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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주행 논란 그 후…김보름 "트라우마 평생 가겠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보름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가 3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김보름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가 3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지난 3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김보름(26·강원도청) 만났는데, 원래 알던 김보름이 맞는지 한참이나 들여다봐야 했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노란 머리는 검정 머리로 바뀌어 있었고, 얼굴살이 쏙 빠져 홀쭉해져 있었다. 우수에 찬 눈빛도 낯설었다. 말을 하는 중간중간에는 공백이 있었다. 김보름은 잘 웃고 스스럼없이 말하던 김보름이 아니었다. 그는 "성격이 변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살은 많이 빠졌다. 먹는 것에 흥미가 떨어져서 그런지 현재 몸무게는 50㎏ 초반이다"라고 했다.

지난해 김보름이 얼마나 치열한 한 해를 보냈는지 느껴졌다. 김보름은 지난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큰 고난을 겪었다. 여자 팀추월에서 팀 동료 노선영을 일부러 떨어뜨리는 '왕따 주행'을 했다는 오해를 받은 데다 경기 후 인터뷰 태도 논란에 휩싸이면서 국민의 질타를 받았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60만 명 이상이 진상 조사를 해달라고 했고, 문화체육관광부는 감사를 거쳐 김보름이 노선영을 일부러 떨어뜨리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 경기에서 김보름, 박지우가 앞에서, 노선영이 맨 뒤에서 질주를 하고 있다. [뉴스1]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 경기에서 김보름, 박지우가 앞에서, 노선영이 맨 뒤에서 질주를 하고 있다. [뉴스1]

김보름이 팀추월 스피드스케이팅 준준결승전 관련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보이고 있다. [뉴스1]

김보름이 팀추월 스피드스케이팅 준준결승전 관련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보이고 있다. [뉴스1]

그러나 김보름의 상처는 쉽게 낫지 않았다. 중2 때 빙상 선수 생활을 시작한 김보름은 11년 동안 인생의 전부였던 스케이트화를 벗고 빙판을 떠나려고 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 그는 "올림픽 직후에는 아무것도 못하고 방 안에만 있었다. 어머니와 코치님들께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다. 다들 아무 말씀을 안하셨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다시 스케이트화를 신은 건 담당 의사 힘이 컸다. "처음 상담받을 때, 의사 선생님이 '스케이트장을 가봤나'라고 물어서 '아직 무섭다. 못 가겠다'라고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는데 의사 선생님이 '가봐야 한다. 자꾸 부딪혀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극복하기 더 힘들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스케이트장을 갔다." 그렇게 지난해 8월 6개월 만에 스케이트장을 찾은 김보름은 훈련을 시작했다.

원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3월에 시즌이 끝나면 한 달 정도 휴식을 갖고 5월부터 훈련을 재개한다. 5개월 동안 몸을 만들고 10월부터 대회에 출전한다. 그런데 김보름은 반년이나 쉬었다. 제대로 된 훈련은 고작 한 달뿐이었다. 그런데도 지난해 10월 태극마크를 달았다. 김보름은 "스케이트를 타면서 이렇게 훈련 안 한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대회에 나가서도 위축돼 있었다. 체력 훈련이 덜 되어서 몸싸움에서도 계속 밀렸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보름은 지난해 11월 월드컵 1차 대회에선 여자 매스스타트 동메달, 2차 대회에선 금메달을 획득했다. 김보름은 금메달 이야기를 하자 얼굴이 다소 밝아졌다. 그는 "금메달은 항상 기분이 좋지만, 이번 금메달은 자신감을 끌어올려줘서 더욱 좋았다"고 했다.

김보름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가 3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김보름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가 3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김보름이 정말 간절히 원했던 금메달은 평창올림픽 금메달이었다. 그에게는 생애 첫 올림픽이었다. 한국 팬들이 가득 메운 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환호를 받으며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기 위해 계속 얼음을 지쳤다. 2017년 세계선수권 매스스타트 우승자였던 김보름은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다. 하지만 팀추월 왕따 주행 논란으로 충격을 받고 사흘간 햄버거 한 조각만 먹고 경기에 나섰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뛰었다. 결과는 은메달이었다. 김보름은 "금메달이 목표였지만, 못 따서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때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했다.

이제 김보름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을 이끌 고참이 됐다. '빙속 여제' 이상화(30)는 평창올림픽을 끝으로 쉬면서 은퇴 수순을 밟고 있다. 김보름은 "선수로서 아직 갈 길이 멀다. 기량이 좋은 다른 선수들이 많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올림픽에 대한 꿈을 말했다. "어렸을 때는 서른 살까지 스케이트를 탈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22년 베이징올림픽에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긴장을 한 것 같았다'고 물었다. 김보름은 "(트라우마가) 평생 가지 않을까요? 기사를 볼 수 있는 인터넷 앱은 전부 지웠어요. 검색하다가 제 기사가 보여도 읽지 않아요. 인터뷰도 신경 써야죠"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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