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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세] 가짜가 잘 나간다···150만 거느린 모델 정체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11월 일본에서 특별한 웨딩마치를 울린 남성이 있습니다. ‘차원을 넘어:홀로그램과 결혼한 남성’이란 제목으로 CNN이 사연을 전했지요. 도쿄에 사는 콘도 아키히코(36) 얘기입니다. 그가 주목을 받은 건 신부 때문인데요. 흰색 턱시도를 입은 그의 옆에 선 웨딩드레스의 주인공이 파란색 양갈래 머리를 한 봉제 인형이었던 겁니다. 바로 ‘하츠네 미쿠’라는 사이버 셀럽(유명인사) 입니다.

가상 캐릭터와 결혼한 콘도 아키히코. [CNN 캡처]

가상 캐릭터와 결혼한 콘도 아키히코. [CNN 캡처]

가상 캐릭터인 미쿠는 2007년 탄생했습니다. 일본 크립톤 퓨처 미디어가 음성 합성 프로그램인 보컬로이드를 홍보하기 위해 개발했지요. 라이브 콘서트를 열고 TV, 광고, 게임 등에 출연하며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보컬로이드계 소녀시대라고 할까요.

팔로워 150만 거느린 CG모델, 사람보다 인기 많은 가상 유튜버 출현

콘도는 여상사의 괴롭힘 탓에 힘든 시절을 보내던 중 미쿠를 알게 되었고, 사랑에 빠졌습니다. “내가 하는 건 분명 사랑”이라며 “미쿠가 인생 밑바닥에서 나를 구해줬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2000만원가량 들여 준비한 결혼식엔 40명 가까운 지인들이 참석해 둘을 축하했지요. 콘도는 다음 달 신혼여행 차 미쿠를 삿포로로 데려갈 생각에 벌써 설렌다고 말합니다.

가상 캐릭터와 결혼한 콘도 아키히코. [CNN 캡처]

가상 캐릭터와 결혼한 콘도 아키히코. [CNN 캡처]

가상 캐릭터와 결혼을 원하는 일본인은 3000여명이라고 하는데요. 가짜에 빠진 건 이들뿐 아닙니다. 모델부터 유튜버까지 진짜보다 잘 나가는 사이버 셀럽들의 이야기를 [고 보면 모 있는 기한 계뉴스, 알쓸신세]에서 들려드립니다.

150만 팔로워 거느린 모델의 반전은

가상 모델 릴 미켈라. [인스타그램 캡처]

가상 모델 릴 미켈라. [인스타그램 캡처]

두툼한 입술에 양 볼을 뒤덮은 주근깨, 짧은 앞머리는 모델이자 뮤지션 릴 미켈라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사는 19세 스패니시 브라질계 미국인. 미켈라에 대해 알려진 건 많이 없지만 분명한 건 그가 파워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개인)란 점입니다.

탁월한 패션 감각이 2030 세대의 관심을 끌면서 2016년 4월 연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150만명의 팔로워가 따르고 있지요.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해 6월 꼽은 인터넷에서 영향력 있는 25인에도 속합니다. 패션쇼에 초대받고 화보 촬영을 하는가 하면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하는 등 누구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지요. 2017년 발표한 싱글 앨범 ‘낫 마인(Not Mine)’은 세계 최대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에서 150만번 플레이됐을 정도로 히트였습니다.

믿기지 않지만 미켈라는 온라인상에만 존재하는 CG(컴퓨터 그래픽) 모델입니다. 브러드라는 LA 기반 스타트업 회사가 600만 달러(약 67억원)의 투자를 받아 탄생시켰다고 하지요. 살짝 어색한 표정과 피부 탓에 종종 “혼란스럽다“ “진짜 사람이냐”라는 반응이 있던 중 미켈라는 “나는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다”라고 깜짝 고백했습니다. 가짜란 걸 알면서도 화려한 이미지에 열광하는 팬들은 갈수록 늘었는데요. 패션업계도 꾸준히 러브콜을 보냈습니다. 지난해 양털 부츠 브랜드 어그는 40주년 기념 캠페인 모델 중 한 명으로 미켈라를 발탁했습니다.

가상 모델 릴 미켈라. [인스타그램 캡처]

가상 모델 릴 미켈라.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면 사실 그가 가짜인지 눈치채기 어렵습니다. 레스토랑에서 브런치를 즐기고 진짜 사람과 함께 있는 모습들이 자연스럽기 때문이지요. ‘흑인들의 목숨도 중요하다’는 뜻의 ‘블랙 라이브즈 매터’ 캠페인을 지지하는 등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도 거침없습니다.

미국 스포츠 브랜드인 아웃도어 보이시스 최고경영자(CEO)인 타일러 헤이니도 가상 인물인 줄 모르고 미켈라를 팔로워했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아니지만 그와 협력하고 싶다고도 하지요. “더 흥미롭고 몰입적인 고객 경험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가상 모델 릴 미켈라. [사진 어그]

가상 모델 릴 미켈라. [사진 어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릴 미켈라가 가짜 소셜미디어 셀럽의 위력과 가상 캐릭터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을 시험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가상 모델 슈두그램. [인스타그램 캡처]

가상 모델 슈두그램. [인스타그램 캡처]

또 다른 가상 모델인 흑인 여성 슈두그램도 15만명 넘는 팔로워를 보유한 스타입니다. 2017년 영국 런던 사진작가 카메룬 제임슨 윌슨의 손에서 태어났지요. 할리우드 스타 리한나의 뷰티 브랜드 펜티뷰티 모델을 맡기도 했습니다. 윌슨은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모델은 많지만 특별한 누군가를 찾기는 어렵다”며 “3D 모델은 런웨이를 걸을 순 없지만, 쇼핑을 돕거나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 대변인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밝혔지요.

가상 모델 슈두그램. [인스타그램 캡처]

가상 모델 슈두그램. [인스타그램 캡처]

진짜보다 잘 나간다 ‘버추얼 유튜버’

그런가 하면 초등학생 희망 직업 5위에 오를 만큼 핫한 유튜버 세계에도 가짜가 등장했습니다. 가상 유튜버(버추얼 유튜버)인데요. 줄여서 브이튜버(Vtuber)라고도 칭합니다. 영국 BBC는 “서구에서 인스타그램에 가상의 인물들이 침투할 때 일본에선 브이튜버들이 출현했다”고 전하지요.

브이튜버.[영국 BBC 캡처]

브이튜버.[영국 BBC 캡처]

별도의 가상현실 캐릭터를 제작하고 실제 사람이 모션 캡처 장비와 더빙을 통해 연기하는 것이라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정체는 베일에 싸여있습니다. 지난해 초 은발의 미소녀 캐릭터가 실수로 본모습을 드러냈다가 구독자 수가 5분의 1로 줄었다고 하는데요. 놀랍게도 캐릭터를 연기한 인물이 40대 아저씨였던 겁니다.

브이튜버 같은 가상 캐릭터는 실제 사람의 연기와 모션 캡처 기술 등을 통해 탄생한다. [영국 BBC 캡처]

브이튜버 같은 가상 캐릭터는 실제 사람의 연기와 모션 캡처 기술 등을 통해 탄생한다. [영국 BBC 캡처]

시초는 2016년 등장한 일본의 ‘키즈나 아이’입니다. 토끼 리본을 머리에 달고 파란 큰 눈을 가진 귀여운 외모가 특징이지요. 일상과 만화, 게임 등을 소재로 방송하는데 구독자 수(240만명)로 보면 한국의 유명 유튜버 ‘대도서관’을 능가합니다. 동영상이 업로드되면 팬들은 자발적으로 세계 각국의 언어로 자막을 만들어 공유할 정도로 인기이지요. 지난해 3월 일본 정부 관광홍보대사로도 발탁됐습니다. 정규 TV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CF와 화보 촬영까지 할 정도입니다. 재팬타임스에 따르면 유럽과 미국 등서 호응이 커 시청자 중 절반 이상은 일본 이외 국가에서 온다고 하지요.

브이튜버 키즈나 아이.[재팬타임스 캡처]

브이튜버 키즈나 아이.[재팬타임스 캡처]

스타덤에 오른 경우 가상 공간에서 콘서트를 하기도 합니다. 지난해 8월 또 다른 브이튜버 카구야 루나가 그랬지요. 200명의 관객은 집에서 고성능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이용해 콘서트를 감상했습니다. 카구야 루나는 일본뿐 아니라 북미에서도 ‘코카인쨩’이라는 애칭으로 사랑받고 있다지요.

BBC에 따르면 일본에서 이런 브이튜버 계정의 수는 지난해 초 기준 4000개가 넘습니다.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일본의 하위문화가 브이튜버의 탄생에 영향을 줬다”고 매체는 전합니다.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열광하는 이른바 오타쿠(御宅) 문화의 영향도 있을 겁니다. 투자가들은 아시아에서의 이 같은 소비 트렌드가 미국보다 몇 년 앞서 나가는 경향이 있다며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이버 셀럽의 원조는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8년 국내에 등장한 사이버 가수 아담을 기억하시는지요. IT 업체가 개발한 캐릭터였지만 원빈을 닮은 수려한 외모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지요. 데뷔앨범만 무려 20만장 팔렸습니다. 어느 날 문득 종적을 감춰 “입대했다” “컴퓨터 바이러스 때문에 사망했다” 등의 루머가 나돌았지만 사실은 기술력의 한계와 수억 원의 제작비 탓에 사라지고 만 것이라는 후문이 있지요. 30초짜리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개발자 5~6명이 달라붙어 두 달을 작업해야 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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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진 세상에서 이제 미켈라 같은 3D 모델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인기가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는 시각도 있지만 가짜들의 반란(?)은 이미 시작됐고, 지금도 수십 만명의 추종자가 이들을 따르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앞으로 21세기 아담들의 활약이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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