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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개월 소통·성과 강조한 홍남기, 과제는 첩첩산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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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세종정부청사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확대간부회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 자리에서 “불필요한 서울 출장을 줄이고, 되도록이면 세종에 머물면서 후배들의 대면 보고를 받아라”라며 “나 역시 최대한 세종에 머물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국장-과장-사무관들이 활발한 소통을 통해 정책 결정 과정을 공유해야 좋은 정책이 잘 나올 수 있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실ㆍ국장급 간부는 서울, 실무진은 주로 세종에 머물다 보니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깊이 있는 의사소통과 정책 조율이 어렵다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며 “홍 부총리는 최근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성 주장의 원인에는 이런 시스템의 문제가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기획재정부 제공]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기획재정부 제공]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로 취임 1개월을 맞았다. 그가 1개월 동안 특히 강조한 것은 ‘소통’ 이다. 홍 부총리는 취임 초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비공식회의를 많이 활용하겠다”는 말을 수차례 꺼냈다. 실제 그는 취임 이후  ‘녹실(綠室) 회의’ ‘서별관회의’ 같은 비공식 협의체를 부활시켰다. 장관들 간의격의 없는 소통을 통해  ‘정책 사전 조율’이라는 비공식회의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녹실회의는 1960년대 경제부총리가 관계 부처 장관들을 수시로 소집해 경제 현안을 비공식적으로 조율하던 모임으로 회의장소의 카펫과 가구 색상이 녹색이어서 녹실회의라는 별칭이 붙었다. 비슷하게 청와대 본관 서쪽에 위치한 건물에서 열리는 서별관회의는 청와대와 경제부처를 아우른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정례 보고’도 격주 보고로 바뀌었다. 매달 한차례 하던 회동 횟수가 더 늘어나게 된 것이다. “정부 경제팀과 청와대 경제라인이 긴밀히 소통해 두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는 청와대 등과 파열음을 내곤 했던 전임 김동연 전 부총리와 가장 대조되는 대목이다.

홍 부총리의 또 다른 화두는 구체적인 ‘성과’다. 그는 매주 일요일 오후에 열리는 ‘기재부 1급 간부 회의’ 때마다 “우리는 이제 ‘성과’로 말하고 ‘성과’로 승부 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만으로는 1년 반을 넘겼고, 햇수로는 3년 차를 맞는다. 작게라도 성과를 내고 실적을 쌓아야 하는데, 지금까지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보니 절실함을 느끼고 있다는 게 기재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를 위해 그가 던진 첫 번째 승부수는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이다. 현재의 최저임금위원회를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와 노ㆍ사ㆍ공익위원이 참여하는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게 골자다. 이를 통해 최근 2년 새 29%나 오름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줄여 고용 악화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것이다.

올해 경제정책 방향의 핵심 키워드로 민생, 활력, 혁신 등 세 가지를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득주도성장 폐기론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기존 경제정책 기조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선 경제 정책의 성과를 구체적으로 가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가 취임하면서 소득주도 성장 체감 시점을 올해 하반기로 늦춘 것도 시간을 갖고 구체적인 수치로 이를 증명하겠다는 의지 표현으로 해석된다.

또 다른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역대 부총리마다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다”며 “정책 관료 입장에서 홍 부총리는 레토릭(미사여구)보다 디테일(구체적 실행 계획)을 앞세운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홍 부총리는 경제 분야 전반을 아우르는 정책기획력과 조정능력을 토대로 주요 현안에 목소리를 내면서 취임 초기 연착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앞으로 순항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가 많다. 그의 길 앞에 놓인 과제가 산적하기 때문이다.

홍 부총리가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을 시사했지만, 중소기업ㆍ소상공인들은 이번 최저임금 시행령 개정을 통해 주휴수당이 최저임금 산식에 포함되는 등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반발하고 있다. 일자리 상황은 2000년대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고, 소득분배가 악화하고 있는데 공공자금 투입 외에 특별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엎친 데덮친 격으로 세계 경제의 성장세가 꺾이고, 한국도 경기 하강기로 접어들었다.

반면 그가 줄기차게 강조해온 규제혁신은 속도가 더디다. 공유경제 활성화의 핵심인 ‘카풀’ 규제 완화는 택시 업계의 반발로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정부는 ‘사회 대타협을 추진한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할 뿐이다. 기존의 경제기조의 큰 변화 없이 시장에서 부작용이 큰 부분에 대해서만 일정 부분 수정한다는 정책 기조도 1기 경제팀과 크게 다르지 않아 ‘새로운 게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으로 정책 궤도 변경이 필요한 상황에 혁신성장을 내세운 것은 바람직하다”며 “다만 달라진 방향성을 보여줄 앞으로 정책 내용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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