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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창업자도 '책상검사' 받는다···판교의 보안원칙은 '100대 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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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는 대한민국의 새 성장동력이다. 공장 굴뚝 하나 없는 이곳에 1200여 개 기업, 7만 여 명의 인재들이 한국판 구글ㆍ페이스북을 꿈꾸며 일한다. 한국 제조업은 휘청거리지만, 판교 기업들은 기술과 아이디어로 미래를 바꾸려 한다. 판교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중앙일보는 2019년 한해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디지털 시리즈를 통해 판교 태크노밸리 기업과 사람들의 꿈·희망·생활을 해부한다.  

카카오 지배하는 '100대 0'의 원칙

경기도 판교 카카오 본사에는 ‘100대 0’의 원칙이 있다. ‘회사 내부에서는 모든 정보를 공유(100)하고, 카카오를 벗어나서는 아무 것도 공개하지 않는다(0)’는 의미다. 입사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이 원칙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직원끼리 카카오톡이나 메일로 문서를 주고 받을 때에도 ‘100대 0 아시죠?’라며 말을 맺기도 한다. 회사 밖에서는 아예 업무 관련 얘기를 하지 않는다. 회식 등 외부 술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아이디어로 먹고 사는 판교밸리 기업들에 정보보안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다. 작은 아이디어 유출이 큰 사업 기회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때문에 판교밸리 기업들은 많은 경우 대기업보다 더 깐깐하고, 엄격하게 사내 정보를 걸어잠근다. 100대 0의 원칙에서 '0'이 의미하는 바다. 하지만 내부 정보는 누구보다 활발하게 공유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만들었다. 창의성과 신기술로 크는 기업 특성상 활발한 내부 정보 교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100대0의 원칙에서 '100'이란 숫자로 대변된다.

오후 7시. 직원들 퇴근 후 '책상 검사' 시작

8일 오후 7시. 오픈형 부동산 플랫폼 ‘다방’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스테이션3' 사무실에선 ‘책상 검사’가 시작됐다. 80여 명의 직원은 모두 퇴근한 시간. 이 회사 김용희 정보보호 파트장은 80여개가 넘는 책상 위를 ‘매의 눈’으로 샅샅이 훑고 다닌다. 담배나 술을 찾는 게 아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외장하드나 USB·기타 중요 문서들이 검사 대상이다. 퇴근 후에 자료 등이 책상 위에 있으면 정보보호팀에서 수거해 파기한다.

창업자 책상도 예외없이 검사

창업자인 한유순 대표의 책상도 예외없이 검사 대상이다. 한 대표는 어지러이 늘어놓은 서류 등으로 인해 사내에서 가장 많은 11회의 누적 경고를 받았다. 카카오에 ‘100대 0’의 원칙이 있는 것처럼 스테이션3에는 ‘빈 손 출ㆍ퇴근’ 원칙이 있다. 출근은 물론 퇴근도 빈손으로 해 외부로 유출되는 회사 문서나 파일 등을 최소화하겠다는 목표다. 직원이라도 사내에선 무단으로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CEO 얼굴 뜨는 화면보호기가 경고 

근무 중 10분 이상 자리를 비울 때에는 PC에 한유순 대표의 얼굴 사진이 나오는 화면보호기가 뜬다. 보호기엔 ‘개인 정보보호를 놓친 남자, 아차’등 재미난 문구가 있다. 또 퇴근과 동시에 자사 서비스에 관리자로 접근할 수 없다.

스테이션3 한유순 대표의 사진을 활용한 화면보호기. 개인정보보호를 놓친 남자 '아차' 등의 재미난 문구가 쓰여있다. [사진 스테이션3]

스테이션3 한유순 대표의 사진을 활용한 화면보호기. 개인정보보호를 놓친 남자 '아차' 등의 재미난 문구가 쓰여있다. [사진 스테이션3]

게임업체인 넥슨은 ‘스마트폰은 잠금 설정’, ‘의심스러운 메일은 신고하고 삭제’처럼 정보보호 수칙이 담긴 마그네틱 굿즈를 만들어 사용 중이다. 자연스레 정보보호 관련 노력들이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해서다. NHN엔터테인먼트는 매월 대청소를 한다. ‘개인정보 클린& 클린 데스크 캠페인’이다. 이 회사 임직원들은 매월 PC내 개인정보를 암호화하거나 삭제한다. 또 중요 정보는 최소로 저장하고, 반기별로 악성코드 모의훈련을 실시한다.

게임업체인 넥슨이 직원들의 정보보안 의식을 높이기 위해 만든 마그네틱 굿즈들. [사진 넥슨]

게임업체인 넥슨이 직원들의 정보보안 의식을 높이기 위해 만든 마그네틱 굿즈들. [사진 넥슨]

회사 밖으로의 정보 누설은 철저히 막는 대신 사내에서 활발한 정보 교류는 적극 장려한다. 카카오에선 사내 게시판인 ‘아지트(Agit)’를 이용해 다른 부서에서 어떤 업무가 진행 중인지 알아보는 것은 물론 그에 대한 의견을 낼 수도 있다. 아지트는 트위터처럼 실시간(타임라인)으로 대화 내용이 올라온다. 여기엔 2800여 명에 달하는 카카오 임직원들이 전원 참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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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직원에 생중계되는 타운홀 미팅

덕분에 특정 팀 업무에 다른 팀 구성원의 의견이 반영되는 일이 잦다. 또 주요 이슈가 있을 때에는 임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타운홀 미팅 형식의 ‘T500(목요일 오후 5시에 하는 비정기적 전체 미팅)’이 열린다. 임직원 전원에게 회사의 주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유한다는 철학에 따른 것이다. 이 자리에서 임직원들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로이 낼 수 있다. 참석하지 않은 직원들에게도 생중계된다. 최근엔 한 달에 두 번꼴로 열렸다. 지난달에는 ‘카카오 조직문화 건강성 진단 결과’를 주제로 T500이 개최됐다. 직원들이 스스로 ‘카카오는 건강한 조직인가’ 등에 대해 의견을 내고 그 결과를 공유했다.

지난해 열린 네이버 핵데이 2018의 알림 배너. [사진 네이버]

지난해 열린 네이버 핵데이 2018의 알림 배너. [사진 네이버]

아이디어 발표도 축제처럼

판교밸리 기업들은 아이디어 발표도 축제나 경연대회로 진행하는 것이 필수처럼 돼 있는 분위기다. 네이버는 사내 해커톤(Hackathonㆍ프로그래머 등이 참여하는 아이디어 경연대회) 프로그램인 ‘네이버 핵데이’와 기술 쇼케이스인 ‘네이버 엔지니어링데이’를 통해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선보이고, 이와 관련한 개선 아이디어를 구할 수 있도록 한다. 네이버 핵데이는 지난해 4회째를 맞았다. 핵데이에서 ‘360˚ 뷰어’, ‘카페 플러그’처럼 다양한 기술과 아이디어가 발굴됐고, 이를 실제 서비스로 만들었다. 지난해엔 총 48개팀(145명)이 참가했다.
네이버는 또 지난해까지 연 1회였던 엔지니어링 데이를 올해부터는 분기마다 열기로 했다. 모바일 게임 유저가 게임 플레이 중 앱을 나가지 않고도 곧바로 커뮤니티를 통해 다른 유저와 소통할 수 있도록 한 ‘플러그(PLUG)’ 기능이 네이버 엔지니어링 데이를 통해 구현되는 등 효용이 크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SK플래닛의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인 '핵 데이'에 참여한 이 회사 임직원들이 다른 직원의 아이디어 발표를 보고 있다. [사진 SK플래닛]

SK플래닛의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인 '핵 데이'에 참여한 이 회사 임직원들이 다른 직원의 아이디어 발표를 보고 있다. [사진 SK플래닛]

SK플래닛도 2016년부터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인 ‘핵 플래닛(Hack Planet)’ 행사를 열고 있다. 매년 20여개 팀, 100여 명의 임직원이 참여한다. 점심시간 등을 활용해 핵 플래닛에 출품된 아이디어를 공개하고 다른 구성원들의 추가 개선 아이디어를 모으는 ‘데모 데이(Demo Day)’ 프로그램도 더해졌다. SK플래닛 이호준 데이터비즈&테크그룹장은 “핵 플래닛은 직원들의 아이디어 공유를 활성화하고, 협업을 통해 이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인사이트를 얻는 사내 정보 공유 축제로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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