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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통계청 조사 거부하면 과태료 내라는 구시대적 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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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조사하는 사람, 조사받는 사람 모두 괴로운 통계 조사가 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다. 가구당 소득ㆍ지출을 파악해 각종 경제ㆍ사회정책을 만드는 데 쓰는 국가 핵심 통계 중 하나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7일 “가계동향조사에 응하지 않는 가구에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통계청의 과태료 부과 검토 방안과 관련해 “시대에 뒤떨어진 행정 조치”라고 지적한 직후다. 통계청이 과태료란 ‘채찍’으로 조사 응답률을 높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자 통계청에서 해명에 나선 것이다.

논란의 원인은 통계청의 조사 방식에 있다. 조사는 전국 7200가구가 매일 수입ㆍ지출을 기록하는 가계부 작성 방식으로 진행된다. 조사에 참여한 회사원 김모(42)씨의 얘기를 들어봤다.

“좋은 취지지만… 표본으로 선정되니 부담스럽더라고요. 조사원에게 ‘꼭 해야 하느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불응하면 최대 20만원 과태료 처분’이라고 하는 거예요.”

퇴근하고 난 뒤 손으로 가계부를 쓰고 일일이 영수증을 붙이는 ‘수고’가 계속됐다. 한 시간 넘게 걸릴 때도 있었다. 김씨는 “거짓으로 쓰면 또 과태료 대상이래서 숙제처럼 한다”고 털어놨다. 민감한 개인정보를 ‘수거 주머니’를 통해 제출하는 방식도 응답자에게는 걱정을 안긴다.

조사원도 괴롭다. 문전박대당하는 건 예사다. 조사원 박모(45)씨는 “조사 불응자로부터 ‘또 찾아오면 죽여버리겠다’는 폭언을 들은 적도 있다. 과태료라도 안 물리면 조사가 얼마나 어려워질지 아느냐”고 말했다. 조사 대상 관리를 위해 각종 허드렛일을 돕고 사비로 선물을 제공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통계법 제26조에 따르면 가계동향조사 같은 ‘지정통계’에 표본으로 선정되면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조사에 응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반한 가구에는 최대 20만원의 과태료를 매길 수 있다. 하지만 응답률은 2010년 80.6%→2015년 75.4%→2017년 72.5%로 꾸준히 하락세다.

국내 소득 통계의 권위자로 꼽히는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년 전부터 이런 문제점을 제기해왔다. “자신의 벌이를 밝히기를 꺼릴 뿐만 아니라, 알더라도 제대로 이야기 안 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조사 가구에 요구하는 것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마찰이 생길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중요한 통계고, 응답률을 높이고 싶다면 국민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조사 방식부터 마련하는 게 우선이다. 과태료 규정을 내밀기 전에 정보기술(IT) 선진국답게 전자 가계부 조사 방식을 조속히 도입하는 건 어떨까. 조사하는 사람은 당당히, 조사받는 사람은 흔쾌히 하는 가계동향조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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