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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캐머런이 인정한 유일한 한국인 CG 감독, '디 워'로…

중앙일보

입력

할리우드 SF 대작 '알리타:배틀 엔젤'로 내한한 김기범 CG감독, 마이크 코젠스 애니메이션 감독이 7일 서울 용산CGV 극장에서 영화 속 시각효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속 눈은 CG로 구현한 알리타의 눈을 클로즈업한 것. 정교한 비주얼 덕분에 초대형 스크린에서도 실제 사람의 눈처럼 생생했다.[사진 나원정]

할리우드 SF 대작 '알리타:배틀 엔젤'로 내한한 김기범 CG감독, 마이크 코젠스 애니메이션 감독이 7일 서울 용산CGV 극장에서 영화 속 시각효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속 눈은 CG로 구현한 알리타의 눈을 클로즈업한 것. 정교한 비주얼 덕분에 초대형 스크린에서도 실제 사람의 눈처럼 생생했다.[사진 나원정]

“주인공인 사이보그 알리타는 일반 사람보다 눈이 매우 커요. 눈 크기를 키우면서도 균형 잡힌 얼굴을 만들기 위해 CG로 안면의 뼈대, 근육 움직임, 홍채의 섬유질까지 해부학적 구조를 파악해 캐릭터를 만들었죠. 10여 년 전 골룸(‘반지의 제왕’ 속 CG 캐릭터)과 비교하면 눈 구성요소만 320배 늘었어요. 할리우드 영화에서 CG 캐릭터를 이만큼 가까이서 클로즈업한 건 처음입니다. 컴퓨터 비주얼의 혁명이죠.”

7일 할리우드 SF 액션 대작 ‘알리타:배틀 엔젤’(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즈, 2월 개봉 예정)을 들고 내한한 한국인 CG 감독 김기범(41)씨의 말이다. 이 영화는 ‘타이타닉’ ‘터미네이터2’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아바타’를 함께한 세계적 시각효과 회사 웨타 디지털과 10년 만에 다시 뭉친 야심작. 26세기 미래, 고철처럼 망가진 채 발견된 사이보그 전사 알리타가 의사 이도(크리스토프 왈츠), 친구 휴고(키언 존슨)에 의해 새 삶을 얻고 악의 세력에 맞서는 얘기다.

서울 광화문의 호텔에서 만난 김 감독은 “캐머런 감독이 ‘아바타’ 이전에 만들려 했지만 당시 기술론 구현이 힘들어 연기했다고 들었다”면서 “영화 ‘씬 시티’의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연출로 합류하고, 캐머런 감독이 각본‧제작에 나서면서 재개됐다”고 설명했다.

세계적 시각효과 업체 웨타 디지털의 한국인 CG 슈퍼바이저 김기범씨. 할리우드 영화 '알리타:배틀 엔젤'을 들고 내한한 그를 7일 서울 광화문의 호텔에서 만났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세계적 시각효과 업체 웨타 디지털의 한국인 CG 슈퍼바이저 김기범씨. 할리우드 영화 '알리타:배틀 엔젤'을 들고 내한한 그를 7일 서울 광화문의 호텔에서 만났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심형래 감독의 '디 워'로 CG 첫발, 할리우드로

캐머런 감독이 일본 만화 『총몽』을 토대로 600쪽 분량의 영화 설정집을 직접 작성할 만큼 공들인 이 프로젝트에서 CG는 가장 중요한 요소. 이를 김 감독이 진두지휘했다. 3년 전 웨타 디지털에 입사해 ‘혹성탈출:종의 전쟁’에 참여한 데 이어서다. ‘반지의 제왕’을 시작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비주얼을 선도해온 이 회사에서 한국인 CG 감독은 그가 처음이자, 유일하다. 한국의 영구아트무비에서 영화 ‘디 워’로 CG 일을 시작, 할리우드 시각효과 회사 ILM 싱가포르 지사에서 10년여 근무하며 마블 히어로물, ‘트랜스포머’ ‘해리 포터’  ‘스타워즈’ 등에도 참여해왔다.

7일 공개된 40분여 영상에서 알리타는 피부 질감, 솜털, 빛에 반응하는 눈동자까지 섬세하게 구현해 얼핏 실제 사람 같단 착각마저 들었다. 알리타 역에 캐스팅된 신인배우 로사 살리자르의 흉터부터 잔주름, 매 장면 연기의 표정, 움직임 수백 가지를 모션캡처 기술로 컴퓨터에 스캔해 그와 똑 닮은 CG 캐릭터인 ‘애니메이션 퍼펫’을 만들어냈단다.

영화 '알리타:배틀 엔젤' 한 장면.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알리타:배틀 엔젤' 한 장면.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사이보그는 사랑에 빠질 때 어떤 표정 지을까

알리타가 위협적인 암살자들과 원형트랙을 초고속 질주하며 공을 쫓는 ‘모터볼’ 게임 장면에선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그의 표정에서부터 묻어난다. 인간의 두뇌, 기계 몸을 가진 그는 인간 남자와 사랑에도 빠진다.

“알리타의 개성을 잘 드러내 상대 남성 배우가 반하도록 하는 과정이 관건이었죠. 알리타 담당 스태프만 120명에, CG 컷 수도 2000컷이 넘었어요. 이번 영화에서 세계 최초로 시도한 건 머리카락을 한 가닥, 한 가닥 시뮬레이션 했다는 거예요. 보통은 중심이 되는 머리카락을 움직여 주변 머리카락이 따라 움직이도록 하거든요. CG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상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와 똑같은 환경에서 감정에 몰입할 수 있도록 그린스크린 없이 촬영하는 자체 기술도 사용했죠.”

실제 알리타 역 배우가 연기한 표정과 움직임을 모션캡처를 통해 3D 캐릭터로 구현했다. [사진 나원정]

실제 알리타 역 배우가 연기한 표정과 움직임을 모션캡처를 통해 3D 캐릭터로 구현했다. [사진 나원정]

배우의 얼굴에 찍은 반응점을 토대로 CG 캐릭터의 얼굴 움직임을 작업했다. [사진 나원정]

배우의 얼굴에 찍은 반응점을 토대로 CG 캐릭터의 얼굴 움직임을 작업했다. [사진 나원정]

일반적인 사람보다 눈이 큰 알리타의 얼굴 윤곽은 안면 구조를 해부학적으로 분석해 디자인했다. [사진 나원정]

일반적인 사람보다 눈이 큰 알리타의 얼굴 윤곽은 안면 구조를 해부학적으로 분석해 디자인했다. [사진 나원정]

모션캡처를 토대로 배우의 솜털, 흉터, 입꼬리와 눈의 움직임까지 세밀하게 표현해 완성한 알리타의 얼굴 클로즈업. [사진 나원정]

모션캡처를 토대로 배우의 솜털, 흉터, 입꼬리와 눈의 움직임까지 세밀하게 표현해 완성한 알리타의 얼굴 클로즈업. [사진 나원정]

제임스 캐머런이 지적한 '언캐니 밸리' 아차 싶었다

가장 힘들었던 점으론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를 들었다.

“CG로 구현된 캐릭터가 인간과 유사한 행동을 하는데 뭔가 어색할 때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끼는 걸 뜻해요. 저희 나름대론 알리타의 디테일이 완벽하다고 판단하고 작업하던 도중 제작자 캐머런과 로드리게즈 감독이 알리타 캐릭터에 어색함을 제기했어요. 결국 실제 배우의 눈‧입꼬리의 세밀한 움직임까지 애니메이션 데이터에 입력한 후에야 부자연스러움이 상당히 사라졌죠. 다 고치고 보니 안 고쳤으면 큰일 날 뻔했단 생각이 들었죠.”

그는 “캐머런 감독은 사물의 원리나 물리적 법칙에도 해박하다”면서 “그와 일하려면 저희 수준을 높일 수밖에 없다. 웨타가 앞서 ‘아바타’를 통해 도약한 이유”라고 했다. 또 “프로젝트 진행 중에도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가며 수정을 거듭해 최상의 퀄리티를 내는 게 웨타의 방식”이라면서 “리스크, 비용을 감수하는 장인정신이 있다. 자체 코어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가 내부에 있어, 석박사가 가장 많은 회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연구소엔 한국분들도 있다”고 했다.

“입사 초기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는데 작품을 끝냈을 때 만족도가 다르더군요. 이번 영화도 CG에 1년 4개월 매달렸죠. 웨타는 뉴질랜드 외딴 곳에 열다섯 개 건물로 분산돼 있는데 저 같은 슈퍼바이저들은 거의 매일 노트북을 들고 모든 건물을 휘젓고 다녀야 해요. 일단 작품을 맡으면 해 뜨기 전 출근해서 하루 10시간씩 일합니다. 미팅만 서너 개예요. 동시에 진행되는 여러 프로젝트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겹치는 기술은 없는지 서로 살펴야 하니까요. 관리직일수록 작업기간이 긴 게 최근 트렌드에요. 작업자가 늘어날수록 예산이 솟구치니까, 초반에 핵심인력이 최대한 효율을 올려놓으면 작업자들이 들어가서 1년가량 작업을 마무리 짓고 휴가로 재충전하죠.”

새로운 관심사 '딥러닝'…한국영화 CG 위대해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다 게임 동영상에 매료돼 그래픽을 배우기 시작했단 그는 영구아트무비에 다니던 시절 ‘반지의 제왕’의 비주얼에 감탄하며 웨타를 꿈꾸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알리타’에 이어 이안 감독의 신작 ‘제미니 맨’에 착수한 요즘은 새로운 목표도 세웠다.

“요즘 CG 쪽에선 딥러닝이 가장 화제에요. 방대한 데이터를 획기적으로 빨리 처리할 수 있게 됐죠. 현재도 이미지 정보를 구별하는 효율이 인간이 95%라면, 기계가 97%에요. 기계는 지치지도 않잖아요. 안타깝지만 CG 분야에서 사람이 필요 없는 과정도 생겨날 것 같아요. 호기심이 많은 저한텐 영화 분야가 4차 산업에 상당히 노출돼있다는 게 행운입니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한국 CG 기술에 대해선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할리우드는 제작비가 수억 달러잖아요. ‘신과함께’를 봤는데 2부작의 총제작비가 400억원이라 들었어요. CG 예산은 그보다 적을 텐데, 한국영화계가 위대하다 생각했습니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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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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