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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방중은 언제 알았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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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10개월 사이 네 번째 이뤄진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을 정부는 언제 파악했을까.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사전에 (북·중) 양측과 긴밀히 소통해왔고 정보를 공유해왔다”고 말했다. 사전에 알았다는 의미다. 다만 “외교 관계가 있어 시점을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 시점은 언제였는지 확인 취재를 해봤다.

7일 낮 노영민 당시 주중 대사는 대사관 간부들과 송별 오찬을 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그는 그 날 저녁 귀국편을 예약해 놓고 있었다. 오후 2시쯤 노 대사가 급히 모처로 향했다. 그 시각 면담 약속이 잡혀 있던 사람에게 “급한 일이 생겼으니 시간을 미뤄야겠다”는 노 대사측의 전갈이 있었다. 귀국편을 이튿날 아침으로 바꾼 건 모처를 다녀온 뒤였다. 김정은의 전용열차는 그 날 밤 국경을 통과했다. 상황을 종합하면 노 대사가 모처를 방문한 동안 방중 사실을 전달받았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지난해 6월 한국으로 휴가를 간 동안 김정은이 베이징에 오는 바람에 구설에 올랐던 3차 방중 때와 비교하면 이번에는 ‘선방’을 한 셈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북·중 정상회담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고, 그 임무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런데 주중 대사는 이미 공석이 돼버렸다.

외교부는 대리 체제를 구축해 업무 차질이 없을 것이라 했다. ‘차질’이 아니라 대사가 있건 없건 ‘차이’가 없다고 하는 게 더 솔직한 말일지 모른다. 대사가 베이징을 지키고 있던 지난해 3월 1차 방중 때의 일이 떠올라 하는 말이다. 당시 주중 대사관은 김정은이 베이징에 도착한 뒤에도 전용열차를 타고 온 주인공이 누군지 정확한 판단을 못내리고 있었다. 한두 곳을 뺀 대다수 국내 언론은 김여정에 무게를 두고 보도했다. 아예 김여정이라 단정짓는 오보를 낸 신문도 있었다. 출처는 우리 당국자의 부정확한 정보였다. 그게 주중 대사관에서부터 청와대에 이르는 대중 외교 라인의 정보력이었다.

북한 최고 지도자의 중국 방문을 사전에 알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평소에 쌓아둔 인맥과 안테나를 동원해서 알아내야 하는 게 외교 최일선을 지키는 대사 이하 현장 외교관들의 임무다. 정보력의 미흡은 대중 외교 역량의 취약을 의미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대중 외교 라인의 정보 파악 능력에는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 여러 차례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전임 정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체제 배치로 망친 한·중관계를 현 정부가 복원시켰다고 자랑하는 지금 사드 탓으로 핑계를 댈 수도 없다.

김정은 방중과 같은 중요 사안이 일어날 때마다 당국은 “긴밀히 소통해 오고 있다”고 말한다. 찰나의 눈속임으로 현혹하는 마술사의 주문(呪文)과 다를 바 없는 말이다.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