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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처럼 되려 하루 한끼···퀸 22년 따라한 영부인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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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트리뷰트 밴드인 영부인밴드가 서울 동교동 합주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기타리스트 김종호, 드러머 박중현, 베이시스트 안철민, 보컬 신창엽, 키보디스트 김문용. 권혁재 기자

퀸 트리뷰트 밴드인 영부인밴드가 서울 동교동 합주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기타리스트 김종호, 드러머 박중현, 베이시스트 안철민, 보컬 신창엽, 키보디스트 김문용. 권혁재 기자

1974년 발표된 퀸의 2집 앨범 'QUEEN Ⅱ'

1974년 발표된 퀸의 2집 앨범 'QUEEN Ⅱ'

퀸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기록적인 흥행에 이들이 느끼는 감격은 남다를 듯 하다. 이들에게 있어 퀸은  ‘종교’이자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20여년의 세월 동안 이들은 한결같이 퀸을 사랑했고, 퀸을 닮기 위해 악기를 잡았다. 고단한 샐러리맨의 일상 속에서 시간을 쪼개 퀸 음악을 연주했고, 이제는 제법 퀸을 닮은 무대를 만들어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7년부터 퀸의 트리뷰트 밴드(숭배하는 뮤지션의 음악은 물론 음악 외적인 부분까지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밴드)로 활동하는 ‘영부인 밴드’ 얘기다. 밴드명은 한국에 퀸(여왕)은 없지만, 영부인은 있다는 뜻이다.
“20여년간 영부인이 여럿 바뀌셨지만 누구도 공연장에 오시진 않았다”며 너스레를 떠는 이들은 PC통신 시절 밴드를 결성, 유튜브가 대세인 지금까지 오로지 퀸만을 바라보며 수십 차례 공연을 했다.

97년 결성 영부인 밴드 "퀸은 종교이자 삶 그 자체"   

그들에게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기적같은 선물이었다. 영화의 흥행으로 밴드에 대한 관심도 커지며, 지난해 11월24일 홍대 롤링홀에서 열린 프레디 머큐리 추모공연은 만원세례를 이뤘다. 안전을 고려해 몰려든 관객을 더 수용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영부인밴드는 12일 홍대 KT&G 상상마당에서 앵콜 공연을 개최한다. 멤버들이 자비로 공연해왔던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공연기획사가 주최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달라진 위상이 느껴진다. 공연 준비에 여념 없는 이들을 홍대 근처 합주실에서 만났다.

퀸의 트리뷰트 밴드인 영부인 밴드가 공연하고 있는 모습 [영부인밴드 제공]

퀸의 트리뷰트 밴드인 영부인 밴드가 공연하고 있는 모습 [영부인밴드 제공]

'보헤미안 랩소디' 흥행은 세대 아우르는 음악의 힘 덕분 

퀸은 4인조지만, 이들은 5인조다. 보컬과 키보드를 겸했던 프레디 머큐리와 달리, 영부인 밴드의 보컬 신창엽(44ㆍ반도체회사 근무)씨는 키보드를 못치기 때문에 전업 피아니스트 김문용(38)씨가 가세했다. 기타리스트 김종호(49ㆍ은행원)씨는 멤버들 중에서 유일하게 영화를 한 번만 봤다고 했다. 다시 보면 더 많은 눈물을 쏟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영화에서 프레디가 라이브에이드 무대에서 오르기 직전부터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어요. 무대에서 가끔 민망할 정도의 실수를 했던 프레디를 업신여기기도 했는데, 무대 뒤 아픔이 저렇게 컸구나 라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더군요. 오해에 대해 사죄하고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멤버들은 영화의 몇몇 장면이 사실과 달라 눈에 거슬렸다고 했다. 프레디가 동료들에게 에이즈 감염사실을 털어놓은 때가 영화에서처럼 라이브에이드 직전이 아니라, 2년 후였다는 점 등이다. 베이시스트 안철민(45ㆍ외국계기업 한국지사장)씨는 “그럼에도 라이브에이드 전에 멤버들이 프레디를 지켜주려 노력하며 팀웍이 더 끈끈해졌다는 점을 영화가 잘 표현해줬다”고 말했다.
이들은 영화의 흥행에 대해 “모든 장르를 수용하고 세대를 아우르는 퀸 음악의 힘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반찬이 많은 식단처럼 장르가 다양한 퀸의 음악”(안철민)이 “세대를 초월하는 힘을 발휘하며 10~20대들까지 두루 포섭했다”(신창엽)는 것이다. 드러머 박중현(44ㆍMBC 관현악단)씨는 화려한 무대 뒤 프레디의 아프고도 외로운 삶이 힘겹게 살아가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심경과 공명했다는 의견을 내놨다.
“요즘 젊은 세대는 SNS에선 다들 화려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외롭고 힘들잖아요. 그러면서도 버텨내는 프레디의 삶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 것 같아요. 영화를 본 뒤 퀸 노래 가사를 다시 음미하기 시작했는데,  ‘너 자신의 삶을 살라’는 메시지의 곡 ‘Keep Yourself Alive’도 젊은이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더군요.”

퀸 트리뷰트 밴드인 영부인밴드가 서울 동교동 합주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키보디스트 김문용, 보컬 신창엽, 드러머 박중현, 베이시스트 안철민, 기타리스트 김종호. 권혁재 기자

퀸 트리뷰트 밴드인 영부인밴드가 서울 동교동 합주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키보디스트 김문용, 보컬 신창엽, 드러머 박중현, 베이시스트 안철민, 기타리스트 김종호. 권혁재 기자

브라이언 메이 연구가 김종호, 6펜스 동전 기타연주도 판박이   

이들의 퀸 사랑은 ‘트리뷰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어떤 대상을 20년 넘게 사랑하며, 닮아가려 노력한다는 건 인생을 바친다는 각오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안씨는 “20년 넘게 하니까 ‘딴따라 짓 그만하고 정신차려라’는 험담이 ‘정말 대단하다’라는 칭찬으로 바뀌었다”며 “퀸 음악은 끊임없이 되새김해도 질리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 우물만 팔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년간 무대에서 프레디 머큐리로 살아온 신씨는 “또 다른 ‘내’가 회사 업무를 하는데 자신감을 줬다”고 했다.
 김씨의 퀸 사랑은 자신의 삶을 완성시켜 준 존재라는 점에서 조금 더 특별하다.
“어릴 땐 퀸을 가벼운 팝밴드로만 알고 좋아하지 않았는데, 20대 후반 회사동료의 추천으로 제대로 듣기 시작하며 빠지기 시작했어요. 공연장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뱃속에서부터 퀸 음악을 들었던 아들은 지금 프레디의 열혈팬이 됐습니다. 퀸이 제 인생이 된 거죠.”
프레디보다 브라이언 메이를 더 좋아하는 김씨는 그와 관련한 상품은 모두 사들이는 수집광이다. 브라이언 메이의 라이선스 기타 10대를 비롯, 사인 앰프ㆍ이펙터 등 그가 사들인 악기만 해도 고급 중형차 한 대 값을 넘는다. 피크 대신 6펜스 동전을 사용하는 브라이언의 주법을 따라하기 위해 단종된 6펜스 동전을 수백개나 사모았다. 브라이언 메이가 2014년 공연차 내한했을 때 공항에서 만나 사인받은 기타는 그의 보물 1호다. 회사업무가 바쁜 와중에도 반차를 내고 공항에서 가발과 무대의상 차림으로 그를 맞았다고 한다. 그런 그를 멤버들은 ‘브라이언 메이 연구가’라고 부른다. 신씨는 “브라이언 메이의 사운드를 재현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손가락 움직임까지 똑같다. 관객들도 처음엔 가발 쓴 외모를 보고 웃지만, 기타 연주를 들으면 우레같은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무대에서 열창하고 있는 영부인밴드의 보컬 신창엽(왼쪽). 가운데 가발 쓴 이는 기타리스트 김종호 [영부인밴드 제공]

무대에서 열창하고 있는 영부인밴드의 보컬 신창엽(왼쪽). 가운데 가발 쓴 이는 기타리스트 김종호 [영부인밴드 제공]

보컬 신창엽, 프레디 머큐리 닮기 위해 하루 한끼 혹독한 다이어트  

무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는 보컬을 맡고 있는 신씨. 그는 무대 위의 프레디 머큐리로 살기 위해 늘 혹독한 다이어트를 한다고 했다.  “프레디의 음색과 퍼포먼스는 물론 외모도 비슷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요. 노래연습과 다이어트를 평생 달고 살아야 하죠. 공연이 많은 요즘은 하루 한 끼만 먹어요. 얼마 전 ‘음색이 미쳤다’는 칭찬을 들었는데 감사할 따름이죠. 퀸 노래를 늘 귀에 달고 살다보니, 운전하다 길이 뻥 뚫리면 자동적으로 ‘Don’t Stop Me Now’를 흥얼거립니다(웃음). ”

퀸 멤버와 가장 안닮은 베이시스트 안철민, "악플 담당 ^^" 

공연의상까지 똑같이 만들어주는 전담 코디네이터(장초영)까지 있지만, 안씨는 외모 면에서 존 디콘(퀸의 베이시스트)을 닮으려는 노력을 포기했다고 했다. 넉넉한 체형이 슬림한 존 디콘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분장으로 감출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니까, 외모는 포기했어요. ‘너네가 무슨 퀸이냐’라는 악플이 다 제게 쏟아지죠(웃음). 사실 존 디콘도 다른 멤버들에 비해 덜 주목받았거든요. 그걸 위로삼아 버티고 있습니다. 하하.”
영화 흥행 이후 가장 많이 달라진 점으로 멤버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걸 꼽았다.
“어릴 때는 레드제플린 등에 심취해있는 친구들에게 ‘퀸을 좋아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었어요. 이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죠. 커밍아웃이 아닌 , ‘퀸밍아웃’이죠(웃음).”(김종호, 신창엽)
“이젠 퀸을 연주한다는 한 마디로 우리 음악을 설명할 수 있어요. 우리 공연에서 10~20대가 열광하는 걸 보고, 퀸이 이렇게 사랑받는 밴드였구나 새삼 느끼게 됐죠.”(안철민, 김문용)
멤버들은 다 안다. 퀸 열풍이 언젠간 사그러들 거라는 걸. 뮤지컬 ‘위윌록유’(2008), 퀸 내한공연(2014년) 때도 퀸에 대한 관심이 달아올랐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유행이나 붐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퀸 음악이 늘 가슴 속에서 뜨겁게 회오리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기에.
“퀸을 사랑했던 일상이 하루하루 쌓여 어느덧 20년 넘는 세월이 됐고, 앞으로도 평생 퀸과 함께 갈 것”이라는 안씨의 말에 김씨가 엷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눈가 주름에 연륜이 쌓인 그의 우상 브라이언 메이가 보였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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