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밀착마크]박수현 "안희정과 울었지만 정치는 지우라 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에게 2018년은 빛과 어둠을 모두 경험한 시간이었다. 대통령 지지율이 70%대를 달리던 그해 3월 그는 ‘문재인의 대변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충남지사에 도전했다. 청와대를 떠날 때 문 대통령은 “어떤 포즈로 사진을 찍을까요”라며 격려했다. 게다가 이미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안희정 충남지사는 그의 친구이자 동지였다.

청와대 대변인 시절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의 모습. 충남지사 선거에 도전할 때 홍보용으로 사용한 사진이다. [중앙포토]

청와대 대변인 시절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의 모습. 충남지사 선거에 도전할 때 홍보용으로 사용한 사진이다. [중앙포토]

그러나 기호지세는 한순간에 꺾였다. 안희정 지사의 미투 폭로가 터진 것이다. (2018년 3월 5일). 설상가상으로 본인 스캔들도 터졌다. 사실상 이혼남으로 살던 그의 불륜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10년 넘게 선거 때마다 터진 네거티브였지만, ‘안희정 파문’과 뒤섞이면서 결국 충남지사의 꿈을 접었다. (※당시 그는 ‘경제적 무능으로 전 부인과 11년간 별거 상태였고 2017년 합의 이혼했다’고 밝혔다.)

불륜남이 된 충남지사 후보

2018년 3월 3일,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이 6·13지방선거 충남도지사 출마를 선언하고 충남 천안 단국대 체육관에서 '박수현의 따뜻한 동행' 출판기념회와 북 콘서트를 열었다.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와 환하게 웃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2018년 3월 3일,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이 6·13지방선거 충남도지사 출마를 선언하고 충남 천안 단국대 체육관에서 '박수현의 따뜻한 동행' 출판기념회와 북 콘서트를 열었다.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와 환하게 웃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잊혀진 이름이 다시 등장한 건 그로부터 4개월쯤 뒤, 20대 후반기 국회가 시작되면서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비서실장으로 여의도에 컴백했다. 정치인으로서 재기를 꿈꾸는 그를 밀착마크했다. 오랜만의 언론 노출을 다소 망설이기도 했지만 “숨을 이유가 없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정치인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는 변함없다고 했다. 청와대와 민주당 등의 대변인을 6차례나 맡은 ‘달변’은 여전했다.

지난 14일 오전 8시 10분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그를 만났다. 충남 공주시에서 오전 5시에 집을 나서 교회와 성당에서 예배와 미사를 본 뒤 6시 40분 고속버스를 탄다고 했다. 향후 정치를 계속할 공주시(지역구로는 공주-부여-청양)에 살고 있고, 서울 일과가 늦어지면 일주일에 하루 이틀 비즈니스호텔에 묵는다.

고속버스 출ㆍ퇴근이 힘들지 않나.
“19대 국회의원 시절 습관이 됐다. 서울에 숙소를 구할 경제적 여력이 없어서 고속버스 출퇴근을 하게 된 것인데, 소문이 나다 보니 민원인들을 만나는 공간이 됐다. (※2017년 공직자 재산신고에서 박 실장은 마이너스 6465만원을 신고했다) 공주시에서 출근하는 아침에 터미널에서 민원인을 만나고 함께 버스를 타고 서울에 왔다. 매일 시민 50명 정도를 만나고 성실하다는 소문까지 나니까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니다.”

‘대통령의 입’에서 ‘국회의장의 귀’로

청와대 대변인과 국회의장 비서실장 중 뭐가 더 힘든가.
“청와대보다 국회가 1.5배는 더 바쁜 것 같다. 청와대와 달리 국회는 열려 있다. 여러 국민의 소리가 민원의 형태로 온다. 하루 평균 20건 안팎의 접견이 잡힌다. 청와대에서는 입이었다면 여기는 귀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을 비롯한 한국당 여성 의원들이 지난달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의 불륜 의혹을 주장했던 더불어민주당원 오영환씨가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과 관련해 박 실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을 비롯한 한국당 여성 의원들이 지난달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의 불륜 의혹을 주장했던 더불어민주당원 오영환씨가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과 관련해 박 실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성실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지난해의 여파는 끝나지 않았다. 김영미 전 공주시 의원과 불륜 관계이며 특혜 공천을 줬다는 의혹에 대한 형사 사건의 결론이 최근 나왔다. 허위사실공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오모씨를 고소했는데 불기소 결정이 내려졌다. 이에 대해 박 실장은 “처벌보다는 내연 관계의 실체가 없다는 한 조각의 진실이라도 밝히기 위해서 고소를 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충남지사 예비후보 당시 국회 정론관에서 자신에게 제기된 불륜 의혹이 날조된 것이라고 해명하는 박수현 실장. [중앙포토]

지난해 충남지사 예비후보 당시 국회 정론관에서 자신에게 제기된 불륜 의혹이 날조된 것이라고 해명하는 박수현 실장. [중앙포토]

검찰에서 거짓말탐지기 조사도 받았다던데.
“그렇다. ‘김영미씨와 불륜 관계입니까’라는 질문을 100번 가까이 들은 것 같다. 수치스러웠지만 진실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정치적ㆍ사회적으로 악의적인 주장은 계속 나올 것이다. 김영미씨도 거짓말탐기지 조사를 받았고 나와 같이 진실 반응이 나왔다. 나는 정치인이니까 감내한다고 하더라도 그 오랜 시간 고통받은 한 여성은 어떻게 해야 하나. 나로 인해 받은 고통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그녀에게 차라리 나와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갈 의향이 있는지 물어볼 생각을 하게 됐다.”

“스캔들 그녀에게 프러포즈 하렵니다”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과 김영미 전 공주시 의원. [인터넷 캡처]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과 김영미 전 공주시 의원. [인터넷 캡처]

스캔들이 났던 여성에게 프러포즈하는 건가.
“그녀는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이혼녀다. 재력도 없다. 저 역시 선천성 뇌성마비 아이를 낳아서 키우다가 잃었다.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껴왔고, 정치적으로 악용돼 고통과 수모를 겪은 것에 대해 인격이나 인권 차원에서 책임 있게 정리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고통과 수모의 시간이 인연의 징검다리가 되길 바란다.”
그랬다가 과거의 관계가 다시 의심받을 수도 있는데.
“악의적으로 보는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현재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벗어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다. 계속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한 이상 정치인의 안주인 자리를 비워두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은 '측은지심'을 정치의 출발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은 '측은지심'을 정치의 출발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

뜻밖의 고백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도 주변의 가까운 정치 선배들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했다. 박 실장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차마 돌아서지 못하는 마음』이라는 책을 썼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정치의 출발이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붙인 제목이다. 이웃의 고통과 어려움이 내 것 같아서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마음이 정치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김 의원에 대해서도 차마 돌아서지 못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희정에게 정치 지우라고 했다”

안희정 전 지사와는 연락을 하나.
“만나서 함께 울면서 오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때때로 전화 통화도 한다. 연초에도 통화는 했다. 지금도 ‘너무 부끄럽다. 친구인 너마저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작년 가을에 만났을 때 보니 농사를 잘 지어놨더라. 아마 부끄러운 마음, 괴로운 마음을 둘 데 없어서 농사에 열중하고 살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에 대한 얘기도 했나.
“정치인으로서의 계획은 상상할 수 없는 상황 아닌가. 한 인간으로서 부끄러움을 어떻게 감내하고 살아야 할 것인지가 더 큰 고민일 것 같다. 함께 울면서도 냉정하게 얘기했다. 정치에 대한 생각을 마음속에서 지우라고. 전도유망했던 정치인이었던 내 친구에게 정치에 대한 생각을 버리라고 할 때 내 마음은 얼마나 아팠겠냐. 그런 자세를 가져야 그나마 국민들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난해 8월 자신의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서울서부지법에 출석하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뉴시스]

지난해 8월 자신의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서울서부지법에 출석하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뉴시스]

용서받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동의한다. 우리 사회가 나가야 하는 큰 방향을 정리한 의미가 있다고도 생각한다. 안희정도 개인 한 명이 주저앉는 것을 떠나서 한 시대의 잘못된 것들이 정리되는 계기가 된 측면에서의 의미를 생각할 것이다.”

최근엔 박 실장이 청와대 대변인 시절에 과거 정부 청와대의 캐비넷 문건을 공개한 것과 관련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고소된 사건이 김태우 검찰 수사관의 청와대 문건 폭로와 관련해 다시 논란이 됐다. 김 수사관의 사례에 비춰 수사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다. 이에 대해 박 실장은 “언제든 당당히 조사받겠다”고 했다. 이어 “그런 문건이 발견됐는데 정치적 파장을 우려해서 숨기는 것이 더 문제 아닌가. 당시 청와대에서도 그런 문건이 자꾸 나와서 곤혹스러워 한 분위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무적 판단을 해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즉시 공개하는 것만이 바른길이고 투명한 길이란 생각을 대부분 했다. 편법이나 꼼수를 쓰는 게 촛불광장으로 탄생한 정부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촛불의 제도화’ 문희상 체제에서 해내야

문희상 국회의장과 회의 중인 박수현 비서실장. [중앙포토]

문희상 국회의장과 회의 중인 박수현 비서실장. [중앙포토]

문희상 국회의장의 후반기 국회의 목표는 뭔가.
“문 의장은 협치ㆍ실력ㆍ미래 국회에 방점을 찍고 있다. 국회법을 바꿔서 소위원회를 활성화하고 법으로 정례화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지금 국회는 법안 처리 1단계인 법안심사 소위조차 일정을 잡기 어렵다. 비생산적 국회가 되는 이유다. 생산성을 높이고 실력 있는 국회라는 소리를 들어야 국민 신뢰가 1%라도 올라간다는 게 문 의장의 독려 사항이다.”

박 실장은 문희상 국회의장 체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후반기 국회는 시민의 촛불로 이뤄진 정부가 광장의 목소리를 제도화해야 할 절체절명의 3년차에 들어서는 것이다. 광장의 목소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면 국민적 노력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
shy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