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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관심 뺏겨 우는 첫아이, 동생을 가족으로 포용하게 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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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미래의 미라이' 한 장면. 4살 소년 쿤이 미래에서 온 여동생 미라이와 시공을 초월한 모험에 나선다. [사진 얼리버드픽쳐스]

애니메이션 '미래의 미라이' 한 장면. 4살 소년 쿤이 미래에서 온 여동생 미라이와 시공을 초월한 모험에 나선다. [사진 얼리버드픽쳐스]

“실제로 아이를 키워보면 어른이 배우는 게 훨씬 많습니다. 막연했던 어릴 적 기억이 선명해지면서 또 한 번 그 시절을 사는 듯한 기분도 들어요. 당시 느꼈던 가치와 의미를 다시금 일깨우게 되죠.”

‘늑대아이’ ‘괴물의 아이’ 등 애니메이션에 가족의 의미를 담아온 일본 거장 호소다 마모루(52) 감독의 말이다. 16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미래의 미라이’를 들고 지난달 한국을 찾은 그는 3년 전 둘째 딸이 태어나자 첫아들이 부모 사랑을 빼앗겼다고 느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곤 이번 작품을 구상했다고 했다.

아시아 애니 최초 골든글로브 후보 #'미래의 미라이' 호소다 마모루 감독

주인공은 네 살배기 소년 쿤. 갓 태어난 여동생 미라이에 부모 사랑을 빼앗기며 인생 최대 위기에 처한 그에게 미래의 미라이가 찾아온다. 시간여행에 나선 쿤은 증조부모까지 4대에 걸쳐 온 가족을 만난다.

“아이가 어떤 식으로 동생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했죠. 이제껏 제가 만든 그 어떤 영화보다 가장 큰 테마예요. 아이와 함께 사는 평범한 일상을 통해 인간의 삶이 이어져 가족을 형성하는 생명의 거대한 루프를 그려내려 했습니다.”

애니메이션 '미래의 미라이'로 지난달 한국을 찾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 [사진 얼리버드픽쳐스]

애니메이션 '미래의 미라이'로 지난달 한국을 찾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 [사진 얼리버드픽쳐스]

시공을 초월한 이런 철학은 해외에서도 통했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 초청에 이어 올해 초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아시아 작품 최초로 장편 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올랐다.

상상력의 원천은.  

“젊었을 땐 먼 외국이나 옛날 화가의 그림에 영향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가까운 사람들, 아무것도 아닌 일상 속에 소중한 것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쿤과 미라이의 부모는 출산 후 엄마가 복직하고 아빠가 육아와 살림을 맡는다.  

“근대화 과정에서 어머니다움, 아버지다움을 중시했던 시기가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젠 가족의 형태와 의미를 개개인이 각자 찾아야 하지 사회가 규정짓는 것은 아니란 생각에 부부의 젠더 모드를 역전시켰다. 극 중 대사는 대부분 우리 부부가 나눈 말이다. 처음 아이를 돌보게 됐을 때 아내를 계속 쳐다보며 어떡할지 물으니 ‘나 말고 아이를 보라’더라. 그때만 해도 아내의 육아를 돕는단 의무감이 더 커서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고서야 제대로 의미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스스로 느끼게 됐다. 영화에도 그런 아버지의 성장이 드러난다.”

집안 전체가 한눈에 올려다보이는 계단식 집 구조가 특이하다.  

“아이의 시선으로 가족의 비밀에 한 단계씩 다가서는 과정을 상징했다. 아이가 봤을 때 재밌을 것 같다고 느낄 만한 구조이길 바랐다.”

집 한가운데 있는 정원에선 온갖 상상이 펼쳐진다. 사진은 쿤이 강아지로 변신하는 모습. [사진 얼리버드픽쳐스]

집 한가운데 있는 정원에선 온갖 상상이 펼쳐진다. 사진은 쿤이 강아지로 변신하는 모습. [사진 얼리버드픽쳐스]

쿤의 목소리를 연기한 카미시라이시 모카는 19세 여성 배우다. 일본 개봉 당시 배역과 어울리지 않는단 비판이 있었는데.  

“오디션에 여섯 살 어린이부터 중년 여성까지 정말 다양한 분들이 오셨는데, 그가 가장 적임자라 판단했다. 왜냐면 이 영화의 본질적인 테마는 ‘나는 누구인가’이기 때문이다. 아이 때보단 오히려 나이를 먹어가며 답을 추구하게 되는 질문이다. 어린아이에 가까운 목소리의 성우를 포기하고 어떤 연령대라도 공감할 수 있는 카미시라이시의 목소리를 그대로 살리고자 했다.”

다채로운 화풍도 볼거리다. 상상 속 괴물이 등장하는 기차역 장면이 공포영화처럼 오싹하다면, 가족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나무 속에 빨려드는 장면은 기하학적인 화면 구성이 두드러진다. 과거로 간 쿤이 자기 또래인 어린 시절의 엄마와 신나게 노는 장면도 재미있다.

영화를 본 아들의 반응은 어땠나.  

“본인의 모습이 많이 들어있어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했는데, 막상 보여주니 여느 아이처럼 즐겁게 봐줬다. 아내도 ‘당신이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고 얘기해줘서 기뻤다.”

쿤이 과거로 가서 만나는 외증조부의 젊은 시절. 스타 배우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목소리 연기했다. [사진 얼리버드픽쳐스]

쿤이 과거로 가서 만나는 외증조부의 젊은 시절. 스타 배우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목소리 연기했다. [사진 얼리버드픽쳐스]

영화엔 쿤의 외증조부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다리부상을 한 채 고통스럽게 생존하는 장면도 나온다. 어린 쿤은 이런 선조의 삶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는 걸 조금씩 깨달으며 철이 든다. 일본과 역사적으로 얽힌 우리 관객이 보기엔 마음이 다소 복잡해지는 장면이다.

호소다 감독은 “실제 아내의 할아버지 이야기”라면서 “부상을 딛고 할머니와 혼인하셨던 사연을 그리려다 보니 전쟁장면이 들어갔다. 결코 특정 시점에서 전쟁을 표현하려던 의도는 아니었다. 한국이나 중국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여 주실지 알 수 없지만, 어디까지나 전쟁에 휘말린 서민들의 전 세계 공통된 경험으로서 그렸다”고 조심스레 설명했다.

스스로 힘이 됐던 과거의 순간을 떠올린다면.  

“1991년. 대학 졸업 후 일본에서 상당히 큰 도에이란 회사에 들어갔는데 애니메이션계의 현실은 소문대로 가혹했다. 월급은 적고 장시간 일하고 보장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림 실력조차 기대에 부응 못 해 그만두겠다 생각했을 무렵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가 출시됐다. 이렇게까지 훌륭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만 있다면, 하며 힘들어도 계속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의 ‘이웃집 토토로’, 스기이 기사부로 감독의 ‘은하철도의 밤’도 제겐 그런 ‘인생 애니메이션’이다.”

어린 미라이와 쿤. 남매는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사진 얼리버드픽쳐스]

어린 미라이와 쿤. 남매는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사진 얼리버드픽쳐스]

그는 “이번 골든글로브 진출 소식에 깜짝 놀랐고 영광이었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제 작품을 환영해준 해외영화제는 2006년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처음 찾은 부산국제영화제다. 한국 관객의 응원에 늘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차기작은.

“2021년을 목표로 구상하고 있다. ‘미래의 미라이’완 정반대의 작품이다. 다이내믹한 변화를 기대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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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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