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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총리를 응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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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도쿄총국장

서승욱 도쿄총국장

“일본은 과거 앞에 겸허하고, 한국은 미래 앞에 겸허해야 한다.” 이낙연 총리가 12일 수유리 애국선열 묘역의 손병희 선생 묘소에서 한 발언이다. 일본을 향한 앞쪽 대목은 사실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에게서 존경과 신뢰를 받으려면 과거에 겸허해야 한다”는 말은 그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일본 정부가 조금 더 겸허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10일 신년 회견 발언과도 겹친다.

눈길이 가는 건 “과거에만 머물러선 안된다”며 미래에 대한 겸허함을 한국에 요구한 대목이다.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니다. 신문사 도쿄특파원 출신의 지일파 총리, 매일 촌철살인을 궁리했던 대변인 출신인 그가 머리를 싸맨 흔적이 있다.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이 대목일 수도 있다.

이 발언은 일본에서도 화제다. 듣는 사람에 따라 물론 해석은 제각각이다. 한국 얘기만 나오면 험담을 쏟아내는 한 TV 해설자는 “문 대통령 발언을 모방한 대일 강경 발언”이라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평가는 다르다. 사석에서 만난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역시 이 총리 답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은 전전(戰前,태평양 전쟁 이전)에 했던 일들에 겸허해야 하고, 한국은 일본이 전후(戰後)에 걸어온 길을 겸허하게 인정했으면 좋겠다”며 이 총리의 말에 동의를 표시했다.

듣는 이의 수준과 입장에 따라 혹평과 칭찬이 교차한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신년 회견과도 대조적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의 발언엔 최근 만난 일본인들 모두가 한결같이 부정적이었다. 역사에 대한 겸허함을 요구했던 발언보다 “사실은 (질문을 했던 NHK기자가 아니라)그 뒤의 분을 지목한 것”이란 문 대통령 발언에 일본인들은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전후 최악’이라는 양국 관계속에서 일본과는 대화 조차 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다. 대통령의 의도는 물론 아니었겠지만,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할 보통의 일본인들 상당수가 불편함을 느꼈을 수 있다.

대법원 징용 판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총리실이 중심이 돼 정리하고 있다. 일본내 지한파들중엔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양국관계 반전의 계기를 이 총리가 만들어 달라”고 응원하는 이들이 꽤 있다. 상황은 녹록치 않다. 일본에 강경할수록 인기가 올라가는 풍토, “왜 일본을 배려해야 하느냐”는 여론속에 잠재 차기 후보 이 총리의 고민도 클 수 밖에 없다. ‘일본은 과거에, 한국은 미래에 겸허하자’는 표현처럼 절묘한 한 수를 이 총리는 또 내놓을 수 있을까.

서승욱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