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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우릴 사랑으로 키웠어, 책임감으로 키웠어?"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장연진의 싱글맘 인생 레시피(11)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에밀 아자르(본명 로맹 가리)의 장편 소설 ‘자기 앞의 생’에서 주인공 모모가 묻는 말이다. 모모는 제 부모가 누군지 나이도 몇 살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고아인데, 전직 창녀 출신인 로자 아줌마가 돌봐 준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그저 자기를 사랑해서 보살펴주는 줄 알았지만 로자 아줌마가 대가로 매월 말에 우편환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하밀 할아버지에게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느냐 묻게 된다. [사진 pixabay]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그저 자기를 사랑해서 보살펴주는 줄 알았지만 로자 아줌마가 대가로 매월 말에 우편환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하밀 할아버지에게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느냐 묻게 된다. [사진 pixabay]

그런데 일고여덟 살쯤 자기를 그저 사랑해서 보살펴주는 줄 알았던 로자 아줌마가 그 대가로 매월 말에 ‘우편환’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생애 최초의 커다란 슬픔’을 안고 평소 믿고 따르는 말동무 하밀 할아버지를 찾아가 묻게 된다. 사람이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느냐고.

“엄마, 엄만 우릴 사랑으로 키웠어, 책임감으로 키웠어?”
며칠 전 그 대목을 읽는데 내 머릿속에서 모모는 첫째로, 하밀 할아버지가 앉아 있는 카페는 우리 집 식탁으로 포개졌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첫째가 막 성년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밖에 안 된 철부지인 제 여동생은 그렇다 해도, 그동안 자기 엄마가 혼자 저희 둘을 어떻게 키웠는지 옆에서 지켜봐서 잘 알 텐데도, 큰애가 아주 자신만만하게 묻는 게 아닌가! 엄마가 무슨 말을 할지 다 안다는 듯 아주 확신에 찬 눈빛으로.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느냐는 모모의 물음에 하밀 할아버지는 말없이 박하 차만 마실 뿐이다. 젊은 시절 양탄자 행상을 하며 세상을 두루 떠돌았던 그는, 어릴 때는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더 나은 일도 있다는 듯 딴청을 피운다.

모모가 왜 대답을 안 해 주느냐고 두 번이나 거듭 재촉하자 60여 년 전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내고 평생을 잊지 않고 산 그는, 그제야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그렇단다.” 어린 모모는 믿었던 하밀 할아버지마저 저의 기대를 저버리자 그만 펑펑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내 머릿속의 하밀 할아버지와 모모의 모습이 우리 집 모습으로 포개졌다. 첫째는 내게 우리를 사랑으로 키웠는지, 책임감으로 키웠는지 물었다. [사진 pixabay]

내 머릿속의 하밀 할아버지와 모모의 모습이 우리 집 모습으로 포개졌다. 첫째는 내게 우리를 사랑으로 키웠는지, 책임감으로 키웠는지 물었다. [사진 pixabay]

“너희들을 오직 사랑만으로 키울 수는 없었어.”
내 대답을 듣고 첫째도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충분히 예상했던 터라 담담히 그 이유를 덧붙였다. 30대 후반에 아빠랑 이혼하고 마땅한 직업도 없이 6살, 15살밖에 안 된 너희 남매를 도맡게 됐을 때 엄만 그야말로 백척간두에 선 심정이었다고. 혹여 내가 발을 헛디뎌 아무것도 모르는 너희들과 그 간당간당한 장대 아래로 굴러떨어질세라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두려움과 책임감에 피가 말랐다고.

비록 그 절박한 날들을 너희들에게 대한 사랑으로 지금껏 극복해 왔지만, 그 시간은 사랑과 책임감이 샴쌍둥이처럼 머리를 맞대고 얼키설키 뒤엉켜 있어 어느 한쪽만 뚝 떼어내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순금의 시간이 아니라고.

그러자 첫째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는 엄마가 세상 그 어떤 엄마들보다 동생과 저를 사랑으로 키우는 줄 알았다고. 내가 저희 남매 앞에서 별로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온 정성을 다해 키워주어서 단 한 번도 저희를 책임감으로 돌본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제 아빠의 빈자리를 다 채워 줄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덜 느끼도록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그런 내 모습이 첫째의 눈엔 그렇게 비친 모양이었다. 부모의 마음을 십 분의 일만 알아줘도 효자라는데 자식이 백분 헤아려주니 그저 먹먹할 따름이었다.

나는 그날 모모의 ‘우편환’처럼 첫째가 얼른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책임감’이 사실은 내리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큰애에게 애써 설명하지 않았다. 오로지 엄마의 사랑만 먹고 자랐다는 큰애의 ‘로망’을 더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부모’가 아닌 ‘모’만의 내리사랑의 서늘한 책임감을 큰애가 제대로 이해하기엔 아직은 이른 나이가 아닐까 싶었다.

로자 아줌마는 암사자들은 새끼를 위해서라면 절대 물러서지 않고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며 암사자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한다. [사진 pixabay]

로자 아줌마는 암사자들은 새끼를 위해서라면 절대 물러서지 않고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며 암사자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한다. [사진 pixabay]

자기 앞의 생에서 창녀들이 맡기거나 버린 아이들을 몰래 보살펴 주는 로자 아줌마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암사자를 칭찬하곤 한다. 암사자들은 새끼를 위해서라면 절대 물러서지 않고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며 말이다.

내가 이 위험이 들끓는 세상에서 십 대 전후의 두 아이를 데리고 건너온 그 백척간두의 시간은 바로 천적이 우글거리는 정글에서 홀로 새끼를 기르는 암사자들의 시간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아직 결혼은커녕 사회생활 경험조차 없는 새내기 대학생이 그 정글의 시간을 어떻게 온전히 이해하겠는가.

“엄마, 엄만 우릴 사랑으로 키웠어, 책임감으로 키웠어?”
자기 앞의 생을 덮는데 만약 첫째가 다시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하고 자문해 보았다. 첫째는 지난해 신접살림을 꾸몄고 둘째는 대학교 4학년 과정만 남아서 한결 홀가분해서일까. 10여 년 전보단 한층 정제된 대답이 내 안에서 길어 올려졌다.

“죽음도 무릅쓰며 홀로 새끼를 돌보는 암사자처럼 그렇게 책임을 다하는 사랑으로 너희들을 키웠어. 그리고 그 사랑은 엄마가 자발적으로 쏟은 것이어서 너희에게 대한 희생과 헌신이 아닌, 스스로 떳떳하고 당당해지는 긍지와 자부심을 내게 선물해주었어.”

장연진 프리랜서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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