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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창업주는 왜 '보이지 않는 손' 주목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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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더,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16)

멍완주어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오른쪽)가 경호원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의 한 보호관찰소에 도착한 모습. 얼마 전 캐나다에서 화웨이 창업주의 딸 멍완주어가 체포되는 일이 있었다.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에 체류하는 캐나다인 세 명을 구금했다. [AP=연합뉴스]

멍완주어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오른쪽)가 경호원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의 한 보호관찰소에 도착한 모습. 얼마 전 캐나다에서 화웨이 창업주의 딸 멍완주어가 체포되는 일이 있었다.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에 체류하는 캐나다인 세 명을 구금했다. [AP=연합뉴스]

얼마 전 캐나다에서 화웨이 창업주의 딸 멍완주어(孟晩舟)가 체포되는 일이 있었다. 미국의 이란 제재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미국 요청으로 캐나다 정부가 개입한 일인데,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에 체류하는 캐나다인 세 명을 구금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을 뛰어넘는 매우 큰 함의를 지니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중간의 헤게모니 싸움이고 미래의 기술 패권전쟁에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세계 1위 통신장비업체로 성장시킨 ‘늑대 정신’

화웨이는 어떤 기업인가. ‘중국몽(中國夢)’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통신 장비 판매에서 세계 1위이다. 통신망의 장악은 국가안보와도 직결된다. 미국의 핵심 우방으로 앵글로색슨 나라인 캐나다·영국·호주·뉴질랜드 등이 화웨이 제품 보이콧에 동참을 선언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런정페이는 직원들을 위기감을 가지고 필사적으로 일하는 '늑대 정신'으로 무장시켜 불과 몇십 년 만에 통신 장비 세계 1위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중앙포토]

런정페이는 직원들을 위기감을 가지고 필사적으로 일하는 '늑대 정신'으로 무장시켜 불과 몇십 년 만에 통신 장비 세계 1위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중앙포토]

화웨이 회장 런정페이(任正非)는 인민해방군 출신이다. 중국군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정확한 군경력은 베일에 가려 있다. 미국이 화웨이 사건에 중국 정부가 깊이 관여한다고  보는 것은 그의 이런 경력과 무관치 않다. 런정페이는 직원들을 위기감을 가지고 필사적으로 일하는 ‘늑대 정신’으로 무장시켜 불과 몇십 년 만에 통신 장비 세계 1위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딸인 멍완주어가 아버지의 성이 아니라 어머니의 성을 딴 것도 특이하다. ‘임’ 씨여야 하는데 ‘맹’ 씨이다. 런정페이는 세 번 결혼했다. 첫 번째 부인 멍쥔은 쓰촨 성 부성장의 딸로 명문가 출신으로 슬하에 아들과 딸을 낳았는데 멍완주어가 그 중 한명이다. 1987년 화웨이 창립 직후 이혼하고 두 번째 부인 야오링과 결혼해 아나벨야오라는 딸을 두었다.

아나벨야오는 하버드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고, 프랑스 사교계에 오래전부터 이름을 올린 21세의 재원이다. 세 번째 부인 쑤웨이는 그의 비서 출신으로 나이 차이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웨이 사태에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떠올려본다. 왜 새삼스럽게 애덤 스미스일까. 국부론이란 제목 그대로 국가 부강을 위한 방법론이다. “우리의 저녁 식사를 풍요롭게 하는 건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 덕분”라며 ‘인간의 이기심’에 주목한 그의 통찰이 놀랍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하이에크 박사(오른쪽)와 그의 부인(왼쪽). 카를 마르크스가 '보이는 손'을 설파하고 공산주의 이론을 펼 때 공산주의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정확하게 예측한 경제학자가 하이에크 박사다. [중앙포토]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하이에크 박사(오른쪽)와 그의 부인(왼쪽). 카를 마르크스가 '보이는 손'을 설파하고 공산주의 이론을 펼 때 공산주의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정확하게 예측한 경제학자가 하이에크 박사다. [중앙포토]

100년 뒤에 나타난 카를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 실패를 불러오고 ‘빈익빈 부익부’를 초래한다며 ‘보이는 손’을 설파했다. 정부가 개입하며 ‘정의와 공정한 분배’를 주창하며 공산주의 이론을 폈다. 소련을 필두로 동유럽, 중국, 북한 등에서 70~80년간 실험을 했으나 처절하게 실패했다. 이들 나라는 시장경제로 전환했거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공산주의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정확하게 예측한 것이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하이에크(Friedrich Hayek)였다.

1944년 발간된 그의 저서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에서 국가에 의한 계획경제 내지 지시경제는 ‘분배를 핑계로 소수 권력층의 독재를 부르고 다수 국민을 노예로 전락시킨다’는 것이 요지이다. 공산주의 실험에서 예외 없이 나타난 현상이 인민들을 고통스럽게 한 ‘가난의 평준화’이다. 그로 인해 배가 아프지는 않았지만 배가 늘 고픈 현상을 해결하지 못했다.

지금은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살았던 18세기와는 아주 다른 시대 상황이다. 빈곤을 해결한 다음에 나타나는 부의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사회정의를 외치고 부의 분배를 위해 노력하는 세상이 됐다. 그러나 국부를 지속해서 키워나가기 위한 고민은 그때와 다름없이 지금도 중요하다. 이제는 한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로 넓어진 시장에서 국부를 키우는 것은 다른 나라와의 치열한 경쟁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화웨이 사태가 주는 울림은 크다. 세계시장에서 첨병 역할을 할 미래의 전략 산업 분야에서 21세기 경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AP=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화웨이 사태가 주는 울림은 크다. 세계시장에서 첨병 역할을 할 미래의 전략 산업 분야에서 21세기 경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AP=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화웨이 사태가 주는 울림은 크다. 세계시장에서 첨병 역할을 할 미래의 전략 산업 분야에서 21세기 경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한 치의 양보 없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먹거리이자 전략 산업은 무엇이겠는가. 인공지능(AI), 무선통신, 로봇, 바이오, 반도체 등일 것이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런 냉혹한 경쟁 세계에서  힘을 겨루는 기업에 얼마나 전략적인 뒷받침을 하고 있느냐다. 국내 시장이 협소한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 된 것은 중화학공업에 대한 정부의 강력하고 장기적인 지원책 덕분이었다. 지금은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조선·자동차·반도체·IT 등이 전방위로 침체하고 그 자리를 중국에 빼앗기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성장의 과실을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도록 분배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맞다. 그와 더불어 세계시장이라는 최전방에서 미래의 먹거리를 찾아서 고군분투하는 경제 전사들에게 정부가 무엇을 도와줄 것인지를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애덤 스미스에게 지금 ‘신국부론’을 쓰라고 한다면 뭐라고 할까. 아마도 정의로운 사회와 공정한 분배도 중요하지만, 그 초석이 되는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어 가는 산업이나 기업에도 관심을 가지라고 할 것 같다. 그런 미래 산업에 국가가 전략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 것을 권고한다. 일할 자리가 있고 먹을 것이 있어야 정의도 있고, 분배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강 건너 불’ 아닌 화웨이 사태

화웨이 사태는 한가하게 바라보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우리에게 다시금 세계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기업을 위해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엄한 경종을 울린 것이다. 장례식만 있고 결혼식은 없으며, 과거만 쳐다보고 코앞에 닥친 미래를 보지 않는다면 한국호의 앞날은 암울하다. 이제는 정말로 정신 차리고 분발할 때이다.

강정영 청강투자자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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