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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 앞 풀무질 폐업 위기…“50만원 보낸 학생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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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성균관대 앞 책방 풀무질을 1993년부터 운영해온 은종복씨는 ’책방 일이 어려워 젊은 사람이 인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성균관대 앞 책방 풀무질을 1993년부터 운영해온 은종복씨는 ’책방 일이 어려워 젊은 사람이 인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지난 8일 찾은 서울 종로구 명륜동 ‘책방 풀무질’,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에 늦은 점심을 컵라면으로 먹고 있던 은종복(54)씨는 “오늘 주문 책 처리할 게 있어서 책방이 좀 정신없다”면서도 책을 찾으러 오는 학생들에게 꼼꼼하게 책을 골라줬다.

적자 쌓여 집까지 담보 잡힌 주인 #작년엔 문 대통령에 어려움 호소 #손님들 “은사님 돌아가신 느낌” #출판사선 “책값 안 받아” 격려도

성균관대 졸업생이라는 전재연(30)씨는 “졸업한 지 5년인데 (서점을 그만둔다는 소식에) 너무 충격받아서 찾아왔다. 학창시절 존경하시던 은사님이 돌아가신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은씨는 “다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오히려 손님들에게 미안해했다. 성균관대에서 박사과정을 마무리하고 “논문 끝내서 인사드리려고 왔다”는 이정민(37)씨는 “다른 데 없는 책도 여기 있고, 올 때마다 보물을 ‘득템’하는데…”라고 서운해했다.

책방 풀무질은 1985년부터 성균관대 앞에서 34년째 운영돼 온 ‘터줏대감’ 서점이다. 지금의 책방 주인 은씨는 1993년부터 책방을 넘겨받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만성적인 출판가 부진이 누적되면서 10년 전부터 적자가 쌓여 지금까지 출판사에 못 준 돈만 1억원이 넘는다.

은씨는 “신용대출, 아들 명의의 대출에다가 집 담보대출도 50만원 빼고 다 당겨썼다”면서 “감당할 수 없어 그만 운영하려 한다. 책방 정리한다고 한 다음 가족들과 사이가 좋아졌다”라고 말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지난해 4월 낸 책 『책방 풀무질: 동네서점 아저씨 은종복의 25년 분투기』에서 ‘처음 책방 일을 했을 때가 스물여덟, 청춘을 책방 일에 모두 바쳤다. 남은 건 빚이요, 얻은 건 아내와 아들’이라고 쓰기도 했다.

사진은 책방 입구. [김정연 기자]

사진은 책방 입구. [김정연 기자]

책방 풀무질 자리는 올해 6월 11일 계약이 만료된다. 은씨는 “5월 말까지는 책방을 정리하려고 한다”며 “장부를 0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소식이 알려진 뒤 ‘내가 인수하겠다’며 나타난 사람도 3명 정도 있었다.

그러나 은씨는 “책방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니다. 풀무질이 새 생명을 갖고 오래 지속되려면 젊은 사람이 해야 한다”며 인수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폐업 위기’ 소식이 나간 다음에 출판사에서 독촉 전화가 밀려올 줄 알았으나 걱정해주는 전화만 많이 왔다”며 “우리가 책값 받겠냐”라며 격려하는 출판사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문 닫는다는 소식 듣고 카카오페이로 50만원 보낸 사람도 있다”면서 “도와주려고 하는 마음씨가 너무 고마운데, 돈도 없는 학생이 이런 거 보내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

은씨는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 ‘생맥주 미팅’에 직접 참여해 책방 운영의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그때 고용노동부·중소벤처기업부에서 ‘소상공인 고충 털어놓을 수 있는 자리’라고 했지, 대통령이 오는 줄도 몰랐다”면서도 “근데 그 자리에서 말하고도 체감 사정은 하나도 바뀐 게 없다”고 했다.

혜화역 인근에 위치한 ‘이음책방’도 지난해 11월 ‘밀린 책 판매금 결제를 정산하거나, 책을 빼겠다’는 도매상의 통보에 갑작스런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조씨는 급한 마음에 평소 하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어려움을 호소했고, 후원금이 밀려들어왔다. 그는 “1주일 만에 1000만원이 넘게 모였고, 결국 1700만원가량이 모였다”면서 “133명이 후원을 해줬다. 기적같은 일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음책방은 돌려줄 책 800만원어치와 후원금 1700만원으로 도매상에 빚을 다 청산하고, 이후 장기적인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조씨는 “서점업에서 개인이 살아내는 건 불가능하다”며 “지금은 공간이 있으니 수익모델을 만들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전국의 동네책방 주인들이 모여 회의도 한다고 했다. “다음주에 또 회의를 전주에서 할건데, 동네책방끼리 머리를 맞대고 살아나갈 방법을 궁리 중”이라며 그는 희망찬 목소리로 통화를 마쳤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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