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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반찬 온라인몰 꿈꾸던 수원 못골시장의 좌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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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4 한국의 눈물 

"우리도 마트처럼 온라인몰 하고 싶었는데, 인허가가 어려워 포기했어요."
최근 경기 수원시 지동 못골종합시장에서 만난 이충환(47) 상인회장은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상인회는 2012년 못골시장이라는 자체 브랜드로 온라인몰을 구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100여 개의 식품 점포가 모여 있어 시장 제품만으로 꾸린 '명절 선물세트' 등을 내세우기로 했다. 전통시장으로선 최초의 시도였다. 의욕도 넘쳤다. 이 회장은 "대형마트는 물론 개인도 온라인 판매에 뛰어드는 것을 보면서 '가만히 앉아 오는 손님만 받아선 망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신선식품 온라인몰 유통하려면 #식품제조업 허가 다시 받아야 #시설 마련에 수억 들어 엄두 못내 #배달 앱 통한 주문·배송만 허용

그러나 실행 단계에서 좌초했다. 온라인 유통을 위해선 식품제조·가공업(식품제조업) 허가를 받아야 했다. 시설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이 회장은 "먹는 음식이라 철저하게 관리하는 건 맞다"며 "하지만 모든 제품의 품목별 함량·성분 분석이나 작업장 동선까지…너무 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장과 배송 냉장차 마련에 수억원이 드는데 시장 상인에겐 언감생심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신선식품 전문 플랫폼이 등장하는 등 이커머스에서 식품의 비중은 날로 커졌다. 이 회장은 "그때 우리가 온라인몰 구축에 성공했으면 전국의 시장이 서로 따라 하려고 했을 텐데 아쉽다"며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1975년에 들어선 못골시장은 전국에서 매년 8000여 명의 상인이 견학을 올 정도로 성공한 시장으로 꼽힌다. 2017년엔 우수전통시장에 선정되기도 했다.

반찬가게·빵집 등은 즉석판매제조·가공업(즉석판매제조업)으로 분류한다. 식품제조업보다는 시설기준 등이 한 단계 아래다. 그러나 온라인 유통을 하려면 식품제조업 허가를 다시 받아야 한다.  2014년 식품위생법 시행령 개정으로 문턱은 조금 낮춰졌다. '영업자나 그 종업원이 최종 소비자에게 직접 배달하는 경우, 우편 또는 택배 등의 방법으로 최종 소비자에 배달하는 경우, 단순히 배송만 전문으로 하는 영업체를 통해 판매하는 형태(시행규칙 제57조)는 즉석판매제조업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마켓컬리·헬로네이처 등 플랫폼 입점은 여전히 막혀 있다.

'주문·배달'은 되지만, '온라인 업체를 통한 유통'은 안 된다는 건 기준이 모호하다. 배달 앱을 통한 주문·배송이 가능하면 플랫폼 업체의 중계도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업계가 반발하는 이유다. 천연발효 빵으로 유명한 서울 이태원 '오월의종'은 이런 애매모호한 규정 탓에 곤욕을 치렀다. 2015년 마켓컬리 입점 후 매출이 쑥쑥 올라가던 중 '즉석판매제조업으로 신고한 업체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빵을 판매했다'며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았다. 정웅(51) 오월의종 대표는 "법원 결정문에 내가 '불량식품을 만든 사람'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식품위생법이라는 것이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며“법정의 검사도 '현실에서 온라인 유통이 보편적으로 이뤄지는데 법이 못 따라온다'는 얘기를 하더라"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제과점·즉석판매제조업체는 위생관리 수준이 식품제조가공업체와 차이가 있어 제한하고 있다"며 "안전과 무관한 규제는 적극적으로 개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허가를 받아도 반찬가게·빵집이 독립적으로 온라인 유통을 하기는 쉽지 않다. 개별 홈페이지에 제품을 올려도 소비자 반응을 얻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생업체나 작은 규모일수록 전문 생존능력은 더 떨어진다. 지난해 5월부터 마켓컬리에 '정미경치킨' 반찬을 유통하는 정미경(58) 대표는 자체 온라인숍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서울 황학동에 반찬가게를 낸 이현오(41) 찬스토어 대표는 "반찬 가게 하나만 갖고 하는 온라인숍은 의미가 없다. 기존 플랫폼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신지은 헬로네이처 식품가공팀장은 "식품제조업 허가를 받기 위해 드는 시간과 비용은 물론 이후 시설 유지·관리에도 비용이 들어간다"며 "앞으로 안전인증기준(HACCP)도 강화돼 기존에 허가를 받은 곳 중 작은 업체는 새로 HACCP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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