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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체육계 성폭력, 문체부와 체육회는 뭘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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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효경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효경 스포츠팀 기자

김효경 스포츠팀 기자

2016년, 테니스 선수 출신으로 지도자 준비를 하던 김은희(28)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초등학생 시절 자신을 성폭행한 A 코치와 대회장에서 맞닥뜨린 것이다. 당시 A 코치는 다른 선수를 성추행해 면직됐음에도 버젓이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성폭력 후유증으로 괴로워했던 김씨는 2016년 A 코치를 고소했다. 2017년 10월, 법원은 1심에서 A 코치에게 징역 10년과 12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지난해 3월엔 리듬체조 이경희 코치가 2011년부터 3년간 대한체조협회 간부 B씨로부터 성폭력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 코치는 2014년 탄원서를 제출했고, 가해자는 면직됐다.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9일 체육계 성폭력 비위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9일 체육계 성폭력 비위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2019년 1월.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22)는 폭행 혐의로 수감 중인 조재범 전 코치를 성폭행 혐의로 추가 고소했다. 조 코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심석희를 지도했던 인물이다. 폭력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심석희 측 관계자는 “혼자서 끙끙 앓았을 것이다. 체육회나 연맹은 물론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라고 말했다. 김은희씨는 “심석희 선수가 성폭력 사실을 공개한 걸 보고 마음이 아팠다. 나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선수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에서 앞으로가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미투’ 열기가 뜨거웠던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성폭력 근절을 목표로 크고 작은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1년 동안 성폭력 피해를 신고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피해 사실을 밝혔다간 2차 피해를 볼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체육단체의 태도도 달라진 게 없었다. 한 체육계 여성 인사는 “사건이 발생하면 협회와 연맹은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다. 가해자뿐 아니라 단체에 엄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9일 조재범 코치 성폭력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열고 대책을 발표했다. ▶가해자에 대한 영구제명 확대 ▶민간주도 성폭력 사례 전수조사 ▶체육단체 전담팀과 기구 구성 ▶선수촌 합숙훈련 개선 등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모든 방안도 공염불 일수 밖에 없다. 그동안 정부와 대한체육회는 뭘 했는지 묻고 싶다.

지난해 체육계는 자정의 기회를 한 차례 놓쳤다. 심석희는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피해 사실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두 번째 기회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김효경 스포츠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