 국제오토쇼(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참석해 “미국 테네시주 채터누가에 전기차 공장을 짓고 2022년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헤르베르트 디스 폴크스바겐 그룹 회장은 '완성차 거인' 폴크스바겐 그룹의 미래차 드라이브를 주도하고 있다. 디스 회장이 지난해 8월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그룹의 미래 전략을 설명하는 모습. [AP=연합뉴스]

헤르베르트 디스 폴크스바겐 그룹 회장은 '완성차 거인' 폴크스바겐 그룹의 미래차 드라이브를 주도하고 있다. 디스 회장이 지난해 8월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그룹의 미래 전략을 설명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채터누가 공장이 완공되면 유럽 완성차 업체가 미국에서 가동하는 첫 번째 전기차 공장이 된다. 폴크스바겐 그룹은 이 공장에 8억달러(약 9000억원)를 투자한다. 현재 독일 남부 츠비카우에 전기차 전용공장을 짓고 있으며, 2020년엔 중국 상하이 안팅(安亭)과 광둥성 포산(佛山)에 전기차 공장을 완공한다. 2022년엔 독일 하노버와 엠덴에 추가 전기차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폴크스바겐 그룹은 2015년 디젤엔진 배출가스 조작사건인 ‘디젤 게이트’로 회사 창립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불과 3년 만에 ‘전기차 시장의 거인’으로 돌아왔다. 2016년 일본 도요타를 꺾고 글로벌 완성차 판매 1위에 복귀한 뒤, 3년 연속 이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기도 하다.

2017년 9월 당시 마티아스 뮐러 폴크스바겐 그룹 회장은 이른바 ‘로드맵 E’를 발표하며 전기차 회사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전통적인 내연기관을 기반으로 한 자동차로 세계 1, 2위를 다퉜던 ‘완성차 공룡’이 하루아침에 테슬라 같은 회사가 되겠다고 나섰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로드맵에 따르면 폴크스바겐 그룹은 2025년까지 전체 완성차 판매량의 25%를 순수 전기차로 채울 예정이며, 연간 300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해 글로벌 전기차 분야 1위에 오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e모빌리티(전기차를 기반으로 한 이동성 사업)에 2030년까지 200억유로(약 25조6000억원)를 투자하는 것을 비롯해 미래차 기술에 340억 유로(약 45조21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지난해 3분기(7~9월) 현재 판매량을 기준으로 한 세계 전기차 순위는 미국의 테슬라, 중국 베이징기차(BAIC), 일본 닛산 등의 순이다. 하지만 폴크스바겐 그룹의 투자가 완료되면 폴크스바겐 그룹은 단숨에 전기차 분야 세계 1위로 뛰어오른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알릭스파트너스에 따르면 2022년까지 폴크스바겐 그룹이 출시를 확정한 전기차 신모델은 55종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 전체(101종)의 절반이 넘는다.

폴크스바겐 그룹이 지난해 국제 상용차 전시회(IAA)에서 공개한 자율주행 전기버스 I.D. 버즈 카고. 1970년대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폴크스바겐 마이크로버스의 미래 버전이다. 레벨4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순수 전기차다. [EPA=연합뉴스]

폴크스바겐 그룹이 지난해 국제 상용차 전시회(IAA)에서 공개한 자율주행 전기버스 I.D. 버즈 카고. 1970년대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폴크스바겐 마이크로버스의 미래 버전이다. 레벨4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순수 전기차다. [EPA=연합뉴스]

폴크스바겐 그룹이 ‘전기차 제국’을 건설에 나선 건 세계 자동차 시장이 이른바 ‘모빌리티(이동성)’ 중심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어서다. 전기차·자율주행차로 대표되는 미래차 시장은 자동차를 구매해 소유하는 대신, 공유(카셰어링)하거나 필요할 때 호출(카헤일링)하는 새로운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전통적 완성차 업체의 아성을 구글·우버·바이두 등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들이 뛰어넘고 있는 것도 자동차 업계로선 위기감이 크다.

수퍼카(부가티·람보르기니·포르쉐)부터 고급차(벤틀리·아우디), 대중차(폴크스바겐·스코다), 상용차(만·스카니아), 모터바이크(두가티)에 이르기까지 ‘바퀴 달린 모든 것’을 생산하는 폴크스바겐 그룹으로선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과감한 도전에 나선 셈이다.

지난해 폴크스바겐 그룹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MEB(Modular Electric Toolkit)’을 선보이면서 ‘일렉트릭 포 올(Electric For All)’ 프로젝트도 공개했다. 2022년까지 누구나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전기차를 출시하겠다는 계획으로 그룹 산하 4개 자동차 브랜드에서 MEB를 기반으로 총 27종, 150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방침이다.

폴크스바겐 그룹의 전기 자율주행 승합차 세드릭이 운행하는 모습. 폴크스바겐 그룹은 세드릭 등 전기 자율주행차를 통해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EPA=연합뉴스]

폴크스바겐 그룹의 전기 자율주행 승합차 세드릭이 운행하는 모습. 폴크스바겐 그룹은 세드릭 등 전기 자율주행차를 통해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EPA=연합뉴스]

글로벌 완성차 1위인 폴크스바겐 그룹의 변신으로 관련 업계도 분주해졌다. 당장 폴크스바겐 그룹에 전기차 핵심부품인 배터리셀을 공급하는 한국의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미국·유럽 공장)과 중국의 CATL은 막대한 공급처를 확보하게 됐다. 현재 중국 BYD, 일본 파나소닉 등이 선두를 다투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도 격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폴크스바겐 그룹은 전기차 시장을 넘어 에너지·모빌리티 전반을 장악하겠다는 야심도 감추지 않고 있다. 에너지 공급 및 충전 솔루션 업체인 일리 그룹을 만들어 주택·공공시설·도로 등을 아우르는 전기차 인프라 확충에 나선다. 자회사인 ‘모이아’를 통해 전기차를 기반으로 한 차량 공유 사업도 진행 중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문가는 전통적인 완성차 업계의 거인 폴크스바겐이 전기차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미래차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본다. 완성차 제조의 노하우와 막대한 자본을 무기로  완성차 진영의 선두주자가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ICT 기업이 강점을 갖는 자율주행·모빌리티 플랫폼 경쟁에서도 승리자가 될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제조업체 가운데 연구·개발(R&D) 투자비용 1위(158억달러·2017년 기준)인 폴크스바겐 그룹이 전기차로의 변신을 선언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단순히 프리미엄 시장을 잡겠다는 게 아니라 대중차와 모빌리티를 포함한 미래차 시장 전반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전통적인 내연기관 자동차보단 전기차의 진입장벽이 낮아 후발업체에도 얼마든지 승산은 있다”며 “고급·고성능 전기차 시장에선 폴크스바겐 그룹이 경쟁력을 갖고 있겠지만, 모빌리티를 포함한 전기차 전반과 자율주행 플랫폼 경쟁에선 우버나 구글 같은 ICT 업체와의 경쟁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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