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체조여왕 등 300여명에 성폭력…미국 '조재범'은 360년형

중앙일보

입력 2019.01.10 06:10

업데이트 2019.01.14 18:27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22·한국체대)가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로부터 10대 때부터 상습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스포츠계의 뿌리 깊은 폭력·성폭력 문제를 고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해 미국 체조계와 체육계를 뿌리째 뒤흔든 래리 나사르(56) 성추문 사건이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지난해 2월 법정에서 판사의 선고를 듣고 있는 래리 나사르 전 코치. [AP=연합뉴스]

지난해 2월 법정에서 판사의 선고를 듣고 있는 래리 나사르 전 코치. [AP=연합뉴스]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그들은 강력한 여성으로 자라서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려 돌아온다.(Little girls don’t stay little forever. They grow into strong women that  destroy your world.)”

여성 체조선수 등 156명에게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나사르 전 코치를 향해 지난해 1월 처음으로 법정 증언한 카일 스티븐스가 한 말이다. 스티븐스는 6살 때부터 12살 때까지 나사르 가족과 교류하면서 나사르로부터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발했다. 스티븐스를 시작으로 줄줄이 ‘미투’(#me too·나도 당했다)가 이어졌다.

체조스타 시몬 바일스 등에 30년간 성폭력
나사르 전 코치 지난해 법의 심판 받고 수감
올림픽위원회위원장 등 지도층 일제 물갈이도

미국 미시간주립대 체조팀과 미국 체조대표팀 주치의를 지낸 나사르는 30년 가까운 기간 여자 선수들을 성적으로 학대한 사실이 2016년에 드러나 법의 심판을 받던 중이었다. 피해자들의 법정 증언을 전후해서 전·현직 대표 선수 150여명이 그로부터 성추행·성폭행을 당했다는 '미투'에 동참했다. 그 가운데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 체조계의 여왕으로 불리는 시몬 바일스와 2012년 기계체조 금메달리스트 조딘 위버 등 미국인이 사랑하는 스타들도 포함됐다. 피해자가 300여명에 이르면서 사태는 나사르 개인 문제를 떠나 이를 방조하고 바로잡지 못한 미국 체조계·스포츠계의 구조적인 문제로 비화했다.

올림픽 기계체조 금메달리스트인 조딘 위버가 지난해 1월 법정에서 래리 나사르 전 코치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증언하며 눈물을 닦고 있다. [AP=연합뉴스]

올림픽 기계체조 금메달리스트인 조딘 위버가 지난해 1월 법정에서 래리 나사르 전 코치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증언하며 눈물을 닦고 있다. [AP=연합뉴스]

스콧 블랙문 미국올림픽위원회(USOC) 위원장, 앨런 애슐리 USOC 경기향상 책임자 등 USOC 최고위층 인사들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케리 페리 전 미국체조협회장도 임기 중 물러났고 지난해 10월 그의 뒤를 이은 베리 보노 회장도 올림픽 체조 스타들의 추가 폭로가 나온 지 나흘 만에 사퇴했다. 미시간주립대는 피해자들과 5억 달러라는 거금을 내고 가까스로 합의했다.

2017년 연방 재판에서 징역 60년을 선고받은 나사르는 지난해 1월 미시간주 법원에서 미성년자 성폭행 유죄를 인정해 최고 175년형을 추가로 받았다. 2월 판결에선 여기에 최대 125년 형이 보태졌다. 총 360년형으로 사실상 종신형이다.

나사르 사태는 지난해 AP통신이 뽑은 2018년 스포츠뉴스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만큼 미국 체육계가 충격과 후폭풍에 휩싸였다는 의미다.

미 언론들은 이전에도 성추행·폭행 문제가 불거져 왔음에도 스포츠계의 인식·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점을 근본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프로풋볼(NFL) 템파베이 버커니어스의 스타 쿼터백 제이미스 윈스턴은 성추문에도 불구하고 커리어에 아무 지장을 받지 않았다. 윈스턴은 2012년 대학풋볼 전국랭킹 1위 플로리다 스테이트(FSU)의 스타 선수로 활약하던 시절 대학 여학생을 성폭행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으나 불기소 처분됐고 2015년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됐다. 오히려 남자 선수의 경우 이런 추문이 이력에 감점이 될 경우 ‘싼 값’에 그를 확보하려는 손길이 뻗치기도 한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미국 잡지 뉴요커는 지난해 6월 '스포츠계는 그들의 #미투가 필요하다'는 기사를 통해 스포츠계에 만연한 ‘승리 지상주의’를 문제의 근본으로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일한 목적이 이기는 것일 때 도덕은 후순위로 밀려나고 (범죄자의) '회개' 스토리를 합리화하는 게 쉬워진다”고 꼬집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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