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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영웅화는 일본이 주도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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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중견 한국사학자인 정두희(59.사진) 서강대 교수가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 한국사학계의 주류 이념인 민족주의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50대 후반에 민족주의에서 탈(脫)민족주의로의 사관(史觀) 변화를 대내외에 선언하듯 판을 벌였다. 임진왜란(1592~1598)을 소재로 19~22일 경남 통영시 마리나리조트에서 여는 국제학술대회에서다. 주제는 '임진왜란:조일(朝日)전쟁에서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

정 교수는 서강대 국제한국학센터 소장을 맡으며 지난 3년간 대회를 준비해왔다. 뜬금없이 400년도 더 지난 임진왜란을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정 교수의 전공이 그 시대다. 그리고 동북아 삼국이 과거사나 영토문제를 놓고 되풀이하는 역사전쟁의 실마리를 푸는 데 임진왜란이 좋은 소재가 된다고 생각했다. 목훈재단 손동창(퍼시스 회장)이사장이 1억4000여만원을 쾌척했다.

◆ 최초의 대규모 동북아 국제전=정 교수가 엄선한 국내외 학자 40여 명이 발표와 토론에 참여한다. 참가자들은 대체로 임진왜란이 한중일 삼국간 벌어진 최초의 대규모 동북아 국제전이란 관점을 공유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개별 국가 차원에서 진행돼온 연구를 비판한다. 특히 집권 세력들이 전쟁을 정치적으로 활용해온 과정을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일본과 관련해선,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자들이 임진왜란을 '대륙침략의 성전(聖戰)'으로 미화한 점이 주로 비판받았다. 이에 더해 정 교수는 "일본의 임진왜란 왜곡을 제대로 비판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 서술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이순신.곽재우 장군 다시보기=20일 박환무 낙성대연구소 연구원과 하영휘 태동고전연구소 교수는 각각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곽재우 장군과 관련 통념을 뒤엎는 해석을 내놓을 예정이다.

박 연구원은 '이순신, 제국과 식민지의 사이에서'란 글을 통해 "이순신 장군을 '민족의 수호자''동양의 넬슨'으로 만든 것은 일본"이라며 "청일전쟁을 앞둔 1892년 일본의 현역 육군대위인 시바야마 나오노리가 쓴 '이순신전'이 이순신을 세계사 속의 명장으로 만든 모태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3.1운동 이후 문일평.신채호.이광수 등이 각기 이순신에 관한 글들을 발표했다"며 "이순신을 '구국의 영웅'으로 부각한 것은 중일전쟁 이후의 총동원체제에서 식민지 조선과 제국 일본 사이의 내선일체와 통합을 강조하는 논리로 활용됐다"고 주장했다.

하 교수는 '화왕산성의 기억'이란 글을 통해 "1597년 가토 기요마사의 침략을 곽재우 장군이 경남 창녕 화왕산성에서 막아낸 기록은 실재보다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애초 화왕산성 수비는 접전이 없었던 피란에 불과했다"며 "137년의 세월이 흐른 1734년 출판된 '창의록(倡義錄)'을 통해 화왕산성의 기억은 부풀려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영의정 유성룡 등 화왕산성 방어와 관련없는 인물이 다수 수록된 점 등을 놓고 볼 때 당쟁에서 열세에 몰린 영남 남인들이 노론에 맞설 명분을 쌓기 위해 과장해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화왕산성과 관련된 사람들이 남긴 각종 개인 문집을 하나씩 확인하며 화왕산성의 기억이 조금씩 과장돼온 과정을 추적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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