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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식은 파이’된 공공기관 채용비리 국정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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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성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윤성민 정치팀 기자

윤성민 정치팀 기자

“언제까지 (서울교통공사) 채용 비리를 덮기 위해 국회를 마냥 공회전시킬 것이냐.”(자유한국당 김성태 당시 원내대표)

“(강원랜드 채용 비리는) 고구마 줄기처럼 캐면 캘수록 계속 의혹이 나온다.”(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

지난해 11월 국회는 공공기관 채용 비리 문제로 뜨거웠다. 중앙일보 보도와 국정감사를 통해 서울교통공사의 ‘고용 세습’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야당이 서울교통공사 국정조사를 요구했고, 민주당은 강원랜드 채용 비리 의혹도 국정조사로 다루자고 맞불을 놓았다. 결국 지난해 11월 여야 원내대표는 두 공공기관 채용 비리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하는 데 합의했다.

두 달여가 지난 지금 여야가 국정조사를 대하는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지난 7일 열린 원내대표 회동에서 여야의 요구 사항 목록에 ‘유치원 3법’ ‘김태우 특검’ 등은 올라있었지만 ‘국정조사 실시’는 보이지 않았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회동 뒤 “국정조사 얘기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 ‘국정조사 해야죠’라고 말하니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한 정도였다”고 했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표면적으로는 유치원 3법 때문이다. 여야는 국정조사 실시에 합의하면서 유치원 3법 처리 등 5개 항에도 함께 합의했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유치원 3법 처리를 막았기 때문에 국정조사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하지만 실제론 여야의 이해관계 때문이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국정조사를 하면 민주당이나 한국당이나 좋을 게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강원랜드 의혹엔 한국당 권선동·염동열 의원이, 서울교통공사 의혹엔 박원순 서울시장이 연관돼 있다. 국정조사를 해봤자 여야 모두 흠집만 난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권의 행태 때문에 국정조사가 비리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정쟁을 위한 ‘공갈포’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5선 의원인 민주평화당의 천정배 의원은 “실제 필요해서라기보다 야당이 여당을 압박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여야가 국정조사를 두고 때려잡을 듯이 싸우다가 국민의 관심이 줄면 국정조사는 ‘식은 파이’가 된다. 실제론 국정조사 카드를 가지고 정치적 협상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대 국회에서 11건의 국정조사 요구서가 떠들썩하게 국회에 제출됐다. 실제 본회의에서 의결돼 국정조사가 이뤄진 건 ‘최순실 국정농단’과 ‘가습기 살균제 사고’ 단 두 건뿐이었다. 정쟁의 도구로 이용된 나머지 9건은 언제 관심이나 있었냐는 듯 ‘식은 파이’로 남아있다.

윤성민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