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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성 남성 속옷 매출량으로 중국 경제 측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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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중국 랴오닝성의 한 철선 공장. 제조업체가 밀집한 랴오닝성의 남성 속옷 매출량이 증가하면 중국 경기가 호전된다는 신호로 본다. 지난해 매출은 32% 늘어 전년의 42% 증가에 비해 낮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랴오닝성의 한 철선 공장. 제조업체가 밀집한 랴오닝성의 남성 속옷 매출량이 증가하면 중국 경기가 호전된다는 신호로 본다. 지난해 매출은 32% 늘어 전년의 42% 증가에 비해 낮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중국 글로벌타임스가 “중국 동북부 랴오닝성(遼寧省) 지역 남성 속옷 매출이 매우 증가했다”며 “지방 경제 회복세를 보여주는 신호”라고 보도했다. 중국 관영 매체가 온라인 쇼핑몰(JD.com)의 특정 제품군 매출 자료를 근거로 경기를 진단한 것은 이례적이다.

“평범한 노동자 주머니 사정 반영” #정부 지표 불신에 비공식 등장 #리커창·피클·요구르트·빵 지수도 #모든 지표 중국 경기 둔화세 뚜렷

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랴오닝성의 남성 속옷 매출은 2017년보다 32% 증가했다. 신문은 “평범한 남성 노동자의 주머니 사정이 나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랴오닝성은 중국 동북부 대표적 제조업 밀집 지역이다. 랴오닝성의 지난해 남성 속옷 매출 증가율은 앞서 두 해(2016·2017년, 각 42%)에 비해 다소 낮아졌지만, 지난해 비(非)제조업 지역과 비교하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남성 속옷 매출 증가=경기 호전’이란 아이디어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1987~2006년 재임)이 처음 제시했다. 그는 재임 중 “미국 소비자들은 경기가 호전되면 속옷부터 바꾼다”며 속옷 판매량과 미국 경제의 연관성을 주장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 아이디어에 ‘중국 남성 노동자’라는 개념이 더해져 새로운 지표가 만들어진 셈이다.

중국에서 ‘비공식 지표’가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중국 성장률의 대안성 지표로 꼽히는 ‘리커창 지수’가 대표적이다. 2007년 리커창(李克强) 당시 랴오닝성 당서기(현 총리)는 미국 대사와의 회동에서 “중국 경제 지표가 너무 인위적이고 신뢰하기 어려워 경제 성장 속도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며 “전력소비량, 은행대출 잔액, 철도화물 운송량 등이 그나마 믿을 만한 지표”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리 총리가 제시한 세 지표에 40%(전력소비량)·35%(은행대출잔액)·25%(철도화물 운송량)의 가중치를 부여한 ‘리커창지수’를 산출해 매달 발표하고 있다.

다른 ‘비공식 지수’ 역시 중국 경제를 측정하는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에선 도시화 지수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서 ‘피클 지수’를 대신 활용한다”고 전했다. 도심 노동자들이 짜차이(榨菜) 같이 소금에 절이거나 발효한 채소를 즐겨 먹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랴오닝사회과학원의 량치둥 부원장은 “중국의 민간 소비 지수로 ‘요구르트 지수(요구르트 판매량)’ ‘빵 지수(빵 판매량)’가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비공식 지표가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정부 공식 지표에 대한 높은 불신과 무관치 않다. 조사업체 개브컬 드래고노믹스의 아서 크로버 매니징 디렉터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경기 둔화를 우려하는 중국 정부를 의식한 나머지 관영 매체가 (불필요한) 지표를 만들었다”며 “돼지 얼굴에 립스틱을 발라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랴오닝성의 남성 속옷 매출 증가율이 다른 지표와 더불어 둔화하는 추세라는 점이다. 속옷 매출 증가율은 2016년 42%에서 지난해 32%로 감소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하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6.7%(2016년)에서 6.5%(2018년 3분기)로 내렸다. 리커창지수는 10.94(2016년 11월)에서 8.42(2018년 11월)로 내렸다. 결국 공식 지표든 비공식 지표든 중국 경제 둔화 추세는 뚜렷해지고 있다.

NYT는 “중국이 비공식 수치를 꺼내 드는 배경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 따른 피해를 감추는데 더해, 제조업 지역을 중심으로 경기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있다”고 전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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