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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하다]3조 중 8200만원…첫 달 실적 저조하자 지침 20차례 바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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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첫 달부터 비상이었다. 집행액 8200만원, 예산(2조9708억원) 대비 집행률 0.003%. 지난해 1월 일자리 안정자금 집행 결과다.
같은 달 26일과 29일 이성기 당시 고용노동부 차관 주재로 긴급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 전 차관은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집행률만큼은 아니지만 신청률도 낮았다(목표치 236만 명 중 2만9000명).

민낯 드러낸 주먹구구 예산 집행 #당시 고용부 차관 “특단 대책 마련” #지원 간소화, 팩스로 신청받고 #목표 밑돌자 소급 지원까지 허용 #근로공단 노조 “고용부 실적 압박”

지난해 초 정부 부처 수장들과 청와대 참모진들이 일자리 안정자금 정책 홍보에 총동원됐다. 윗쪽 왼편 사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홍장표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오른쪽)과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

지난해 초 정부 부처 수장들과 청와대 참모진들이 일자리 안정자금 정책 홍보에 총동원됐다. 윗쪽 왼편 사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홍장표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오른쪽)과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

당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 등 당시 부처 수장들과 청와대 참모진이 총동원돼 ‘정책 홍보’에 나섰던 터였다.

일자리 안정자금 실무 기관인 근로복지공단에 비상이 걸렸다. 1월 30일 사석중 일자리지원단장 주재로 대책 회의가 열렸다. 이때 올라온 안건이 ‘두루누리 사업장 양식 간소화’다. 사회보험료 지원 사업인 두루누리와 일자리 안정자금 지급 요건이 같다는 점에 착안한 아이디어. 다소 복잡한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서와 달리 1분이면 작성할 수 있는 ‘두루누리 (일자리 안정자금) 지급희망서’가 팩스 등을 통해 이날 두루누리 지원 사업장에 발송됐다.

이성기 전 고용노동부 차관은 지난해 1월 일자리 안정자금 집행률이 저조하자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성기 전 고용노동부 차관은 지난해 1월 일자리 안정자금 집행률이 저조하자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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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일자리 지원 심사원(이하 심사원)들에게 또 다른 지침이 내려왔다. “팩스를 보냈으니 신청하라고 알리라”는 것이었다. 심사원들의 외부 전화 발송량도 매일 집계해 고용노동부에 보고해야 한다며 한 지시였다. 한 심사원은 “실적 압박이 시작된 게 이날부터였다”고 기억했다. 심사원은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심사·지급 업무를 담당한 계약직 근로자다.

신청률은 올라갔다. 2월 신청률이 지원 목표 대비 38.4%에서 4월 78%로 늘었다. 문제는 집행률이었다. 같은 기간 0.3%에서 3.7%로 올랐다. 신청을 했으나 정작 기준에 맞는 사업장은 적었다는 의미다. 고용부 내부 자료를 보면, 1~6월 신청 대비 부지급률은 30.5%다. 10명이 신청해도 3명은 못 받았다는 얘기다.

고용노동부는 대책 마련에 골몰했다. ‘지원 대상을 확대해 더 많은 영세 사업장에 혜택을 준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2월부터 8월 초까지 일자리 안정자금 세부 시행 지침이 15차례 개정됐다. 이미 업무에 익숙했던 심사원들은 8월 중순 400여 쪽에 달하는 직무교육 자료 책자를 다시 받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10월 말 근로복지공단 내에서 정부의 목표치(85%)를 맞출 수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내부 보고자료에 따르면  최종 예상 집행률은 75.3%(2조2054억원)에 불과했다. 보고서엔 그러나 집행액을 2조3400억원으로 끌어올리는 방책도 적혀있었다. 지원 대상에 22만 명을 추가하는 것이었다.

이후 나온 대책이 ^신청하지 않은 근로자에 대한 추가 지원(목표액 2300억원)과 ^고용 유지 의무 한시적 유예 ^두루누리 간편 서식(지급희망서)에 대한 소급 지원 허용 등이다. 이후 근로복지공단의 전망치도 상향됐다. 12월 11일 작성된 보고서에는 연말 집행 전망치가 81% 내외(2조4159억원 내외)로 바뀌었다.

일자리 안정자금이 한시적 예산이라는 점도 연말 집행률을 올리는데 작용했다. 안정자금은 10월분은 11월에, 11월분은 12월에 지급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올 1월에 지급돼야 할 안정자금은 지난해 12월에 지급됐다. 쉽게 말하면 두 달 치 월급이 한꺼번에 들어온 셈이다.

울산에 있는 근로복지공단 본사

울산에 있는 근로복지공단 본사

최근 만난 한 심사원은 “왜 좋은 예산을 실적 압박을 해가며 써야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사원들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근로복지공단 노동조합이 지난달 19일 내놓은 성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고용노동부를 향한 얘기다.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사업은 또한 어떠한가? 원래대로라면 고용노동부가 직접 담당했어야 함에도 기어코 근로복지공단에 억지 전가해 놓고는 우리 조합원들에게 그동안 지속적인 실적 압박과 초과 노동을 강요해오지 않았던가.”

지난해 일자리 안정자금 집행률 84.5%(2조5136억원)는 이렇게 만든 숫자다.

◆[탐사J] '일자리 안정자금' 관련기사 보기

탐사보도팀=김태윤·최현주·문현경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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