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당신을 빛나게 할 '인생의 명국'을 만들어보세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정수현의 세상사 바둑 한판(18) 

사랑하는 엄마, 강아지와 헤어져 스웨덴 시골 마을에 가게 된 소년 잉마르가 그곳에서 따뜻한 위로를 얻는 과정을 통해 인생의 깊은 울림을 전하는 아름다운 영화 '개 같은 내 인생'의 한 장면. [중앙포토]

사랑하는 엄마, 강아지와 헤어져 스웨덴 시골 마을에 가게 된 소년 잉마르가 그곳에서 따뜻한 위로를 얻는 과정을 통해 인생의 깊은 울림을 전하는 아름다운 영화 '개 같은 내 인생'의 한 장면. [중앙포토]

‘개 같은 내 인생’이란 영화가 있다. 제목만 본다면 이런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참하고 힘든 밑바닥 삶을 뜻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예술 같은 멋진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바둑으로 치면 ‘명국(名局)’을 두고 싶어하는 것이다.

명국은 유명한 바둑이나 잘 둔 바둑을 말한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 같은 유명한 바둑을 명국이라고 한다. 하지만 바둑계에서는 보통 유명한 바둑보다는 예술처럼 멋지게 둔 바둑을 명국으로 친다. 명화나 명작 같은 좋은 내용의 바둑을 명국으로 보는 것이다.

재미보단 예술성 있는 명국

유명한 바둑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말처럼 내용이 신통치 않은 경우가 많다. 특히 상금이 크게 걸린 빅 매치의 내용은 명국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큰 승부에 명국 없다’라는 말이 생겼다. 상금이 크게 걸리니 욕심이 동해 평소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큰 승부는 예술성은 부족해도 보는 재미는 있다. 고수가 어이없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 예상치 않은 대판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구경꾼에겐 이런 바둑도 흥미진진하다.

예전에 삼성화재배 세계대회 결승에서 유창혁 9단이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 9단에게 졌을 때 한 바둑팬이 “10급도 보는 수를 유창혁이 못 보다니…” 라며 애석해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큰 승부를 ‘명국’이 아닌 ‘명승부’로 표현하기도 한다. 내용이 훌륭하지 않아도 승부라는 면에서는 기억할 만한 빅 매치라는 뜻이다.

한국의 유창혁 9단과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 9단이 제1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선수권대회 결승 1국을 두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한국의 유창혁 9단과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 9단이 제1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선수권대회 결승 1국을 두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술 같은 삶을 살고 싶어하는 마음은 있다. 바둑의 명국과 같은 삶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다. 명국의 반대는 ‘졸국(拙局)’ 즉 졸렬한 바둑이다. 자신의 인생을 치졸한 한 판으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처세술에 관한 책을 쓴 카네기는 희대의 흉악범도 자신의 삶을 미화하려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남들이 보기엔 개 같은 인생일지라도 당사자는 예술처럼 보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 대통령이나 유명인이 자서전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일 것이다.

자서전은 대부분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고 싶은 내용이 주를 이룬다. 사실 누구나 살아오면서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부끄러운 내용을 빼면 개인의 자서전은 예술 같은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부끄러운 과거를 회고하며 진솔한 의견을 쓸 수 있다면 그것도 예술이다. 성공 스토리도 좋지만 실패한 경험담도 감동과 교훈을 줄 수 있다.

자신의 인생에서 남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어떨까. 어두웠던 내용을 빼더라도 분명히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엮어보면 누구나 ‘인생의 명국’을 하나쯤은 남길 수 있다.

자신의 인생에서 남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어떨까. 그것을 엮어보면 누구나 '인생의 명국'을 하나쯤은 남길 수 있다. [중앙포토]

자신의 인생에서 남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어떨까. 그것을 엮어보면 누구나 '인생의 명국'을 하나쯤은 남길 수 있다. [중앙포토]

이런 이야기 속에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귀중한 노하우가 담겨 있을 수 있다. 그런 스토리나 노하우가 축적된다면 사회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지식 경영에서는 개개인이 가진 암묵지를 개발해 조직의 능력을 높이라고 한다. 책에 나온 이론적 지식보다 개인이 체험한 생생한 이야기가 더 실제적인 지식이 될 수 있다.

지금도 보관 중인 소년 시절의 바둑 공부 노트

나의 경험담을 하나 소개한다. 옛날 소년 시절 프로기사 지망생인 나는 특이하게 ‘흑의 전략’과 ‘백의 전략’을 연구하며 바둑공부를 했다. 그때 정리했던 노트가 누렇게 변색된 채 지금도 남아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런 독특한 방법을 썼다는 것이 좀 신기하다. 그 덕분일까. 나는 다른 연구생에 비해 상당히 짧은 기간에 프로로 입단했다.

이것은 고수의 성공전략을 분석해 벤치마킹을 한 이야기다. 이 경험담은 바둑기술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 전수해 괜찮을 내용이 아닐까.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에서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뽑아 ‘내 인생의 명국’으로 만들어보자.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