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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ICBM 딜, 서울 불바다는 남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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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

미국민 안전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목표라고 한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우리는 물론 일본까지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당연한 말이 동맹을 걱정시키는 건 완전한 비핵화보다 미 본토에 위협인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감축과 폐기를 우선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스커드·노동 미사일의 사정권인 서울과 도쿄에 대한 핵 위협은 상당 기간 협상의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11일 폭스뉴스에 “최종 목표는 미 국민의 안전”이라며 “미 국민의 위험을 계속 줄여가는 방안에 대한 대화에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공개했다. 앞서 3일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 만나 우리를 겨냥한 핵무기 발사 위협을 줄이는 것을 포함해 더 안전한 미국을 만들 것이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미국을 볼모로 삼아온 위협을 제거하는 데 진정한 진전을 이룰 여건을 조성했다”라고도 했다. 현재로선 미국을 볼모로 삼을 수 있는 북한의 핵 능력은 2017년 7월, 11월 세 차례 발사에 성공한 화성-14, 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뿐이다.

북핵 신고와 사찰을 놓고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의 초점이 2차 정상회담 목전에 ICBM으로 옮겨간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다음 날 “더는 북한으로부터 핵 위협은 없다. 미국의 최대 문제이자 가장 위험한 골칫거리가 사라졌다”고 선언했다. 북한의 ICBM 위협이 사라졌다는 의미였지만 실제로 동창리 시험장의 미사일 엔진 시험대 해체에 그쳤다. 이후 북한 위성사진에 미사일 생산공장과 장거리 미사일 기지를 ‘정상’ 가동 중임이 드러나면서 위협 종식 선언은 빛이 바랬다. 폼페이오 협상팀도 한때 비핵화 착수조치로 핵탄두 일부 반출과 핵 보유 리스트의 신고에 매달렸지만, 북한의 거부 의사만 확인했다. 트럼프로선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미 국민과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한 의회에 뭔가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서 ICBM 감축·폐기는 노려볼 만한 가시적인 목표다.

사실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서 북한이 ICBM을 폐기하고, 대신 미국이 일부 대북제재를 완화하기로 합의한다면 트럼프 행정부뿐 아니라 26년 북·미 협상에서 최대 성과로 기록될 수 있다. 하지만 수미 테리 박사 같은 미국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ICBM 딜이 시작이 아니라 핵보유국 북한을 용인하는 종착역이 될지 모른다는 점을 걱정한다. 트럼프가 ICBM 폐기의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를 내줄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최악의 상황이 현실화될 경우 북핵을 미국과 북한 손에 맡겨온 우리 정부가 “서울 불바다” 위협은 어떻게 해결할 건가.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