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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더러운 곳에서 기저귀 갈라고?"…유명무실 공중화장실 영유아 시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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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2층 남자화장실에 설치된 기저귀 교환대. 위생시트가 따로 없고 교환대 앞에 서 있으면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동선이 겹쳐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한다. 심석용 기자

서울역 2층 남자화장실에 설치된 기저귀 교환대. 위생시트가 따로 없고 교환대 앞에 서 있으면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동선이 겹쳐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한다. 심석용 기자

지난해 12월 말 윤갑철(30)씨는 아이 기저귀를 교체하러 서울역 2층 남자 화장실에 들어갔다 불쾌함을 느꼈다. 윤씨가 방문했던 화장실 기저귀 교환대 세 걸음 앞에는 세면대, 그 옆에는 핸드 드라이어가 있었다. 윤씨는 “그칠만하면 이어지는 드라이어 소리에 아이가 연신 울어대기도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3살 아이를 키운다는 주선아(33ㆍ여)씨는 가슴 철렁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주씨는 “공중화장실에 갔더니 기저귀 교환대의 모서리 부분은 때가 타 있었고 안전띠 연결 부분은 녹슬어 있었다” 며 “위생 시트도 없어서 급한 대로 아이를 세워놓고 기저귀를 교체하려다 큰일 날 뻔했다”고 회상했다.

공중화장실 내 영유아 시설의 부족으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2017년 11월 한국 소비자원이 실시한 공중화장실 내 기저귀 교환 실태조사 및 설문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다중이용시설(지하철 역사, 고속도로휴게소, 버스터미널, 백화점, 대형마트) 내 여자 화장실에 기저귀 교환을 위한 위생용품이 갖춰진 곳은 조사대상 30곳 중 한 곳도 없었다. 기저귀 교환대 위생상태를 묻는 설문에 500명 중 432명(86.4%)이 더럽다고 느낀 적 있다고 답했다.

서울역 1호선 내 남자 장애인 화장실에 설치된 기저귀 교환대. 장애인 화장실은 다른 화장실에 비해 공간이 넉넉해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되는 경우가 많다. 심석용 기자

서울역 1호선 내 남자 장애인 화장실에 설치된 기저귀 교환대. 장애인 화장실은 다른 화장실에 비해 공간이 넉넉해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되는 경우가 많다. 심석용 기자

장애인 화장실에 설치되는 기저귀 교환대에 대한 지적도 많다. 장애인 화장실은 지난해 8월 이후 설치 기준이 1.6×2.0m로 확대됐다. 다른 화장실에 비해 공간이 넉넉해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되는 경우도 많아지며 장애인 화장실 이용자들과 기저귀를 갈기 위한 부모들이 화장실을 함께 공유해야 한다. 다리가 불편한 동생이 있다는 택시 운전사 방모(58)씨 “장애인 화장실 수가 한정돼 있는데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되면서 ‘사용 중’ 상태인 화장실이 늘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했다.

기저귀 교환대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은 높았지만 서울시 생활보건과 환경보건팀 관계자는 “서울시 내 공공화장실에 영유아를 위한 시설을 설치 중”이라며 “이에 불만을 표시하는 민원은 거의 없었다”라고 말했다. 한강사업본부 환경과에 따르면 장애인 화장실에 비치된 기저귀 교환대에 관련된 민원은 2015년에 제기된 1건에 불과했다. 한강사업본부 환경과 담당자는 “한강 주변 공중화장실의 경우, 유사시 대피를 위한 목적이 커 영유아 시설까지 갖추기 어렵다“며 ”사람들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아 민원을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관련 당국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주으뜸 생활공간 정책과 사무관은 “공공장소에 영유아를 위한 편의시설을 갖출 것을 의무화한 시행령이 2017년 통과됐고 개정을 거쳐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됐다”며 “영유아 시설을 늘리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역 2층 남자화장실에 설치된 기저귀 교환대. 안전띠 연결 부위는 녹이 슬었고 위생시트도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심석용 기자

서울역 2층 남자화장실에 설치된 기저귀 교환대. 안전띠 연결 부위는 녹이 슬었고 위생시트도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심석용 기자

하지만 시행령의 경우 소급적용 되지 않는 탓에 기존 건물은 적용받지 않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할 거란 지적이 나온다. 개방 화장실의 경우 공중화장실에 속하지 않기에 기저귀 교환대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라는 한계도 있었다.

미국의 경우 공공도서관 등 정부 소유 빌딩 내 남녀 공공화장실에 유아용 기저귀 교환대 설치를 의무화한 ‘아기 법률안’이 2016년 통과됐다. 장애인법으로 휠체어 사용자들이 기저귀 교환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활동 공간ㆍ높이ㆍ설치 위치 등도 규정한다.

심재만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아이와 부모의 1차적인 요구를 해결할 수 없다면 아이 키우기는 갈수록 힘들어질 것”이라며 “해외사례를 참고해 해 공중화장실 내 어떤 시설을 설치해야 할지 기준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ㆍ

심석용ㆍ박해리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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