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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현기의 시시각각

문재인의 ‘백악관식 회견’ 감상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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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대통령 기자회견 전 청와대는 ‘백악관식 회견’이 될 것이라 했다. 그래서 더 유심히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실망에 그쳤다.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지”란 특정 질문이 논란이 됐지만,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니다. 회견 방식, 청와대 출입 기자의 직업정신(자질을 포함한다)이다. 백악관식 회견이라 했지만, 백악관과 달랐던 점을 지적해 본다.

근성과 비판의식으로 추가질문 이어갔어야 #회견 빈도·질문자 지명·‘앉아 진행’도 문제

먼저 질문. 기자회견의 주인공은 대통령이 아니다. 기자다. 진검승부의 자리다. 그런데 청와대 기자들은 대통령에게 주인공 자리를 넘겼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런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개인 의례는 나중에 따로 하면 된다. 그럴 시간 있으면 바로 답변 중에 혹은 답이 끝나자마자 추가 질문을 해야 했다. 청와대도 이를 허용한다 하지 않았나. 그런데 정작 질문권을 얻은 22명 중 2명만이 추가 질문을 했다. 그마저 ‘진짜’ 추가 질문이 아니었다. 오래전 예고된 회견이었다면 김태우 행정관의 폭로를 ‘개인 일탈’로 대통령이 주장할 것을 예상하고 “그럼, 김태우는 청와대란 조직의 구성원이 아니었단 말입니까?”라 바로 들어갔어야 했다. 추가 질문이란 허락을 받고 하는 게 아니다. 제한된 시간, 동료 배려, ‘찍힘’에 대한 걱정 등 복합적 요인이 있었을 게다. 그럼에도 기자들은 스스로 납득될 때까지 단답형으로 묻고 또 물었어야 한다. 딱 보기에도 기자가 납득을 못 했는데, 보는 국민은 납득하겠는가. 단련과 근성, 비판의식의 부족으로도 느껴졌다.

지난해 9월 26일 직접 현장에서 지켜본 트럼프 대통령과 NBC 기자의 공방을 요약해 소개한다.

“캐버노(대법관 지명자)의 성추행 전력을 폭로한 세 여성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보나. 예스냐 노냐.”(기자), “청문회를 지켜보자.”(트럼프), “그 말은 지명 철회할 수도 있단 말인가.”(기자), “그는 신망이 있다.” (트럼프), “로이 무어, 오라일리 등 성추행 전력이 있는 이들을 기용하고 편드는 이유가 뭔가.”(기자), “오랫동안 그들을 잘 안다.” (트럼프), “단지 그거냐? 당신도 성추행 의혹으로 고발당한 것과 관련 있는 것 아니냐.” (기자), “당신은 지금 10분 동안이나 질문하고 있다.”(트럼프), “질문을 중간에 끊고 방해하니 그렇다. 당신이 제대로 답을 하면 된다.”(기자) 무려 25차례의 문답이 오갔다.

똑같이 하자는 건 아니다. 문화도 시스템도 다르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치열한 공방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도 행간에서 알 걸 알게 되고, 자신 없는 기자는 손도 안 들게 된다. 또 하나. 애교라지만 질문권을 얻으려고 한복 입고, 인형 흔드는 모습은 보기 안타깝다. 기자회견장에선 묻는 이와 답하는 이는 동격이어야 한다.

다음은 방식. 청와대는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지명하는 ‘백악관 방식’이라 했다. 실상은 다르다. 미 대통령은 우선적으로 주요 언론에 질문권을 준다. 최근 백악관 회견을 찾아보니 앞부분 8명 중 6명은 브리핑룸 1~2열 고정석(한 열에 7명)에 앉는 주요 언론사의 백전노장 기자였다. 거의 매달 그렇게 한다.

우리처럼 1년에 한두 번 있는 회견에서 200명 중 아무나 지목하다 보면 질문 내용도 산만하고 지엽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필수 현안 질문’들을 놓치게 된다. 대통령이 가운데 앉아 답변하는 모습도 편치가 않았다. 청와대 기자들은 대통령 입장 시 일어나 청와대 지시대로 박수를 쳤다. 그게 권위주의다. 트럼프도 아베도 회견이건 타운홀 미팅이건 서서 한다. 소통의 상대가 국민이기 때문이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