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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뚱맞은’ 회전교차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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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요즘 서울의 이면도로나 지방 도시에서 종종 ‘회전교차로(Roundabout)’를 만나게 된다. 중앙에 둥그런 교통섬을 두고 그 주위를 자동차가 돌다가 원하는 방향의 출구로 빠져나가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일반 교차로와 달리 신호등이 없는 게 특징이다. 이 회전교차로의 개념은 1920년대 영국에서 처음 생겼고, 이후 60년대 본격 도입됐다는 게 정설로 여겨진다. 국내에서는 1967년 서울의 ‘삼각지 로터리’ 자리에 들어선 입체교차로가 최초의 회전식 교차로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국내에 회전교차로가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건 10년이 채 안 됐다. 현재 전국적으로 800곳이 조금 안 된다. 경기도와 제주도에 상대적으로 많다. 아직도 낯설어서인지 회전교차로 통행방법을 잘 모르는 운전자가 적지 않다. 국내에서 회전교차로 통행원칙은 의외로 간단하다. 먼저 회전 중인 차량에 우선권이 있다. 진입 전에 우선 멈춰 서고, 회전 중인 차량이 보이면 그 차량이 지나간 뒤 교차로에 들어서면 된다. 그리고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다가 목적지 방향의 출구로 나가면 된다. 물론 이때는 깜빡이(방향지시등)를 켜야 한다.

교통 신호등에 익숙한 운전자에게는 얼핏 불편하고 사고 위험도 높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회전교차로는 의외로 안전하다. 2014년에 설치 완료한 회전교차로 54개소의 효과를 분석해보니 설치 전인 2013년에 비해 설치 후인 2015년에 교통사고가 58%나 줄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사상자 수도 설치 전·후를 비교했을 때 67%나 감소했다고 한다.

이처럼 회전교차로의 사고 예방 효과가 큰 이유는 무엇보다 독특한 통행방식 덕분이다. 회전교차로에 진입하려 하거나 들어선 운전자는 좋든 싫든 다른 차량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펴야만 한다. 회전 중인 차량이 있는지, 다른 차량이 진입하려고 하는지 등을 확인하고 내 차를 움직여야 한다. 내 진행 방향의 신호등만 보면 되는 일반 교차로와는 다르다. 이렇게 다른 차량을 예의 주시하면서 상대적으로 서행하다 보니 사고가 꽤 줄어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회전교차로도 적재적소에 설치해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 통행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지역처럼 위치를 잘못 선택하면 차량이 서로 뒤엉켜 불편만 가중되기 쉽다.

적절한 위치와 정확한 통행방식 준수가 성공적인 회전교차로의 필수 요건이다. 아니면 ‘생뚱맞은’ 회전교차로 신세를 면키 어렵다. 다른 정책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시기와 대상이 맞지 않으면 부작용만 더 커진다는 걸 늘 염두에 둬야 한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