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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유기 동물 안락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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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권혁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국내에 ‘동물 안락사’가 처음 등장한 건 1966년이었다. 창경원에서 24살 된 암호랑이를 안락사시켰다. 나이 들어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하자 동물원 측이 사살하기로 결정했다. 당시는 사살도 안락사의 하나였다. 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창경원 당국은 오랫동안 정들여 기르던 호랑이를 제 손으로 죽이기 어렵다 하여 경복궁 직원을 초청, 특별히 만든 맹수용 탄환을 쏘게 했는데 호랑이는 앞 심장 부분에 맞은 단 1발의 총탄으로 정든 창경원과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84년에는 아기곰 안락사 논란이 번졌다. 인도네시아산 반달곰을 외항선원이 애완용으로 몰래 들어오려다 세관에 적발됐다. 검역 규정상 약물 주사로 안락사시켜야 했다. 하지만 여론은 반대였다. “귀여운 아기곰을 살려야 한다”가 우세했다. 결국 아기곰은 전염병 검사를 마친 뒤 국내 동물원으로 갔다.

2002년에는 미국에서 일어난 특정 패스트푸드점 불매 운동이 국내 소비자들 입에 올랐다. 닭을 잡을 때 ‘의식을 잃게 한 뒤 도축한다’는 안락사 원칙을 어겼다는 게 불매 운동의 이유였다. 식용 가축에까지 안락사 개념을 적용한다는 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시간이 흘러 2013년 한국도 같은 규정을 도입했다. 가축을 도살할 때 ‘반드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다음 도살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동물보호법 제10조 2항)’고 했다. 유럽연합(EU)은 한발 더 나아가 양식 물고기도 안락사시키는 것을 검토 중이다.

동물 안락사가 다시 화제다. 계기는 ‘몰래 한 안락사’다. ‘안락사 없는 보호소’를 내세웠던 동물보호단체 대표가 구조된 유기 동물 일부를 슬그머니 안락사시켰다가 들통났다. “안락사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안락사는 없다’고 거짓말로 후원받은 게 문제”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사실 동물보호소에서 안락사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수용 능력의 한계 때문이다. 구조돼 보호소로 들어오는 유기·유실 동물이 한 해 10만 마리가 넘는다. 이 가운데 주인을 다시 만나는 건 20%도 안 된다. 30%는 다행히 새 주인을 찾는다. 나머지 절반의 운명은 가혹하다. 30%는 구조 당시 상태가 좋지 않아 곧 죽고, 20%는 안락사 처리된다. 마냥 보호소에 둘 수 없어 안락사시키는 상황이다. 책임감 없는 주인을 만난 업보다. 당분간은 이런 업보를 치를 반려동물이 늘어날 듯하다. 경기가 가라앉을 때마다 유기 동물 증가는 어김없이 반복됐다. 삶이 팍팍해지더라도 반려동물과 쌓은 정은 사그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권혁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