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뼈는 부러지면 더 단단해진다, 이청용도 그렇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축구대표팀 이청용(가운데)이 지난 8일 필리핀과 아시안컵 1차전이 끝난 뒤 황의조를 안아주고 있다. [뉴스1]

축구대표팀 이청용(가운데)이 지난 8일 필리핀과 아시안컵 1차전이 끝난 뒤 황의조를 안아주고 있다. [뉴스1]

"뼈는 한 번 부러진 뒤에는 가골이 형성돼 더 단단해집니다. 이청용 선수의 축구인생도 그런거 같습니다."

아시안컵 필리핀전서 게임 체인저 #볼턴 시절 첼시-리버풀 러브콜 #2011년 살인태클에 정강이뼈 골절 #여전히 다리에 금속핀 박혀있어 #우리가 알던 그 이청용으로 돌아와 #

축구대표팀 주치의를 지낸 송준섭 서울제이에스병원 원장은 9일 '부활한 블루드래곤' 이청용(31·보훔)을 이렇게 표현했다.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이청용은 지난 8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필리핀과 2019 아시안컵 조별리그 C조 1차전에서 1-0 승리를 이끌었다. 이청용은 교체투입된지 4분 만인 후반 22분에 '킬패스' 한방을 찔러줬다. 황희찬(함부르크)~황의조(감바 오사카)로 이어진 결승골의 출발점이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턴 원더러스 시절 팀동료 스튜어트 홀든은 "청이(chungy)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고 말했다. 이청용은 축구대표팀에서도 한 순간에 경기 흐름을 바꾸는 마법같은 능력을 보여줬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턴 시절 이청용. [중앙포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턴 시절 이청용. [중앙포토]

송 원장 말처럼 이청용의 축구인생은 드라마틱하다. 이청용은 볼턴 시절 '포스트 박지성'이라 불렸다. 2009년 FC서울을 떠나 볼턴으로 이적해 첫 2시즌간 9골-16도움을 올렸고, 2010년에는 볼턴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지금 토트넘 팬들이 손흥민을 사랑하는 만큼, 볼턴 팬들은 이청용을 좋아했다.

이청용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를 상대로 골을 터트렸다. 당시 실제로 잉글랜드 첼시와 리버풀이 볼튼 측에 이청용 영입을 타진했다.

하지만 2011년 7월31일 잉글랜드 5부리그 뉴포티카운티와 프리시즌 경기에서 톰 밀러(잉글랜드)에게 살인태클을 당했다. 관중석까지 '딱!' 하는 소리가 들릴 만큼 부상 순간은 끔찍했다.

산소호흡기를 쓴 채 병원으로 옮겨졌고, 눈을 떠보니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오른쪽 정강이뼈 이중골절. 수술 직후 다리에 고름이 줄줄 흐를 정도 심각한 상태였다. 정확히 뼈가 두 동강이 나서 다행이지, 만약 뼈가 잘게 부서졌다면 축구를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이청용의 재활을 도왔던 송 원장은 "축구인생을 접을 만큼 큰 부상이었다. 아직도 청용이 다리에는 대롱 같은 심(금속핀)이 박혀있다"면서 "치료와 재활이 잘된 것도 있지만, 선수가 명예회복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이청용은 10개월간 재활 끝에 2012년 5월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한동안 금속핀을 박은 정강이뼈 부위가 시려서 경기 후 잠도 못이뤘다.

2015년 2월 프리미어리그 크리스탈 팰리스에 입단했지만 4시즌간 주전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잉글랜드 출신 로이 호지슨 감독이 볼턴 임대 이적을 막고 동양선수에게 좀처럼 기회도 주지 않았다. 결국 지난 6월 러시아 월드컵 최종명단에서 탈락했다. 절친 기성용(뉴캐슬)은 주차장으로 내려가 이청용의 탈락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쏟았다.

독일프로축구 보훔에서 부활을 알린 이청용. [보훔 소셜미디어]

독일프로축구 보훔에서 부활을 알린 이청용. [보훔 소셜미디어]

절치부심한 이청용은 지난해 9월 독일프로축구 2부리그 보훔에 입단했다. 11월20일 얀 레겐스부르크전에서는 도움 해트트릭을 작성했다.

그러자 파울루 벤투 감독은 지난해 11월 호주에서 열린 A매치 2연전에 이청용을 호출했다. A매치 80경기 이상 출전한 이청용은 노련한 경기조율, 탈압박, 적극적인 수비를 선보였다.

지난해 11일 호주와 평가전에서 이청용에게 작전지시하는 벤투 감독.[연합뉴스]

지난해 11일 호주와 평가전에서 이청용에게 작전지시하는 벤투 감독.[연합뉴스]

이청용은 필리핀과 아시안컵 1차전에서도 베테랑의 클래스를 보여줬다.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연계플레이를 펼쳤고, 3선까지 내려와 경기를 풀어줬다. 우리가 알던 그 이청용이 다시 돌아왔다.

이청용을 오래 지켜본 한 축구 지도자는 "청용이처럼 프리미어리그 데뷔시즌에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는게 쉽지는 않은 일"이라면서 "요즘 경기모습을 보면 부상 트라우마 탓에 전성기 시절 만큼 저돌적인 돌파는 나오진 않는다. 하지만 타고난 축구센스에 경험까지 더해져 경기를 잘 풀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잉글랜드 볼턴 시절 이청용. [중앙포토]

잉글랜드 볼턴 시절 이청용. [중앙포토]

아버지 이장근씨는 "청용이는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당시 박지성, 이영표 등과 함께 뛰었지만 3위에 그쳐 아쉬워했다. 2015년 호주 아시안컵 때는 오만과 1차전에서 오른쪽 정강이뼈에 실금이 가는 부상을 당해 중도하차했다"며 "이번이 자신의 인생에 마지막 아시안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 팬들 응원에 보답하고 싶어서 독하게 마음 먹었다"고 전했다.

이청용은 12일 오전 1시 키르기스스탄과 조별리그 2차전을 앞두고 있다. 이청용은 필리핀전 후 취재진과 만나 "첫경기는 항상 어렵다. 전반에 필리핀 선수들이 많이 뛸 것을 예상해 조급해하지 않았다. 후반에 볼을 점유하면서 기회가 올거라고 생각했다"면서 "앞으로 갈길이 멀다. 이번 경기에 만족할 수 없고 더 좋은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