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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새로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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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건용 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이건용 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서양음악에서 새로움을 추구한 역사는 오래지 않아서 18세기 후반부터의 일이다. 바흐만 해도 그의 작품이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좋은 음악 기술을 습득해서 필요한 음악을 잘 쓰는 것이 중요했다. 마침 그의 시대에는 유럽 전반에 걸쳐 통용되는 보편적인 음악 언어가 있었고 그는 그 언어들을 모두 마스터한 마이스터였다. 바흐는 봉직했던 궁정과 교회에 필요한 음악을 성실히 작곡해 많은 음악을 남기면서도 스스로를 음악의 봉행자라고 여겼지 창조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과거의 음악도 연주가의 해석으로 새로워져 #새로움을 동경하는 것은 생명체의 본능인가

19세기 초에 활동한 베토벤은 궁정이나 교회를 위하여 일하지 않았다. 누구의 요청을 받지 않고 교향곡을 작곡하였다. 새로운 착상이 생기기 전에는 교향곡을 착수하지 않았던 그는 창조자로서의 자신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의 음악은 의식이나 행사를 위해서 쓰인 후 남은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감상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미적 대상’이었다. 그 안에는 시간이,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의 교차가, 정신이, 역사가 있었고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무엇이었다. 그는 그러한 대상물의 창조자였고 음악은 그 손에 빚어진 작은 우주였다.

베토벤 이후의 작곡가들에게 새로움이란 그 자체로서 하나의 가치였다. 그들이 만든 작은 우주들은 제각기 새로운 질서로 움직이는 소우주였다. 그렇지 못한 작품은 중심 없이 우주공간을 떠다니는 의미 없는 물질처럼 취급되었다. 새로움의 추구는 작곡가마다 개성 있는 언어를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보편적인 음악 언어는 차츰 개인적인 언어로 대체되었다. 19세기말 20세기 초에 이르면서 보편적인 언어 자체를 거부하고 완전히 혁신적인 새로운 언어로 자신의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들이 나타났다.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업도 있었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된 20세기 후반에는 급기야 새로움의 추구 자체가 진부한 패션이라는 반성까지 나오게 된다.

흥미롭게도 오늘 우리 시대의 음악사회를 특징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옛날 음악에 대한 소비이다. 18~19세기의 청중들이 대체로 당대에 만들어진 새로운 음악을 들었던 것과는 달리 우리 시대의 청중은 과거의 음악을 듣는다. 바흐를, 베르디를, 말러를 들으러 연주회장이나 극장을 찾는다. 지치지도 않고 반복해서 듣는다.

한 곡 안에는 수백만 수천만 개의 음들이 들어있다. 베토벤의 음악 뿐 아니라 바흐의 음악, 또 그 이전의 음악에도 들어있는 그 음들은 작곡된 이래 변함없이 있지만 그 소리 하나를 내는 방법 또한 무한히 있다. 사실 음악이 기록된 악보는 음악이 아니라 음악의 설계도면이다. 이 설계도에 의거하여 소리의 집을 지어 들리는 음악으로 만드는 것이 연주가이다. 그들은 자신의 음악적 경험과 맥락 속에서 그 설계도를 이해한다. 지휘자마다 곡의 빠르기와 강약이 달라지고 섬세한 표현법이 달라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이러한 새로운 해석에 의하여 음악은 새로운 생기를 얻는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곳을 보고 들리지 않던 곳을 들리게 한다.

새해, 새 날이라고 하지만 실은 수억 년 반복되고 있는 현상의 일순간이다. 새 싹의 움틈과 새 아기의 탄생도 지구상에 생명이 나타난 이래 수없이 되풀이 되는 일이다. 나는 어제, 지난해와 다름없이 나의 몸과 나의 기억을 지닌 채 해와 달과 날을 관통하며 살고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해돋이를 보러 얼어붙은 어둠을 무릅쓰고 동해로 간다. 또 새 아기를 보면 마음이 두근거린다. 왜 우리는 이렇게 새로움을 찾는가?

나의 몸과 나의 기억은 늘 그대로인 것 같아도 조금씩 변한다. 몸은 하루만큼 나이를 먹고 기억은 하루 어치의 정보를 저장한다. 또 내 몸 안에서 세포들은 매순간 죽고 또 태어난다. 그렇게 해서 나의 생명이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움은 지속됨과 더불어 생명을 있게 하는 두 계기 중 하나라는 말이 된다. 새로움을 찾는 것은 살아있는 것들의 본능인가?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